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가 진행되다 보면 언제나 의심나는 문제들이 속속 생겨나게 마련이지요." 더못이 말했다. "진전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그래요,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사건이 차츰차츰 윤곽이 잡혀간다 그래요, 사진의 현상처럼, 그렇지 않습니까?" "진짜로 사진술과 아주 흡사합니다. 비유를 아주 잘했어요."
"더욱 기발하게 표현한 것도 있습니다." 더못이 말했다. "고인이 된 시인 테니슨이 쓴 시를 빌어서요. ‘거울은 반쪽으로 깨어졌도다. "나에게 저주가 내렸어." 하고 레이디 샬럿이 울부짖었도다."
그녀는 자기 앞에 있는 여자에게 손을 잡힌 채 서 있었고 그 여자는 카메라를향해 등을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리나 그레그는 그 여자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눈길은 카메라 쪽을 응시하지도 않고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 더못 크래독의 흥미를 끄는 것은 그 얼굴이 어떤 표정도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두려움도 없었고 고통도 없었다. 사진 속의 마리나 그레그는 뭔가‘를, 자기 눈에 보인 뭔가를 그냥 응시하고 있었는데, 마음속에서 솟구치는감정이 너무도 엄청나서 신체적인 어떠한 얼굴 표정 따위로는 나타내기가 불가능한 것 같았다. 더못 크래독은 이런 표정을 한 남자의 얼굴을 딱 한 번 본적이 있는데, 바로 다음 순간 그는 총에 맞아 죽었었다...…..
☆"우연히 누군가의 영혼을 들여다본 거나 마찬가지인 경우인데, 돈으로 계산하기가 약간은 난감하다고 느껴지지 않겠어요?"
"그녀가 그 특이한 한 편의 연극에 싫증이 났을 때까지요. 아뇨, 정확히 말하면 그게 아네요..... 자기가 아이를 갖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나서 부터였어요"
옷과 자동차, 훌륭한 저택과, 우리를 돌봐 주는 사람들과, 좋은 학교와 교을 맛있는 음식들이 있었죠. 모든 것이 풍성했어요! 그리고, 그녀는 바로 우리들의 ‘엄마‘ 였어요. 인용 부호가 붙은 ‘엄마‘는 자기 역할을 하면서, 자장가를불러 주고 우리랑 사진도 찍었어요! 아, 얼마나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사진이었어요"
"당신은 그녀를 깊이 원망하고 있군요." "당연한 감정 아니겠어요? 그녀는 제게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로 나쁜 짓을 저질렀는데요. 사랑을 흠뻑 받으며, 제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인 것처럼 믿게 해놓고는, 그것이 몽땅 거짓이었음을 보여 줬잖아요."
"저를 위로한답시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전 하나도 개의치 않아요. 아니, 말도 안 돼 솔직히 말하겠어요. 실은 몹시 마음이 쓰여요. 그랬어요. 마리나라는 여자! 그녀는 마술을 부리고 있어요. 사람들을 붙들어 매는 멋지고도불길한 마술을 말이에요. 그녀를 미워하는 마음은 크지만 여전히 기억 속에남아 있잖아요."
"아뇨. 그녀가 칵테일을 떨어뜨렸을 때 말이에요. 옷을 몽땅 버렸어요. 아주예쁜 드레스였는데, 짙은 보랏빛의 나일론 호박단으로 만든 거였어요. 그 행사때 입으려고 새로 장만한 것 같았는데. 그런데, 좀 우스워요." "뭐가 우습다는 거야." "그때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그런데, 자꾸 생각해 보니까어쩐지 우습다는 느낌이 들어요."
체리는 안달이 나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우습다는 형용사를 글자그대로 받아들였다. 유머스럽다는 뜻은 아닐 테니까. "제발, 뭐가 우습다는 거야?" 그녀가 재촉했다. "틀림없이 고의로 그랬던 것 같아요."
1초 뒤에 경고가 느껴졌으나 때는 너무 늦었다…… 친숙하지 않은 씁쓸한아몬드 향이 느껴졌다...… 그러고는 얼마 안 있어 흡입기를 누르던 손가락의균형 감각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 살인자에게는 위험을 무릅쓰는 것쯤 아무것도 아니오 여태까지 죽 그래왔잖소"
"내가? 어떻게 보였는데?" "잘 설명할 수가 없어요. 뭐랄까 말할 수 없이 슬픈 광경을 본 광대의 웃음이라고나 할까, 그것도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보지 못한……." - P230
☆어떤 사건, 몹시 슬펐던 일, 아니면 그 사건의 진정한 중요성과는 아주 어울리지 않는 격정 같은 것이 기억나지 않아요? 그 이후에 경험한 어떠한 슬픔이나 불타오르는 적개심이라도 결코 그때의 감정에는 도저히 미칠 수 없는 것말이에요. 훌륭한 작가 리처드 휴즈가 쓴 책 중 뛰어난 작품이 있지. 제목은잊어버렸는데, 허리케인을 체험한 어떤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우, 그래, 맞아 자메이카에서 있었던 허리케인이었어. 아이들 머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는인상은 자기 고양이가 미친 듯이 집을 뛰쳐나가는 광경이었어요. 그들이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것 한 가지 뿐이었지. 그들이 경험한 그 모든 공포와 흥분과 두려움이 그 한 가지 사건으로 집약되어 버린 거예요."
"접시에 잠이 든 푸딩이 담겨 있고,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제 모습이에요. 얼마나 뚫어지게 보았는지, 한쪽에서 잼이 흘러나오는 모습까지 지금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라요. 전 울지도 않았고, 아무 말도 안 했지요.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뻣뻣해져서 푸딩만 쳐다보며 그냥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가게나 레스토랑이나 다른 사람 집에서 잼이 든 푸딩 조각을 봤다 하면, 그때의 공포와 비참함과 절망이 한꺼번에 파도처럼 제게 엄습해 옵니다. 가끔은 왜 그런지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 순간도 있어요. 아주 정신나간 사람처럼 여겨지실 테지요?"
그녀 얼굴에 나타난 이 표정에 대해서 내가 묘사한 적이 있었지. 얼어붙은표정이야. 그래, 아주 적절한 표현이야. 운명의 파멸을 예고하는 눈길이야. 운명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일종의 마비 증세라고나 할까. 그렇게생각지 않아요? 그것이 진짜로 두려움일까? 물론 두려움에 부딪진다면 다들그런 반응을 보일거야. 그렇게 되면 마비증세가 올 수도 있지. 그렇지만, 난그게 두려움이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난 오히려 ‘충격‘을 받은 거라고 생각해.
"그런데, 베드콕 부인이 무슨 병에 걸렸다고 말했는지 기억나세요?" "글쎄요. 어디보자 그래. 홍역이었어요진짜 홍역은 아니고, 풍진이었대요병세가 훨씬 가벼운 것이지요. 어떤 사람은 그 병에 걸려도 아픈 걸 전혀못 느끼기도 한답니다. 지금 기억나는 건데, 제 사촌 캐롤라인이………."
"밴트리 부인이, 저 그림을 쳐다보는 당신 부인의 얼굴이 ‘얼어붙은 듯하다고 말했지요." 그녀는 성모 마리아의 붉고 푸른색의 풍성한 옷을 쳐다보았고, 성모 마리아가 머리를 약간 뒤로 젖히고 두 팔을 들어 안은 아기 예수를 향해미소 짓는 모습을 뚫어지게 보았다. "지아코모 벨리니의 ‘미소 짓는 마돈나‘로군요." 그녀가 말했다. "종교화이긴 해도 동시에 아기를 안은 행복한 엄마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에요. 안 그래요. 러드 씨?"
아주 즐겨 낭송하던 테니슨 경의 시 ‘레이디 오브 샬럿‘을 인용했어요." 그녀는 목소리를 약간 높였다.
"거울은 반쪽으로 깨어졌도다. ‘나에게 저주가 내렸어." 하고 레이디 살럿이 울부짖었도다.
"그녀는 정말로 아름다운 사람이었어요." 마플 양이 말했다. "그녀는 뛰어난 재능을 부여받았지요. 그녀는 무한한 사랑과 증오의 힘을동시에 지니고 있었지만, 안정감은 없었어요. 선천적으로 안정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슬픈 일이죠. 그녀는 과거를 스쳐 지나가게 할 수 없었고, 미래도 오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로지 어떨 것이라고 자기가 상상하는 것에만 집착했죠. 그녀는 위대한 여배우이고 아름다웠지만, 아주 불행한 여자였어요.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에서 그녀는 얼마나 근사했어요! 난 결코 그녀의 모습을 잊지 못할 거예요."
그녀는 그 시의 마지막 구절을 나직이 읊조렸다.
"그가 말했도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모습이로다. 신이시여, 당신의 자비로 은총을 베푸소서, 레이디 샬럿에게."
또한, 이 작품에서 특이한 것은, 사건의 발생과 해결을 통해 전반적으로 앨프레드 테니슨 1809-1892, 영국의 계관 시인)의 시 ‘레이디 샬럿‘이 인용되었다는점이다. 즉, 에피그램(epigram, 경귀적 표현)으로서 소설 전개를 더욱 흥미 있게했다.
레이디 샬럿은 마술의 거울을 통해서만 사물을 보다가, 원탁의 기사 랜슬롯을 직접 보게 됨으로써 거울은 깨지고 그녀는 죽게 된다. 레이디 샬럿은 마리나의 상징적 존재로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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