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84년, 세계는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이스트아시아라는 세 개의 전체주의 국가로 나뉘어 있다. 이 세 나라는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며 서로 동맹을 맺다가 다시 적이되는 관계를 반복하며 이어가는데 이는 국민을 속여 체제를 유지하려는 쇼에 불과한 것이다.

가는 곳 마다 "빅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는 포스터가 붙어 있고 송신과 수신이 동시에 가능한 텔레스크린이 개인의 말과 행동을 감시하며 텔레스크린 설치가 불가능한 곳에는 도청 장치인 마이크로폰이 있다. 더 나아가 사상 경찰을 통해 인간의 생각과 감정까지 감시,통제하고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인 성욕까지도 억제하는 사회이다. 섹스는 그저 당에 봉사할 아이를 낳는 행위로만 인정될 뿐이다.

 

소설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오세아니아의 외부당원으로서 진리부 기록국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는 과거의 뉴스나 기록을 조작하는 일을 맡고 있지만, 어느 순간 부터 이같은 당의 통제와 자신이 하는 일에 불신과 저항을 느끼게 된다. 그는 텔레스크린을 피해 금지된 행위인 일기를 쓰기 시작하고 서서히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들어서게 되는데 그 결정적 계기는 줄리아라는 여자가 넘어지는 척 하며 건넨 쪽지를 받고 부터다. 펼쳐본 쪽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사상경찰의 끄나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젊고 아름다운 그러나 어딘가 이상야릇한 분위기를 풍겼던 그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윈스턴은 그녀만을 생각하며 금지된 욕망이 내부에서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당신을 사랑합니다'란 글로 인해 살고 싶은 욕망이 불타올랐고, 위험한 짓을 하는 것이 어리석게 여겨졌던 것이다.

 

표정만 이상해도 잡혀가는 사회에서 사랑과 성욕에 빠진 윈스턴과 줄리아.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은 것처럼 그들은 숲 속에서 은밀히 만나 사랑을 나누고 급기야 윈스턴이 일기장을 샀던 고물상 건물 2층에 자신들만의 은신처를 만들어 아슬아슬한 만남을 이어간다. 사랑의 감정을 품고 처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과 삶의 소소한 행복을 갈망하게 되는 윈스턴. 사상경찰에게 붙잡혀 자백을 하게 되더라도 사랑하는 마음만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갖는다.

 

"사람의 속마음까지 지배할 수는 없지. 만약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게 가치 있는 일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면, 비록 대단한 성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그들을 패배시키는 셈은 되는 거야."

 

그러나 그들은 곧 사상경찰에 붙잡히고 잔혹하기로 악명높은 애정부로 끌려가 고문을 받는다.

윈스턴은 고통받을 줄리아를 걱정하고 빅브라더를 증오한다고 말하며 처음엔 저항하지만 애정부에서 가장 혹독한 '101호실'로 끌려가 그가 가장 무서워하는 쥐에게 고문을 당할 상황에 처해지자 결국엔 줄리아를 배반한다.

 

"줄리아한테 하세요! 줄리아한테! 제게 하지 말고 줄리아한테 하세요! 그 여자한테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어요.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도, 살갗을 벗겨 뼈를 발라내도 말예요. 저는 안 돼요! 줄리아한테 하세요! 저는 안 됩니다!"

 

끔찍한 고문 앞에서 윈스턴을 인간답게 했던 사랑마저도 파괴되는 장면이다. 전체주의의 폭력이 인간을 어떻게 추락시키는지 보여주지만 이 국가가 정말 무서운건 정신까지도 개조시킨다는 점이다.

 

"자네가 우리한테 항복한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자네의 자유 의지에 의해서여야만 하네.(...)그들을 전향시켜 속마음을 장악함으로써 새사람으로 만든다네.(...)그들을 죽이기 전에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 만든단 말일세. 비록 알려지지도 않고 그 영향력 또한 없다 하더라도 그릇된 사상이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니까"

 

줄리아를 배반하고 풀려나지만 윈스턴은 왜 살아있는지 모른체 당이 제공하는 것들을 받아 살아간다. 윈스턴은 더이상 한 가지 생각을 오래할 수 없고, 술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옛날 엄마와의 추억도 떠오르지만 그 기억이 잘못된 기억임을 스스로 판단한다. 어떤 일을 일어난 걸로, 어떤 일을 일어나지 않은 걸로 해야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러다 어느 날 텔레스크린에서 오세아니아의 승리를 알리는 특보를 들으며 윈스턴은 그 순간 구원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행복한 몽상에 빠진다. 애정부로 가서 자신의 죄를 낱낱히 자백하고 죄를 용서 받는 윈스턴. 이렇게 속마음까지 당이 바라는 대로 개조된 윈스턴은 뒤에서 간수가 쏜 총알에 머리가 관통당한다.

 

모든것이 잘되었다. 투쟁은 끝이 났다. 그는 자신과의 투쟁에서 승리했다.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했다.

 

수많은 비극적 결말 중에서도 가장 비극적이다. 더이상 아무 힘이 없는 윈스턴을 그들은 언제든지 쉽게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이 바라는 대로 철저하게 개조되지 않은 윈스턴을 죽인다는건 그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국가에서는 과거의 순교자같은 영웅은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권력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권력은 어떠한 빈틈도 있어서는 안되기에 '처치하기 전에 두뇌를 완전히 개조'시켜야 하는 것이다.

 

오웰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전체주의 폭력에 의해 어디까지 변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윈스턴은 인간으로서 죽지 않았다. 그저 전체주의의 불량 부속품으로 제거되었다. 물론 1984년 속의 사회는 매우 극단적인 모습이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 또한 따뜻한 인간성을 바라는 사회와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산업주의로 인간이 기계처럼 취급되고 거대한 자본 앞에서 인간성은 점점 그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

 

전체주의는 그 어떤 사회에서도 생겨날 수 있다. 특히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불안할 때 교묘하게 그럴듯한 이름으로 등장한다. 사람을 기계나 부품으로 생각하지 않고 서로 돕고 존중하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 이런 사회를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생각하게 만든다.

현실은 이상과는 점점 멀어지려 하지만 우리는 끊임없이 인간 존엄성에 바탕을 둔 사회를 꿈꿔야 하며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느낀다. 인간의 자유, 평등, 존엄성이 억압되는 사회가 얼마나 잔인하고 끔찍한지 오웰이 보여준 1984년의 세계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