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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9년 9월
평점 :
p.333
"사람들은 행복하고,원하는 바를 얻으며, 얻지 못할 대상은 절대로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잘살고 , 안전하고, 전혀 병을 앓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늙는다는 것과 욕정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즐겁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 때문에 시달리지도 않고, 아내나 아이들이나 연인 따위의 강한 감정을 느낄 대상도 없고, 마땅히 따르도록 길이 든 방법 이외에는 사실상 다른 행동은 하나도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어요. 그리고 혹시 무엇이 잘못되는 경우에는 소마가 기다립니다."
누구나 잘살고 행복하며 질병과 노화가 없는 세상이라니...정말 멋진 세상아닌가!
그러나 워낙 유명한 소설이기에 이 제목이 반어적으로 쓰여졌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피스트>에서 가져왔다고 하는데, 거기에서도 반어적으로 쓰였다고 하니까.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과학 기술이 최고도로 발달한 문명 세계이다. 사회의 안정을 위해 인간을 시험관에서 대량 생산하고 그렇게 생산된 인간들은 철저한 계급에 따라 끊임없이 반복되는 수면학습과 세뇌로 자신에게 부여된 삶을 살아간다. 계급은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5계급으로 나뉘는데, 하위 계급으로 갈수록 산소공급을 적게하여 최하위 계급인 엡실론같은 경우엔 인간의 지능에 훨씬 못미치게 만든다. 평생 단순노동일을 하게 되는 엡실론들은 끊임없는 습성훈련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일을 좋아하게 되고 오히려 머리쓰는 일을 하는 알파계급이 아님을 다행으로까지 생각한다. 다시말해 자신의 삶에 매우 만족하며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사람들은 늙지도 아프지도 않고 정신적인 고통도 소마라는 약을 먹음으로써 피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을 공유'함으로써 성관계도 자유롭다 못해 문란하고 한사람과 '오래 질질 끄는 관계'는 강력하게 규제된다. 따라서 가정도 없고 연인 사이의 사랑의 감정, 도덕적 책임같은 것도 없는 어딜가나 만족과 안정만이 있는 세상이다.
그러던 어느날 신세계와 격리된 야만인 보호 구역에 사는 존이 이 문명세계에 초대받아 오게된다. 처음엔 놀라운 과학 문명에 감탄하지만 개인의 자유로운 진짜 삶이 없는 거짓된 행복에 도취된 문명 세상에 환멸을 느끼고 급기야 소마를 배급받기 위해 모인 사람들 사이에서 다음과 같이 격노하며 소리친다.
"여러분은 자유롭고 인간다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인간성과 자유가 무엇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합니까?"
"자유를, 자유를 찾아요!"
불행없는 행복은 가능한가. 만들어진 행복과 안정 속에서 과연 인간은 인간일 수 있는가? 아무리 행복해도 내가 스스로 원해서 얻은 행복이 아니라면...?
이 작품은 마지막에 가서 이런 질문을 던진다.
p.362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멋진 신세계를 거부하는 야만인 존이 무스타파 몬드 통제관에게 마지막에 하는 말이다. 이런 권리에 더하여 늙고 매독과 암 같은 질병에 걸릴 권리와 내일이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걱정할 권리, 온갖 종류의 고통으로 괴로워할 권리까지도 요구한다.
이러한 고통을 수반하는 권리까지 요구하는 그 밑바탕에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멋진 신세계에서 인간은 오직 사회의 안정을 위해 수단화된다. 안정적인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인간을 생산하고 그 인간을 또 세뇌시켜 스스로 생각할 자유를 박탈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라곤 전혀 없는 세상이다. 거짓 행복인 줄도 모르는 껍데기뿐인 인간들로 가득찬 겉만 번지르르한 세계.
존은 불행해지고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더라도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길 바란다.
이는 그 어떤 안정되고 이상적인 사회라도 개인의 자유가 없는, 인간의 행복마저도 생산, 통제되는 사회는 결코 멋진 신세계가 아님을 헉슬리는 경고하는 것이리라.
불행해 봐야 행복함을 알고 아파 봐야 건강함에 감사할 수 있으며, 배고파 봐야 배부른 포만감에 느긋한 기분도 느낄 수 있다. 나같은 경우는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한 요즘인데, 만약 멋진 신세계처럼 평생을 젊고 팽팽한 모습으로 살다 60쯤 되어 그냥 나도 모르게 죽어버린다면 삶의 소중함은 커녕 공장에서 생산된 물건과 무엇이 다르겠는가...생각만으로도 소름끼치는 세계이다.
조지 오웰의 <1984>와 비교해 보고 싶어 읽었는데 전체주의가 인간성을 어떻게 파괴시키는지 매우 다른 시각으로 보여준 점이 흥미롭다.
낯설지만 낯설지않은 세계라는 점이 서늘하게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