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는 서른아홉 살의 작가가 해마다그해에 출간된 소설 전체를 평가해 선정하는 최고 권위의 프란츠카프카 상을 수상했다.

사회공포증을 앓고 있어 노골적으로 대중과의 접촉을 피하고, 여행을 싫어하고, 기자들과의 만남을 꺼려하는 플로라 콘웨이는 지난화요일 저녁 체코 프라하 시 시청 청사 접견실에서 열린 프란츠 카프카 상 시상식에도 어김없이 참석하지 않았다.

《미로 속의 소녀는 20여 개 국에서 번역 출판되었고, 여러 나라의 비평가들로부터 고전의 반열에올려놓아도 손색없는 작품이라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플로라 콘웨이는 가끔 응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높은 지명도와 그에 따르는 각종 제약, 미디어의 필요 이상의 관심, 대중의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말로 노출을 기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 가령 이탈리아 작가 엘레나 페란테는 "소설은 작가가 아니라 작품을 
전면에 드러내는 장르이다."라는 말로 익명을 고집하는 이유를 설명한 적이 있다. 플로라 콘웨이는 "소설이든 다른 예술 분야의 창작물이든 일단 세상에 선을 보이고 나면 작품은 작가와는 별개로 자체의 의미를 갖는다."라고 말한다.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가장 또렷이 보여야만 하는데 오히려 가장 심하게 흔들려 보인다.
-줄리언 반스

루텔리 형사 : 독자들이 보낸 메일을 읽지 않는 이유가 뭐죠? 독자들이 당신이 쓴 소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플로라 콘웨이 : 글쎄요, 난 전혀 궁금하지 않아요.
리차드 경위 : 왜죠?

☆플로라 콘웨이 : 독자들은 어차피 읽고 싶은 책을 읽을 겁니다. 내가 쓴 소설이라고 해서 무조건 다 읽지는 않겠죠.

플로라 콘웨이 : 나는 가끔 술집에 가서 사람들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내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가서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하고, 조용히 관찰하며 어떤 인물인지 상상해보기도 하고,
마음속 깊이 감춰둔 비밀이 뭔지 가늠해보기도 해요. 소설을 쓰려면 사람들을 부지런히 관찰하고 연구해야 하니까요. 사람에 대한연구가 소설을 쓰는 데 필요한 동력과 연료를 제공해주죠.

작가들을 상대할 때면 당신은 언제나 그들이 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조나단 코

팡틴을 볼 때마다 마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지난 몇 년 사이 출판사가 성공을 거두면서 팡틴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팡틴은 얌전하고 말이 없어 어디서든 존재감이 잘 드러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자신감넘치고 대화를 주도하는 인물이 되었다. 

팡틴은 점점 더 나의 또 다른 버전이 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즐겨입는 스타일의 옷을 입었고, 내 몸짓을 따라 했고, 심지어 말투도비슷해졌다. 이야기를 나눌 때 가끔 흘러내린 머리를 귀 뒤로 쓸어넘기는 습관이나 목 오른쪽 구석에 뫼비우스 띠 문신을 새겨 넣은것까지 같았다. 팡틴은 내가 위축되어 있을 때면 오히려 기를 폈고,
어둠에 잠겨 있으면 빛을 발했다.

나에게 남다른 재주가 있다면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서 자신도 미처 알지 못하는 잠재력을 발견해내는 것이었다. 아마도 나의 유일한 장기이자 재능이었고, 소설가가 된 중요한 배경이기도 했다.

☆ 소설을 읽고 나서 나의 창작 의도와 일치하는 견해를 피력하는 독자들도 있었고, 일부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나는 이미 출판되어 세상에 나온 소설은 내 작품이기도 하지만 독자의 몫이기도 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언론사에 배포한 내 사진이라고는 달랑 한 장밖에 없었다.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흑백사진 속의 내 모습은마치 베로니카 레이크(Veronica Lake 미국의 여배우 : 옮긴이)를 연상케했다.

"언젠가 나에게 글을 쓰는 게 생의 유일한 위안이라고 했잖아?"

"내가 없는 얘기를 한 건 아니잖아. 예술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명작들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너도 잘 알 거야. 진정한 예술가들은 고통의 순간에 오히려 빛나는 작품을 완성했어."

나는 소설을 쓰면서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 내 자신을 직시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만약 소설 쓰기를 통해 나의 세계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여전히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세계에서 무의미한 시간을보내다가 생을 마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라고 말이야."
"아나이스 닌의 소설에 나오는 문장을 빗대어 말했을 뿐이야."

나는 팡틴이 실제로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느낌을받은 적이 많았다. 그저 내 머릿속에 비집고 들어와 끊임없이 잔소리를 늘어놓는 하나의 메아리 같았다. 

당신 안에서 글쓰기의 취기를 유지하라.
그러면 당신은 현실이 지닌 파괴적인 위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레이 브래드베리

나는 가끔씩 응한 이메일 인터뷰 때 ‘내가 소설을 쓰는 건 누군가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라는 뜻을 분명히 했다. 나는단 한 번도 내 소설이 혼탁한 세상을 바로잡거나 사람들을 올바른길로 인도하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독자들이 내 소설을 읽고 위안을 얻길 바란 적도 없었다.

☆나는 오스카 와일드가 소설이란 잘 쓰였거나 잘못 쓰였거나 둘 중 하나다.‘ 라고 했던 말에 기꺼이 동의하는 편이었다.

솔직히 내가 이메일 인터뷰 당시 했던 말은 단 한마디도 진정성이없었다. 오히려 나는 내가 했던 말과는 정반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소설은 우리를 잠시나마 힘든 현실에서 도피할 수 있게 해주고, 다양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의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주는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다만 만년필보다는 컴퓨터를 주로 사용하는시대인 만큼 실용적인 쓸모가 전혀 없는 시대착오적인 사치품이기도 했다.

루텔리 형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흥미로운 사연이 있는 만년필이더군요. 혹시 버지니아 울프가 이 만년필의 주인이었다는 걸 알고 있습니까?"

버지니아 울프 (1882-1941)던힐 나미키 자개 만년필, 1929년에 《댈러웨이 부인》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친구이자 연인인 비타 색빌 웨스트가 선물한 만년필로 아래와 같은 문구를 첨부했다. ‘제발 부탁이니 이 뒤죽박죽이 된세상에서 너만은 늘 같은 자리를 지키며 빛을 발하는 별이 되어줘."
마술 잉크도 한 병 첨부되어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장편소설 《올랜도 를 집필한 만년필이다.

플로라 콘웨이 (1971)술이 달린 분홍색 벨벳 실내화, 오른발 용. 2010년 4월 12일에 불가사의하게 실종된 작가의 딸 캐리가 신던 실내화.

"나는 작가이고, 이야기를 어떻게 끝맺을지는 전적으로 내가 결정해요."
"당신이 쓰는 소설이라면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겠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작가들은 간혹 현실 세계도 자기 뜻대로통제하려고 들지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을 겁니다."

인생의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르며, 공짜라고는 죽음밖에 없는데, 그 또한 삶과 맞바꾼 것이다.
- 엘프리데 옐리네크

"잉크에서 사람의 피가 검출되었다고요?"
"실험실에서는 그 피가 당신 딸의 혈액과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소설가들의 대다수가 알고 있다시피 소설을 쓸 때 ‘체호프의 총‘ 으로 회자되는 원칙이 작동된다. 1막에서 ‘벽에 총이 걸려있군요.‘ 라는 대사가 등장할 경우 2막 또는 3막에서 반드시 그 총에서 총알이 발사되게 해야 한다는 게 러시아작가 안톤 체호프가 강조한 원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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