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2
헤르만 헤세 지음, 한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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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이 가장 예민하고 가장 위태로운 소년 시절에 왜 한스는 날마다 밤늦게까지 공부해야 했을까? 왜 그의 토끼를 빼앗고, 왜 라틴어 학교에서 동급생들을 일부러 멀리하게 만들고, 왜 낚시를 금지하고, 왜 어슬렁거리며 거리를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고, 왜 하찮고 소모적인 명예욕을 추구하겠다는 공허하고 세속적인 이상을 그에게 심어주었을까? 왜 시험이 끝나고 힘들게 얻은 방학 때조차 푹 쉬게 하지 않았을까?  p.141

 

헤르만 헤세가 1906년 29세에 발표한 자전적인 소설이다.

책 속에서 헤세가 묘사하는 독일의 자연 풍경은 매우 세세하고 아름답다. 그런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낚시와 수영을 하며 행복해 하는 한스의 모습과 학교와 사회가 정해준 단 하나의 길을 가야했던 한스의 모습이 대비되어 읽으면서 내내 한스가 애처로웠다.

쉬는 순간에도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날까봐 끊임없이 불안해 하는 한스. 그런 불안한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해 한스의 공부를 부추기는 교장과 목사, 그리고 '철저하게 세속적인' 무뚝뚝한 아버지. 이들 중 단 한 사람이라도 한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했다면 한스는 어떻게 됐을까, 적어도 신경쇠약에 걸려 힘들어 하진 않았을텐데...한창 호기심이 많고 설레임으로 충만할 나이에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을텐데...엄마라도 있었다면...이런 내 안의 안타까움이 끊이질 않았다.

주변엔 그저 한스를 이용해 각자의 욕망을 충족시켜 세상의 속된 명예를 얻어보려는 야욕밖엔 없는 것이다. 이런 한스를 유일하게 안스럽게 바라보는 사람은 구둣방 주인 플라이크 아저씨뿐이지만 사회가 주는 압박과 부담이 너무 크기에 플라이크의 조언은 한스에게 와닿지 못한다.

 

개인의 자유와 의지를 억압하고 보다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당시 독일은 학교라는 기관을 통해 학생들을 획일,강압적으로 교육을 시켰다. 이런 독일 사회와 교육체제를 헤세는 끊임없이 비판했다. 이 작품이 나치시대에 불온서적으로 취급받았다는 사실은 그것을 증명한다.

 

자아의 실현은 어떤 교육이나 체제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소리에 끊임없이 귀를 기울이는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인간이 만든 규격화된 체제 속에서 주입식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사색하고 자기 자신만의 정신적 세계를 만들어야 진정 당당한 인간이 될 수 있다. 이것은 사회적인 성공과는 질적으로 다른 진정한 성공일 것이다. 한 사람이 당당한 개인으로 일어서기 위해서는 고뇌와 방황의 시간이 필요한데 사회는 그것을 부정하고 사람을 도구로 전락시킨다.

 

100년도 더 된 작품이지만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모른채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해 그저 앞만 보며 가는 우리 나라의 현실과 너무 닮아 씁쓸했다. 현재 독일 교육은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지금 한국의 교육은 백년 전 독일의 그것과 비교해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은 듯 하다.

 

헤세의 가장 유명한 작품 <데미안>은 예전에 읽다 말았지만 당시 받은 느낌은 관념적이며 철학적이어서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좀 막연했던 반면, 이 작품은 보다 현실적이고 비판하려는 대상이 분명하여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무엇보다 예민하고 소심한 한스가 짊어져야한 삶의 무게가 나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져 읽으면서 가슴이 아팠다. 지금도 삶의 무거운 수레바퀴 아래서 힘겹게 한 발 한 발을 내딛는 연약한 영혼들에게 헤세의 메시지는 힘이 되리라 생각한다.

'위대한 영웅은 아니지만 어엿한 한 남자'가 되기를. 어엿한 한 여자가 되기를...

청소년과 부모가 같이 읽으면 더욱 좋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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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10-23 1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일 교육은 우리나라 현실보다는
좀 낫지 않을까요.

독일에서 고등학교 나온 사람은 벤츠를
대학 나온 사람은 팍스바겐 골프를 탄
다고 하더라구요.

우리 교육도 경쟁이 아니라 내면 세계
를 탐구하고 자아 실현을 이루는 방향
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