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다마링크부터 매년, 1년에 한권씩 그의 글을 읽을 수 있게 해주는 기욤 뮈소!
그의 소설은 책을 펼침과 동시에, 애쓰지않아도 저절로 읽힌다.
아무런 생각없이 내용에 빠져들어 읽다보면 마지막 장을 넘기게되는 마법같은 책들!
오랜 시간 좋아해 온 작가들의 작품들은 한번씩 실망을 안겨주기도하지만 기욤뮈소만은, 언제나 그의 스타일대로 같은 듯, 전혀 다른 내용으로 만족을 주는 작가이다.
이번 소설도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어느새 결말!
프란츠 카프카 상을 수상한, 매체에 노출을 꺼리며 신비로움으로 무장한 여성작가, 플로라 콘웨이.
그녀의 비극 속, 문득 깨달은 자신의 상황! 그렇게 장면전환 된 소설은 또 다른 작가 로맹 오조르스키를 이끌어내고, 그의 소설과 현실이 뒤섞인 채 소설이 진행된다.
흥미로움 속에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어쩌면 지극히도 당연하다는 듯,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고..
소설은 그렇게 끝나지만, 삶은 또 이렇게 나로 돌아와 시작된다.
매년, 매소설마다 그랬듯, 그냥 읽다보면 끝이 나 있는 기욤 뮈소의 소설이다.
내년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될 무렵의 그의 소설을 기다리며..
나의 소설 속으로!
나는 아서 코난 도일이 했던 말을 되새겨보았다. ‘불가능한 가설들을 모두 제외시키고 남은 가설이 아무리 불합리해 보일지라도 그것이 진실이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나?‘
현재 내 주변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야기들이 사전에 이미 쓰여 있었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에 대해 내가 주체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이 불합리한 조건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누군가 막후에서 꼭두각시 인형을 조종하듯 줄을 잡아당겼다가풀었다 하면서 나를 마음대로 제어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누구에게 조종당하고 있을까?
머릿속에서 플라톤의 동굴 우화가 떠올랐다. ‘동굴에 오래도록 갇혀 있어 왜곡된 관념의 포로가 된 인간은 촛불을 켰을 때 동굴 벽에 그려지는 그림자를 진실이라고 믿는다.‘
플라톤이 묘사한 인간들, 즉 어두운 동굴 깊숙한 곳에 갇혀 사는포로들처럼 나 역시 내 아파트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기만적인 햇빛이 집안 곳곳에 그려놓은 그림자들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전체가 아닌 일부, 편린, 메아리. 그래, 그거야. 나는 눈 뜬 장님이었어.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의도적으로 나를 집 안에 가두고 왜곡된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통제하고 있는 거야. 현실은 내가 늘바라보고 있는 그림자와는 분명 다른데, 나는 지금껏 허상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던 거야. 이제부터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허상의 베일을 벗기고 진실을 바라보아야만 해.
나는 앞으로 내가 알게 될 진실이 두려웠다. 동굴에 유폐되어 있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가게 된 포로들이 밝은 빛을 대하는 순간 눈이 부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나도 똑같이 맞게 될까 봐 두려웠다. 차라리 동굴의 어둠 속에 유폐되어 있을 때가 더 안락했다고 믿으며 밖으로 나가기를 꺼려하듯이
‘어느 누구도 세상이 상상에 불과한지 실제로 존재하는지 알 수없고, 꿈과 현실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문득 보르헤스의 말이 떠오르면서 내가 지금 오감으로 느끼고 눈으로 마주하고 있는 이 모든 현상들이 과연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내 주변에서 강력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현재 옥상에 나혼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느낌이 드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 힘, 타인이 가하는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분명 꼭두각시 인형을 조종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애써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명백한 진실이 저절로 드러났다. 나는방금 어느 작가가 쓴 소설의 등장인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동타자기, 아니 컴퓨터라고 해야 훨씬 현실성이 있겠지만 아무튼 누군가가 나를 매단 줄을 잡고 제멋대로 조종하는 중이었다.
나는 비로소 나의 적이 누군지 알아냈다. 내 이야기를 쓰는 소설가의 교활한 술수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 역시 그와 똑같은 직업을 가진 소설가이니까. 지금 내가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방금 전 그의 계획을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앞으로 3초를 줄 테니 어디 한번 나를 말려보시지. 하나, 둘, 셋…."
소설 쓰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은 아니다. (..) 무엇보다 고된 건 소설을 한 편 쓰고, 두 편 쓰고, 계속 쓰는 것이다. (…) 그러기 위해서는 특별한 역량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그 역량이란 확실히 단순한 재능과는 조금 다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쓰는 동안 등장인물들 가운데 하나가 다짜고짜 나를 불러 세운 건 처음이었다. 나는 로맹 오조르스키이고, 올해 나이 마흔다섯 살이다. 언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않지만 내 직업은 작가이다.
글쓰기가 나에게는 단 한 번도 심심풀이로 하는 여가 활동이었던적이 없었다. 글을 쓸 때마다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동원했고, 열정과 노력을 쏟아 부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글쓰기에 대해 말하길 ‘아주 특별한 삶의 방식‘ 이라고 했다.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Antonio Lobo Antunes 1942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출생한 작가, 의학을전공했으나 앙골라 내전의 참상을 목도한 후 작가로 변신했다. 옮긴이)는 한술 더 떠 ‘소설은 쾌감을 맛보기 위해 시작해 자신의 악습을 중심으로 삶을 재구성하는 것 이라고 했다.
글쓰기를 할 때 가장 흥분되고 짜릿한 순간이라면 아마도 작가인 내 의사와 무관하게 등장인물이 자신의 의지로 독자적인 행동에나설 때입니다.
장 지오노(Jean Giono 프랑스의 소설가 : 옮긴이)도 글쓰기에 착수하기에 앞서사전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언급한 적이 있었다. ‘이제 책은 거의 완성되었다. 쓰기만 하면 되니까.‘
스티븐 킹은 ‘모든 이야기는 소설가가 소설로 쓰기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이야기는 마치 퇴적암에 들어 있는 화석과 같다. 소설가는 그 화석이 공룡 뼈인지 너구리 빼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글을쓰는 과정에서 그 진실을 발굴해내야 한다." 라고 했다.
요즘은작가인 나도 어떤 결론을 내릴지 미리 정해두지 않은 가운데 내 자신을 소설 속으로 던져 넣는 집필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스티븐 킹이 즐겨 채택한 집필 방식이었다.
새로운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마다 나는 매번 눈 덮인 에베레스트 산 아래에서 맨발로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 안에서 이전에는결코 들려준 적이 없는 이야기, 새롭고 독특하고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를 끌어내 독자들에게 선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장을 조여왔다.
아이의머리에서 늦은 오후의 뿌연 햇살과 잘 어울리는 밀밭 냄새가 났다. 테오의 두 눈이 파란빛이 도는 동그란 안경 속에서 반짝였다. 알베르 카뮈의 표현을 빌리자면 테오는 내게 한겨울에 맞이하는 ‘무적의 여름 이었다. 활짝 웃는 테오의 얼굴은 내 마음 깊이 도사리고있는 슬픔의 장벽을 단숨에 박살낼 만큼 신비로운 힘이 있었다.
소설에서는 아무리해결하기 힘든 난관에 봉착해도 초자연적인 인물이 출현해 도움을주거나 기상천외한 사건이 발생해 꽉 막힌 현실을 타개해주기도 하니까.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극의 긴박한 국면을 타개하고, 이를 결말로 이끌어가는 수법이다. 문학 작품에서 해결이 불가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초자연적인 사건을 끌어들이는 플롯장치를 가리킨다 : 옮긴이) 혹은 극적 반전 덕분에 해결 불가로 보이던현실이 타개되어 원래 그래야만 했던 것처럼 암담한 현실을 환희의순간으로 바꿔놓기도 하니까. 그런 기적을 통해 선한 사람들이 지독한 악당들을 물리치고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소설이 주인공을 노리는 함정이 아닌 다른 무엇이란 말입니까? 밀란 쿤데라
"난 차라리 아빠가 되지 않은 걸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많은부모들이 아이를 지나치게 떠받들다시피 키우고 있는데, 정말이지김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어요. 그런 사회 풍조가 아이들을 나약하기 그지없는 마마보이 파파보이로 키우는 겁니다. 그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면 인류는 멸망하게 될지도 몰라요."
플로라 콘웨이는 자신을 창조한 작가를 만나고자 하잖아요. 이를테면 피조물이 창조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건데 정말이지 기발한발상입니다. 당신은 이미 현대 버전의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해낸 겁니다."
"아무리 기발한 이야깃거리와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줄줄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성공적인 소설이 될 수 없습니다. 작가가 준비된 이야기와 주인공으로부터 뭔가를 끄집어내려면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이 서로 만날 수 있게 해야죠."
"현실과 픽션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까지 수동적으로 당하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상황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뜻입니다."
"스티븐 킹은 소설 쓰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 깊숙이 깃들어있는어두운 감정들을 표면으로 끄집어낼 수 있게 되었죠. 백지 위에 분노, 증오, 좌절 따위의 감정들을 모두 쏟아낸 거예요. 스티븐 킹에게 소설 쓰기는 일종의 심리치료이자 어두운 그림자를 쫓아버리는퇴마의식이기도 했어요. 게다가 책을 팔아 어마어마한 부를 누리게되었으니 작가가 된 건 스티븐 킹에게 여러 모로 큰 축복이었던 셈이죠. 세상의 수많은 정신병원에는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하고 어둠에 갇혀 고통 받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고교 시절에 읽은 《프랑켄슈타인》을 찾아내 펼쳐보았다.
11월의 어느 음산한 밤에 나는 마침내 나의 오랜 작업으로 빚어낸결과물을 관조할 수 있었다. 벌써 새벽 1시였다. 빗줄기가 불길하게유리창을 두드려대고 있었고, 촛불마저 다 타버리기 직전이었다. 갑자기 가물거리는 불빛 속에서 나의 피조물이 활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누르스름한 눈을 반쯤 뜨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피조물이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그의 팔다리가 경련을 일으킨 것처럼마구 움직였다.
나는 내 삶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내가 다시 내 삶을 통제하기 위해서는내 의지를 담은 시도가 절실히 필요했다.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있는 것만으로 그런 시도가 가능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키보드를 두드릴 때 나는 소리를 좋아했다. 키보드 소리가내게는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지만 왠지 따라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강물 소리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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