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는, 한 가지 이상의 이유로, 내가 옳다고 하는 행위, 타인을 내 방식대로 불러 세우고 지배하는행위라고 할 수 있다. 글쓰기는 결국 ‘나의 말을 좀 들어보십시오." , ‘내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십시오.‘,
‘당장 의견을 바꾸십시오."라고 종용하는 행위에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는 공격적인, 심지어 적대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행위이다.
-존 디디온

나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몇 걸음을 떼어놓았다. 내가 쓴 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건 처음이었다. 또 다른 나는 파리의 집 컴퓨터 화면앞에 앉아 있었고, 나는 시금 여기 낯선 곳에 와 있었다. 파리에 있는 또 다른 내가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려 활기 넘치는 뉴욕에 나를오게 한 것이다.

《거울의 세 번째 면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플로라 콘웨이가 사는 동네를 결정하기 위해 자료를 두루 찾아보고 나서 윌리엄스버그로 낙점했다. 그 이유는 바로 유대교 근본주의자들과의 인접성 때문이었다. 19세기 슈테틀(Shtetl 홀로코스트 이전 동부와 중부 유럽에 산재해있던 유대인 마을이다 :옮긴이)의 삶을 고수하는 이 지역 주민들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하나의 틈새를 연 것으로 보았으니까. 그러니까 현실 세계로부터 도피를 꿈꾸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픽션 세계가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다. 내가 상상력을 발휘해 창조해낸 인물이 쏜 총알을 맞고 인생을 마감하게 될 수도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내 인생에는 언제나 적이 있어왔다. 바로 나 자신이었다.

"당신 말대로라면 내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없어야 하는데 베스트셀러가 되었단 말이죠. 그 부분은 어떻게 설명할 건데요?"

주지는 않아요. 당신 소설은 추상적이고,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
"당신이 쓴 소설보다는 당신이라는 작가에 대해 관심이 많아서겠죠. 출판사의 신비주의 마케팅이 제대로 먹힌 셈이죠. 당신 소설은독자들이 느끼는 독서의 즐거움, 이를테면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한시라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려고 발걸음을 재촉할 만큼 즐거움을너무 건조해요.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인생사의 본질은 아니다. 인생사란 사람들에 대해 오해하고, 계속 잘못 알고,
언제까지고 집요하게 그릇된 판단을 하고, 신중하게 다시 생각해보고 나서 또다시 오해하는 것이다.
-필립 로스

☆나를 굳이 어떤 사람인지 분류하자면 ‘넷만 모이면 한심한 패거리가 된다. 라고 노래한 조르주 브라상(Georges Brassens 프랑스의 싱어송라이터로 날카로운 풍자와 유머가 있는 노래 가사와 시로 유명하다 : 옮긴이)의 생각에 동의하는 편이었다. 

상식과 이성을 가진 사람이 오히려 피해를 보는 세상이었다. 

자판이 모음과 자음의 음영을 만들어내는 소리, 
고양이 울음소리처럼 높낮이가 있는 소리, 노래의 멜로디처럼 박자가 있는 소리, 자유의 소리.

벌써 오래전에 그는 자신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세계 속에서 행복을 찾았다.
-존 어빙

 그는 상냥하고 정 많은 사람들에게 내리는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냉엄한 생존 법칙의 희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잔인하고 냉소적인 세상과 맞서기에는 지나치게 선한인물이었다.

삶, 우리에게 부과된 이 짐은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무겁다.
삶은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고통과 실망,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안긴다.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우리는 진통제의 도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너는 언젠가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가 소설작법에 대해 언급했던 말을 내게 해준 적이 있어, ‘인간은 괴롭고, 작가는 그 고통을 소설에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한다.‘는 말이었지. 넌 작가의 피와 땀,
눈물이 깃든 소설을 유난히 높게 평가하지. 

나는 알베르 코엔의 소설에 나오는 ‘어차피 인간은 혼자이고, 우리는 모두에게 무심하고, 우리의 고통은 인적 없는 섬 이라는 글에 깊이 공감하는 입장이었기에 사람들이 나에게 거리를 두고지낸다고 해서 특별히 섭섭하거나 실망하지는 않았다.

☆이제껏 신앙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내가 오랫동안 믿어온 유일한 신은 내 자신이었다. 

나는 스무 권의 소설을 통해 하나의 세계 - 나의 세계 -를 창조했고, 내가 믿지 않는 신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나는 내 자신을 신이라 믿었다. 소설가로 제법 큰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사람들을 대할 때 늘 겸손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글쓰기에 착수하는 순간 거침없이 내 멋대로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나는 항상 내 상상력이 만들어낸 등장인물들을 무대에 세우고, 현실에 저항하게 만들었다. 내 소설은 현실을 향해 엿을 먹이는 저항 정신, 상상력을 최고조로 발휘해 부조리한 현실 세계를 내가 바라는 세상으로 채색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글쓰기는 기존 질서를 흔들고 새로운가치를 제시해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행위이니까. 세상의 불공정, 부조리, 부정을 제거하는 행위,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행위이니까.

아버지와 나는 언제나 마음이 잘 통하는공모자였다. 지난날, 함께 힘을 모아 투쟁한 경험과 고통과 상처를나누어가진 공모자.

나는 그저 내 자신이기만 한 것에 지쳤다. 나는 남들이 언젠가 내 등짝에 붙여준 이후 30년 동안줄곧 나를 따라다니는 로맹 가리라는 이미지에 지쳤다.
-로맹 가리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은 글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있는 데 반해 수많은 사람들이 아직 작가가 되길 꿈꾸면서 원고를보내온다는 것이었다. 

☆☆하긴 모두들 자기 머릿속에 소설 한 편쯤은 가지고 있다고들 하니 그런 점에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우리는 사물 자체를 보지 않는다. 우리는 자주 사물들에 붙여진꼬리표를 보는 것으로 그친다.

☆삶으로 돌아오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우리가 한층 더 열정적으로 삶을받아들이도록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책들은 과연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클레르 줄리아니 : 우아한 생각이지만 당신은 병원 치료를 받지않으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어요.
로맹 오조르스키 : 적어도 지금처럼 자유를 속박 당하지는 않겠죠.

클레르 줄리아니 (어깨를 으쓱하면서) : 죽고 나면 자유로운 게 다무슨 소용이죠?
로맹 오조르스키 : 죄수처럼 갇혀 있어야 한다면 사는 게 다 무슨소용이죠?

☆인생을 누군가와 나누어 갖게 되면 여러 가지 빛깔로 변주가 가능한 법이었다.

플로라와 나는 가짜 약자였다. 다시 말해 우리는 독하고 강한 존재들이었다. 플로라와 내가 정말 잘 하는 게 있다면 바로 묵묵히 견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물에 빠졌다고 믿을 때 우리는 발뒤꿈치를 튕겨 수면으로 도약할 힘을 찾아내려고 기를 쓰는 존재들이었다. 전쟁터에서 잔뜩 겁을 먹었을지라도 우리는 항상 막판에라도누군가가 구하러 와주도록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기어이 찾아내는존재들이었다. 우리 안에는 소설가 기질이 있기 때문이었다. 소설을 쓴다는 건 결국 현실의 숙명에 반기를 드는 것이니까.

☆나는 평생토록 현실과 픽션의 경계가 대단히 모호하다고 생각해왔다. 픽션보다 더 진실에 가까운 건 없으니까. 인간이 현실 속에서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픽션에서벌어지는 상황을 마치 실존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결과적으로 실존하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다가 해가 마지막 햇살을 거둬들이려는 순간 플로라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한 순간, 우리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우리는 눈빛으로 서로에게 감사를 표했다.
나는 우두둑 소리가 나도록 손가락 관절을 꺾으면서 저녁 공기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마술사처럼,

☆소설을 끝냈다.
나는 삶으로 돌아간다.

-조르주 심농 《내가 늙었을 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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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다마링크부터 매년, 1년에 한권씩 그의 글을 읽을 수 있게 해주는 기욤 뮈소!
그의 소설은 책을 펼침과 동시에, 애쓰지않아도 저절로 읽힌다.
아무런 생각없이 내용에 빠져들어 읽다보면 마지막 장을 넘기게되는 마법같은 책들!
오랜 시간 좋아해 온 작가들의 작품들은 한번씩 실망을 안겨주기도하지만 기욤뮈소만은, 언제나 그의 스타일대로 같은 듯, 전혀 다른 내용으로 만족을 주는 작가이다.
이번 소설도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어느새 결말!
프란츠 카프카 상을 수상한, 매체에 노출을 꺼리며 신비로움으로 무장한 여성작가, 플로라 콘웨이.
그녀의 비극 속, 문득 깨달은 자신의 상황! 그렇게 장면전환 된 소설은 또 다른 작가 로맹 오조르스키를 이끌어내고, 그의 소설과 현실이 뒤섞인 채 소설이 진행된다.
흥미로움 속에 페이지를 넘기다보면 어쩌면 지극히도 당연하다는 듯,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고..
소설은 그렇게 끝나지만, 삶은 또 이렇게 나로 돌아와 시작된다.

매년, 매소설마다 그랬듯, 그냥 읽다보면 끝이 나 있는 기욤 뮈소의 소설이다.
내년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될 무렵의 그의 소설을 기다리며..
나의 소설 속으로!




















나는 아서 코난 도일이 했던 말을 되새겨보았다.
‘불가능한 가설들을 모두 제외시키고 남은 가설이 아무리 불합리해 보일지라도 그것이 진실이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나?‘

현재 내 주변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야기들이 사전에 이미 쓰여 있었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에 대해 내가 주체적으로 대처할 수 없는 이 불합리한 조건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누군가 막후에서 꼭두각시 인형을 조종하듯 줄을 잡아당겼다가풀었다 하면서 나를 마음대로 제어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누구에게 조종당하고 있을까?

머릿속에서 플라톤의 동굴 우화가 떠올랐다.
‘동굴에 오래도록 갇혀 있어 왜곡된 관념의 포로가 된 인간은 촛불을 켰을 때 동굴 벽에 그려지는 그림자를 진실이라고 믿는다.‘

플라톤이 묘사한 인간들, 즉 어두운 동굴 깊숙한 곳에 갇혀 사는포로들처럼 나 역시 내 아파트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기만적인 햇빛이 집안 곳곳에 그려놓은 그림자들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전체가 아닌 일부, 편린, 메아리.
그래, 그거야. 나는 눈 뜬 장님이었어.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의도적으로 나를 집 안에 가두고 왜곡된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통제하고 있는 거야. 현실은 내가 늘바라보고 있는 그림자와는 분명 다른데, 나는 지금껏 허상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던 거야. 이제부터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허상의 베일을 벗기고 진실을 바라보아야만 해.

나는 앞으로 내가 알게 될 진실이 두려웠다. 동굴에 유폐되어 있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가게 된 포로들이 밝은 빛을 대하는 순간 눈이 부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나도 똑같이 맞게 될까 봐 두려웠다.
차라리 동굴의 어둠 속에 유폐되어 있을 때가 더 안락했다고 믿으며 밖으로 나가기를 꺼려하듯이

‘어느 누구도 세상이 상상에 불과한지 실제로 존재하는지 알 수없고, 꿈과 현실의 차이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문득 보르헤스의 말이 떠오르면서 내가 지금 오감으로 느끼고 눈으로 마주하고 있는 이 모든 현상들이 과연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여전히 내 주변에서 강력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현재 옥상에 나혼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느낌이 드는 걸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보이지 않는 힘, 타인이 가하는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분명 꼭두각시 인형을 조종하는 누군가가 있었다.

애써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명백한 진실이 저절로 드러났다. 나는방금 어느 작가가 쓴 소설의 등장인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동타자기, 아니 컴퓨터라고 해야 훨씬 현실성이 있겠지만 아무튼 누군가가 나를 매단 줄을 잡고 제멋대로 조종하는 중이었다.

나는 비로소 나의 적이 누군지 알아냈다. 내 이야기를 쓰는 소설가의 교활한 술수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 역시 그와 똑같은 직업을 가진 소설가이니까. 지금 내가 확신할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방금 전 그의 계획을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앞으로 3초를 줄 테니 어디 한번 나를 말려보시지. 하나, 둘,
셋…."

소설 쓰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은 아니다. (..) 무엇보다 고된 건 소설을 한 편 쓰고, 두 편 쓰고,
계속 쓰는 것이다. (…) 그러기 위해서는 특별한 역량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그 역량이란 확실히 단순한 재능과는 조금 다르다.
-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쓰는 동안 등장인물들 가운데 하나가 다짜고짜 나를 불러 세운 건 처음이었다. 나는 로맹 오조르스키이고, 올해 나이 마흔다섯 살이다. 언제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않지만 내 직업은 작가이다. 

글쓰기가 나에게는 단 한 번도 심심풀이로 하는 여가 활동이었던적이 없었다. 글을 쓸 때마다 내가 가진 모든 능력을 동원했고, 열정과 노력을 쏟아 부었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글쓰기에 대해 말하길 ‘아주 특별한 삶의 방식‘ 이라고 했다.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Antonio Lobo Antunes 1942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출생한 작가, 의학을전공했으나 앙골라 내전의 참상을 목도한 후 작가로 변신했다. 옮긴이)는 한술 더 떠 ‘소설은 쾌감을 맛보기 위해 시작해 자신의 악습을 중심으로 삶을 재구성하는 것 이라고 했다.

글쓰기를 할 때 가장 흥분되고 짜릿한 순간이라면 아마도 작가인 내 의사와 무관하게 등장인물이 자신의 의지로 독자적인 행동에나설 때입니다.

장 지오노(Jean Giono 프랑스의 소설가 : 옮긴이)도 글쓰기에 착수하기에 앞서사전 준비가 얼마나 중요한지 언급한 적이 있었다.
‘이제 책은 거의 완성되었다. 쓰기만 하면 되니까.‘

스티븐 킹은 ‘모든 이야기는 소설가가 소설로 쓰기 이전부터 존재해왔다. 이야기는 마치 퇴적암에 들어 있는 화석과 같다. 소설가는 그 화석이 공룡 뼈인지 너구리 빼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글을쓰는 과정에서 그 진실을 발굴해내야 한다." 라고 했다.

요즘은작가인 나도 어떤 결론을 내릴지 미리 정해두지 않은 가운데 내 자신을 소설 속으로 던져 넣는 집필 방식을 선호하고 있다. 스티븐 킹이 즐겨 채택한 집필 방식이었다.

새로운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마다 나는 매번 눈 덮인 에베레스트 산 아래에서 맨발로 서있는 기분이 들었다. 내 안에서 이전에는결코 들려준 적이 없는 이야기, 새롭고 독특하고 지루하지 않은 이야기를 끌어내 독자들에게 선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장을 조여왔다.

아이의머리에서 늦은 오후의 뿌연 햇살과 잘 어울리는 밀밭 냄새가 났다.
테오의 두 눈이 파란빛이 도는 동그란 안경 속에서 반짝였다. 알베르 카뮈의 표현을 빌리자면 테오는 내게 한겨울에 맞이하는 ‘무적의 여름 이었다. 활짝 웃는 테오의 얼굴은 내 마음 깊이 도사리고있는 슬픔의 장벽을 단숨에 박살낼 만큼 신비로운 힘이 있었다.

 소설에서는 아무리해결하기 힘든 난관에 봉착해도 초자연적인 인물이 출현해 도움을주거나 기상천외한 사건이 발생해 꽉 막힌 현실을 타개해주기도 하니까.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초자연적인 힘을 이용하여극의 긴박한 국면을 타개하고, 이를 결말로 이끌어가는 수법이다. 문학 작품에서 해결이 불가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초자연적인 사건을 끌어들이는 플롯장치를 가리킨다 : 옮긴이) 혹은 극적 반전 덕분에 해결 불가로 보이던현실이 타개되어 원래 그래야만 했던 것처럼 암담한 현실을 환희의순간으로 바꿔놓기도 하니까. 그런 기적을 통해 선한 사람들이 지독한 악당들을 물리치고 승리의 환호성을 지르기도 하니까.

그렇다면 소설이 주인공을 노리는 함정이 아닌 다른 무엇이란 말입니까?
밀란 쿤데라

"난 차라리 아빠가 되지 않은 걸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요즘 많은부모들이 아이를 지나치게 떠받들다시피 키우고 있는데, 정말이지김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어요. 그런 사회 풍조가 아이들을 나약하기 그지없는 마마보이 파파보이로 키우는 겁니다. 그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면 인류는 멸망하게 될지도 몰라요."

플로라 콘웨이는 자신을 창조한 작가를 만나고자 하잖아요. 이를테면 피조물이 창조자를 만나고 싶어 하는 건데 정말이지 기발한발상입니다. 당신은 이미 현대 버전의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해낸 겁니다."

"아무리 기발한 이야깃거리와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이 줄줄이 준비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성공적인 소설이 될 수 없습니다. 작가가 준비된 이야기와 주인공으로부터 뭔가를 끄집어내려면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에 그들이 서로 만날 수 있게 해야죠."

"현실과 픽션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까지 수동적으로 당하고 있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적극적으로 상황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뜻입니다."

"스티븐 킹은 소설 쓰기를 통해 자신의 내면 깊숙이 깃들어있는어두운 감정들을 표면으로 끄집어낼 수 있게 되었죠. 백지 위에 분노, 증오, 좌절 따위의 감정들을 모두 쏟아낸 거예요. 스티븐 킹에게 소설 쓰기는 일종의 심리치료이자 어두운 그림자를 쫓아버리는퇴마의식이기도 했어요. 게다가 책을 팔아 어마어마한 부를 누리게되었으니 작가가 된 건 스티븐 킹에게 여러 모로 큰 축복이었던 셈이죠. 세상의 수많은 정신병원에는 그런 행운을 누리지 못하고 어둠에 갇혀 고통 받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고교 시절에 읽은 《프랑켄슈타인》을 찾아내 펼쳐보았다.

11월의 어느 음산한 밤에 나는 마침내 나의 오랜 작업으로 빚어낸결과물을 관조할 수 있었다. 벌써 새벽 1시였다. 빗줄기가 불길하게유리창을 두드려대고 있었고, 촛불마저 다 타버리기 직전이었다.
갑자기 가물거리는 불빛 속에서 나의 피조물이 활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누르스름한 눈을 반쯤 뜨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피조물이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그의 팔다리가 경련을 일으킨 것처럼마구 움직였다.

나는 내 삶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내가 다시 내 삶을 통제하기 위해서는내 의지를 담은 시도가 절실히 필요했다.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있는 것만으로 그런 시도가 가능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키보드를 두드릴 때 나는 소리를 좋아했다. 키보드 소리가내게는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지만 왠지 따라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강물 소리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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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는 서른아홉 살의 작가가 해마다그해에 출간된 소설 전체를 평가해 선정하는 최고 권위의 프란츠카프카 상을 수상했다.

사회공포증을 앓고 있어 노골적으로 대중과의 접촉을 피하고, 여행을 싫어하고, 기자들과의 만남을 꺼려하는 플로라 콘웨이는 지난화요일 저녁 체코 프라하 시 시청 청사 접견실에서 열린 프란츠 카프카 상 시상식에도 어김없이 참석하지 않았다.

《미로 속의 소녀는 20여 개 국에서 번역 출판되었고, 여러 나라의 비평가들로부터 고전의 반열에올려놓아도 손색없는 작품이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플로라 콘웨이는 가끔 응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높은 지명도와 그에 따르는 각종 제약, 미디어의 필요 이상의 관심, 대중의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말로 노출을 기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 가령 이탈리아 작가 엘레나 페란테는 "소설은 작가가 아니라 작품을 
전면에 드러내는 장르이다."라는 말로 익명을 고집하는 이유를 설명한 적이 있다. 플로라 콘웨이는 "소설이든 다른 예술 분야의 창작물이든 일단 세상에 선을 보이고 나면 작품은 작가와는 별개로 자체의 의미를 갖는다."라고 말한다.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가장 또렷이 보여야만 하는데 오히려 가장 심하게 흔들려 보인다.
-줄리언 반스

루텔리 형사 : 독자들이 보낸 메일을 읽지 않는 이유가 뭐죠? 독자들이 당신이 쓴 소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플로라 콘웨이 : 글쎄요, 난 전혀 궁금하지 않아요.
리차드 경위 : 왜죠?

☆플로라 콘웨이 : 독자들은 어차피 읽고 싶은 책을 읽을 겁니다. 내가 쓴 소설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읽지는 않겠죠.

플로라 콘웨이 : 나는 가끔 술집에 가서 사람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서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조용히 관찰하며 어떤 인물인지 상상해보기도 하고,
마음속 깊이 감춰둔 비밀이 뭔지 가늠해보기도 해요. 소설을 쓰려면 사람들을 부지런히 관찰하고 연구해야 하니까요. 사람에 대한연구가 소설을 쓰는 데 필요한 동력과 연료를 제공해주죠.

작가들을 상대할 때면 당신은 언제나 그들이 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조나단 코

팡틴을 볼 때마다 마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지난 몇 년 사이 출판사가 성공을 거두면서 팡틴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팡틴은 얌전하고 말이 없어 어디서든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자신감넘치고 대화를 주도하는 인물이 되었다. 

팡틴은 점점 더 나의 또 다른 버전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즐겨입는 스타일의 옷을 입었고, 내 몸짓을 따라 했고, 심지어 말투도비슷해졌다. 이야기를 나눌 때 가끔 흘러내린 머리를 귀 뒤로 쓸어넘기는 습관이나 목 오른쪽 구석에 뫼비우스 띠 문신을 새겨 넣은것까지 같았다. 팡틴은 내가 위축되어 있을 때면 오히려 기를 폈고,
어둠에 잠겨 있으면 빛을 발했다.

나에게 남다른 재주가 있다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서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하는 잠재력을 발견해내는 것이었다. 아마도 나의 유일한 장기이자 재능이었고, 소설가가 된 중요한 배경이기도 했다.

☆ 소설을 읽고 나서 나의 창작 의도와 일치하는 견해를 피력하는 독자들도 있었고, 일부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나는 이미 출판되어 세상에 나온 소설은 내 작품이기도 하지만 독자의 몫이기도 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언론사에 배포한 내 사진이라고는 달랑 한 장밖에 없었다.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흑백사진 속의 내 모습은마치 베로니카 레이크(Veronica Lake 미국의 여배우 : 옮긴이)를 연상케했다.

"언젠가 나에게 글을 쓰는 게 생의 유일한 위안이라고 했잖아?"

"내가 없는 얘기를 한 건 아니잖아. 예술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명작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너도 잘 알 거야. 진정한 예술가들은 고통의 순간에 오히려 빛나는 작품을 완성했어."

나는 소설을 쓰면서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 내 자신을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만약 소설 쓰기를 통해 나의 세계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세계에서 무의미한 시간을보내다가 생을 마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라고 말이야."
"아나이스 닌의 소설에 나오는 문장을 빗대어 말했을 뿐이야."

나는 팡틴이 실제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느낌을받은 적이 많았다. 그저 내 머릿속에 비집고 들어와 끊임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 하나의 메아리 같았다. 

당신 안에서 글쓰기의 취기를 유지하라.
그러면 당신은 현실이 지닌 파괴적인 위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레이 브래드베리

나는 가끔씩 응한 이메일 인터뷰 때 ‘내가 소설을 쓰는 건 누군가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나는단 한 번도 내 소설이 혼탁한 세상을 바로잡거나 사람들을 올바른길로 인도하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독자들이 내 소설을 읽고 위안을 얻길 바란 적도 없었다.

☆나는 오스카 와일드가 소설이란 잘 쓰였거나 잘못 쓰였거나 둘 중 하나다.‘ 라고 했던 말에 기꺼이 동의하는 편이었다.

솔직히 내가 이메일 인터뷰 당시 했던 말은 단 한마디도 진정성이없었다. 오히려 나는 내가 했던 말과는 정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소설은 우리를 잠시나마 힘든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게 해주고, 다양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의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주는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다만 만년필보다는 컴퓨터를 주로 사용하는시대인 만큼 실용적인 쓸모가 전혀 없는 시대착오적인 사치품이기도 했다.

루텔리 형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흥미로운 사연이 있는 만년필이더군요. 혹시 버지니아 울프가 이 만년필의 주인이었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버지니아 울프 (1882-1941)던힐 나미키 자개 만년필, 1929년에 《댈러웨이 부인》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친구이자 연인인 비타 색빌 웨스트가 선물한 만년필로 아래와 같은 문구를 첨부했다. ‘제발 부탁이니 이 뒤죽박죽이 된세상에서 너만은 늘 같은 자리를 지키며 빛을 발하는 별이 되어줘."
마술 잉크도 한 병 첨부되어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장편소설 《올랜도 를 집필한 만년필이다.

플로라 콘웨이 (1971)술이 달린 분홍색 벨벳 실내화, 오른발 용. 2010년 4월 12일에 불가사의하게 실종된 작가의 딸 캐리가 신던 실내화.

"나는 작가이고, 이야기를 어떻게 끝맺을지는 전적으로 내가 결정해요."
"당신이 쓰는 소설이라면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겠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작가들은 간혹 현실 세계도 자기 뜻대로통제하려고 들지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겁니다."

인생의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르며, 공짜라고는 죽음밖에 없는데, 그 또한 삶과 맞바꾼 것이다.
- 엘프리데 옐리네크

"잉크에서 사람의 피가 검출되었다고요?"
"실험실에서는 그 피가 당신 딸의 혈액과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소설가들의 대다수가 알고 있다시피 소설을 쓸 때 ‘체호프의 총‘ 으로 회자되는 원칙이 작동된다. 1막에서 ‘벽에 총이 걸려있군요.‘ 라는 대사가 등장할 경우 2막 또는 3막에서 반드시 그 총에서 총알이 발사되게 해야 한다는 게 러시아작가 안톤 체호프가 강조한 원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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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즈 말이 맞아요.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생각이진실일 뿐 다른 사람들은 다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하죠

우리 역시 진실을 내세워 잘난 척 하는 사람들과 그게 나지 않은것 같아요. 
그러니 대중은 우리 방송이 수많은 주관적 견해 중 하나를 내보낼 뿐이라고 느낄 거예요. 우리만이 진실을 가지고 있다는 절대적 증거가 없으니 어쩔 수 없죠.

☆멍청이들만 생각을 바꾸지 않을 뿐이야. 세상은 진화하고, 나 역시 진화해

모르는 사람에 대한 성급한 판단은 우위를 점하고 싶은 조바심에서 나오는 거야.

미리 포기할 필요는 없어. 사람들은 누구나 감지거나 잊힌 진실과 마주하는 데 소극적이게 마련이야. 

잘 살았어요. 응? 
그녀가 먼저 말문을 연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최대한누리면 삶이 수월해지죠.」
‘나는 삶의 매 순간을 즐겼어요.
「나도요, 당신 덕분에.」
그들이 숨을 크게 들이쉰다.
「훗날 당신을 또 만나고 싶어요.」
누트가 게브를 쳐다본다.

「우리 영혼의 여정을 알게 됐으니 난 다른 인사를 할게요. 다시 만나요)..…..」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들었던 음악
비발디의 「사계」, 클래식 버전과 하드 록 버전
슈퍼트램프의 바보의 서곡
피터 가브리엘의 당신 눈 속에 In Your Eyes」
르네 오브리의 「스텝Steppe
핑크 플로이드의 「샤인 온 유 크레이지 다이아몬드Shine On You Crazy Diam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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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도시가 파괴되고 나서 우리가 전에는 몰랐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발견하게 됐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그런 감정들에 휘둘리면 안 돼요. 그러다간 우리도 항시적두려움에 사로잡혀 결국 전쟁을 하게 될 테니까요. 절대마음의 평정을 잃으면 안 돼요, 그게 우리의 최대 강점이잖아요. 하늘이 무너질 일은 없어요. 우리한테 벌어지는일은 모두 우리를 위한 거예요.」

「뭐가 먼저였을까요? 우리의 행동 때문에 이 동굴 입구가 막히게 되는 걸까요,
아니면 이미 막혀 있어서 우리가 게브를 위해 이곳을 선택하게 되는 걸까요?」「어쨌든 우리가 찾던 완벽한 동굴인 건 분명해요.」

그리스어로 (라오스는 돌을 뜻하기도 하고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미지의 위협을 향한 공포, 정작 필요할때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두려움이 이제 그를 떠나지않는다. 게브가 의지할 대상은 자기 자신과, 자신에게 길을 안내해 주는 미래의 자신뿐이다.

결정적 순간이 임박했어. 잠시 후면 내가 과거에 작용할 수있는지 알게 될 거야.

「새로운 것은 처음에는 엉뚱하고 우스꽝스럽게 받아들여지게 마련이죠. 그러다 위험한 것으로 인식되는 단계를 거치면 비로소 확실한 것이 되죠. 에펠탑이 딱 그런예잖아요.]

이렇게 바퀴는 돌고 또 도는 거야. 때로는 시간이 약이야. 시간이 가면 상황은 변하게 돼 있으니까. 밑에 있던 건 올라가고위에 있던 건 내려오지.

노스탤지어의 오류
옛날이 좋았다〉는 과거를 이상화시키며 그리워하는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뱉는 말이다.

두려움이 두려움을 부르는 거죠. 내가 이해하기로 네에의 세계 사람들은 항상 불안에 떨며 살아요. 새로운 것에 무조건 두려움을 느끼죠. 그렇다 보니 상대가 자신을공격할까 두려워 먼저 선수를 치는 거예요.」

「신이 뭐지?」르네가 그에게 바다에서 출현한 거대한 신들을 숭배하는 종교가 작동할 수 있는 기본 원리를 가르쳐 준다.
게브는 설명을 듣고도 공감이 가지 않는 눈치다.
「그런 유치한 것으로 전쟁을 피할 수 있단 말인가? 소인들이 그토록 순진한 사람들이란 말이야?」

「인간들은 대부분 진실의 영역보다 믿음의 영역을 중요시하죠.」

「그들은 맞고 틀린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들이 바라는 건 오로지 자신들을 꿈꾸게 만드는 그럴듯한 시나리오예요. 그러니 최대한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고, 강렬한 이미지들을 동원해요. 

「물론이에요. 그것 말고는 자신들의 존재를 설명할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무지로 인한 공백을 메우는 것,
이것이 바로 종교의 위력이죠.」

방송인인 이 사람이 노리는 건 최면사와 똑같은 거야. 사람의눈과 귀를 집중시켜 놓은 상태에서 조작을 시도하는 거, 이 사람은 지금 내 이름을 반복해 부르면서 내가 이 일의 당사자라는점을 부각하고 있어,

이런 것들을 통해 극대화된 감정을 끌어내는 거야. 사람들이 리모컨을 눌러 대지 않고 한 채널에 시선을 고정한 채 광고까지 보게 만드는 거지. 그러고 나면 공포심을 달래기 위해 사람들이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사들여, 소비는 공포의 결과물이거든.」

우리는 이제 기 드보르가 말한 스펙터클의 사회>를 살고 있어. 역사는 식료품 같은 소비재가 됐어. 맛을 내기 위해 달거나매운 소스를 뿌려야 하는 패스트푸드와 똑같이 돼버렸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네가 신중히 처신하고 내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네 능력에 닿지 않는 것을 파괴하려는 마음을 접어야한다.

「르네의 설명을 듣고 내가 이해하기로는, 소인들의 상상력은 그 대상이 확인 불가능할수록 강해지는 것 같아요. 그들은 믿음에 취해 있어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아요.
자신들이 주인으로 받들어 모시는 대상에 마술적 권위를부여하며 복종할 뿐이에요.」

「복종에서 행복을 찾는다는 게 참으로 놀라워요.」「왜 꼭 자유와 독립성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죠?」「복종하는 처지가 좋을 리 없잖아요.」「왜죠? 좋으면 안 돼요?」

「아니야. 난 그저 군주에게 절대복종함으로써 선택을피하는 쉬운 삶을 살아왔을 뿐이야. 틀리더라도 선택하며 사는 삶이 의미 있는 것 아닌가. 당신은 스스로 선택을 하면서 살아왔소, 르네?」「그렇다고 할 수 있죠. 특히 최근에는 더더욱.」

「저들에게 숭배를 가르치고 나서부터 모든 일이 잘 풀리고 있어요. 종교야말로 만능 해결책인 것 같아요. 저들이 얼마나 열성적으로 우리에게 복종하는지 봤죠?」 누트가 게브를 쳐다보며 말한다.
「사실이에요. 우리를 섬기는 데서 행복을 찾는 것 같아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요. 정신의 힘으로세계가 얼마나 거대하고 복잡한지 아는 우리들이 행동은여전히 편협하게 할 이유가 없잖아요?」 누트가 덧붙인다.

「작은 인간들의 세상에서는 항상 어떤 일에 대가가 따른다는 걸, 좋은 일과 나쁜 일이 항상 같이 일어난다는걸 잘 알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세상을 상상하지 못해요. 항상 문제가 생길 때까지 더 가지려고 하죠. 천성이 그래요.」

「저들이 우리를 잘 알게 됐으니 앞으로 약점을 찾아낼지 몰라요. 자식이 부모한테 그렇듯 말이죠.」

「나는 우리의 영혼이 서로 다른 풍경과 서로 다른 상황을 모두 거쳐 온 데는 한 가지 이유가 있다고 믿어요.
새로운 감정들을 경험하기 위해서죠.」

14 주인공의 이름 〈르네René)는 다시 태어난다는 뜻의 프랑스어 동사 renaitre의 변화형 rent에서 왔다. .

……행복 속에 너무 머무르기만 하다 보니 발전의 동력을 상실했어요. 불안감도 두려움도 소명도 없이 살다보니 의식마저 잠들어 버렸죠. 우리가 이룬 정신의 위업들은 시간이 갈수록 희미해졌어요. 르네를 만나기 전까지는 우리 존재의 기록을 글로 남기겠다는 생각조차 못했죠. 아틀란티스 문명의 기억을 활자로 남겨 줄 역사가도 한 명 없는데, 우리가 지혜를 가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무지한 자들의 행복이었지. 물론 욕망과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는 건 만족감을 주지만 그건 정신적 마비를부르기도 하네. 자넨 소심하고 늘 불안과 두려움에 떨지만, 그래서 매사를 궁금해하고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거야.

나는 우연히 세상에 태어난 게 아니다.

1804년 리옹에서 태어난 그는 미국 심령술 운동의 스타였던 폭스 자매를 통해 1855년 테이블 터닝을 처음 접하고 나서 심령 회합을 주도했다. 그의 심령회에는 빅토르 위고, 테오필 고티에, 카미유 플라마리옹 등의 프랑스인뿐만 아니라 아서 코넌 도일 같은 영국인도 참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인간은 단순히 물질로만 구성된 존재가 아니다. 인간에게는 육체의 몸과 연결된 어떤 생각의 근원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낡은 옷을 벗어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로현생이 끝나는 순간 육신을 떠나게 된다. 육신을 빠져나온 죽은 자들은 산 자들과 직겁, 또는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영매를 통해 소통한다.

그는 1869년 사망해 파리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의 무덤에 세워진 흉상 밑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존재하고, 모든 현명한 결과에는 현명한 원인이 존재한다. 원인의 힘이 결과의 위대함을 결정한다.)

카미유 플라마리옹은 장례식 추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령술은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다.
같랑 카르테크의 비석에는 그가 주창한 철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태어나서, 죽고, 다시 태어나, 끝없이 나아가는 것, 이것이 법칙이다.

☆아니, 어쩌면 그를 다시 찾아갔을 때 오랜만에 왔다고자신을 타박하던 할머니 앞에 섰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들 것 같아 망설이는지도 모른다.

「사람 한 명을 죽이는 건 범죄지만, 수백만 명을 죽이는 건 원대한 정치적 계획이라고 우리의 집단 무의식이믿게 됐는지도 몰라요.」 르네의 이야기에 갈수록 흥미를느끼는 니콜라가 냉소적으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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