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 정태남의 유럽 문화 기행
정태남 글.사진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마는 그 이름 자체로도 매력이 넘치는 도시다. 로마(Roma)의 철자를 뒤에서부터 읽으면 amor(사랑)가 되니 말이다. 사실 로마에 관한 여행기는 이미 여러 권 접해봤다. 김미진씨의 <로마에서 길을 잃다>와 '오기사'로 잘 알려진 오영욱씨의 <깜삐돌리오 언덕에서 그림을 그리다> 등이었는데 로마의 풍경과 아름다운 유산과 그 곳을 찾은 수많은 여행객들 그리고 현지인인 이태리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이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어 여행의 감흥을 잘 느낄 수 있었다.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은 '문화기행'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로마의 문화와 예술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따라 여정이 이어진다. 여정에 등장하는 수많은 유적과 건축물, 각종 조각품들은 로마의 유구한 역사를 눈으로 확인케 해주는 역사의 산증인들로 로마가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거듭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이는 문화의 꽃을 피웠던 과거의 영광과 그것을 소중하게 돌보고 지켰던 후손들의 노력이 빗어낸 아름답고 의미있는 결과라 할 수 있겠다. 

여행의 시작은 미켈란젤로가 디자인했다고 하는 '세계의 머리'란 의미의 캄피돌리오 광장이다. 광장의 모습은 정말 이름 그대로 세계의 중심이 되려는 강렬함으로 가득 차 있다. '세계'를 상징하는 구를 들고 있는 여신상에서 중심으로 뻗어가는 광장바닥의 패턴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머리가 되고픈 로마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팔라티노 언덕과 고대 로마의 중심지인 포로 로마노를 지나 다다른 곳은 그 유명한 콜로세움이다. 로마 제국 최대의 원형경기장이라는 콜로세움은 정말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콜로세움 바깥벽의 높이는 50미터가 넘고, 527미터에 이르는 둘레 길이는 경기장 안에 5만에서 7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라고 한다. 일단 규모는 그렇다 치고 그 내부보자. 지금은 경기장 지하 부분이 훤히 드러나 있어 그 용도를 살피기 수월하다. 또한 콜로세움은 많은 관중을 수용하는 시설인 만큼 효율적으로 관중들이 출입할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고 한다. 이 얼마나 멋진 시설인가! 이만한 규모와 편의를 갖춘 야구장 하나만 있었으면 하는 엉뚱한 바람을 가져본다.

다시 여러 유적들과 '진실의 입'을 거친 뒤 정말 부럽고, 부럽고 또 부러웠던 통일기념관을 거쳐 도착한 곳은 유명하다 못해 모르는 사람이 없는 트레비 분수다. 분수에 동전을 한 개 던지면 로마에 다시 돌아오고, 두 개 던지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세 개 던지면 연인과 헤어진다는 전설을 지닌 트레비 분수는 최고의 관광명소답게 엄청난 인파 속에 파묻혀 있었다. 동전의 액면가가 전설의 효험과 무관하다면 우리나라의 1원짜리 동전을 '투하전용동전'으로 추천한다. 단, 바람부는 날만 빼고...

몇 개의 무덤과 광장을 지나 여정의 대미를 장식하는 곳은 베드로 대성당이다. 옛 베드로 성당이 있던 반석 위에 세워진 베드로 대성당은 내로라하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손을 거쳐 완성된 최고의 건축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대성당의 내부는 보는 이를 압도하는 위용과 웅장함을 자랑한다.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은 로마 여행의 정수를 보여준 괜찮은 기행서였다. '로마를 알고자 하는 사람은 로마에 와서만 그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괴테의 말처럼 진정한 로마를 느끼려면 몸과 마음 모두 로마에 있어야겠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어봤다면 조금이나마 로마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의 밀사 - 일본 막부 잠입 사건
허수정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위기일발, 조선 통신사의 막부 잠입기

 

조선시대에 관한 팩션류의 소설들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한 가지 아쉬운 생각에 골몰하게 되었다. 그것은 ’왜 조선이라는 공간에서만 이야기하는 걸까?’라는 것이었다. 물론 <리진>이나 <검은 꽃>처럼 그 한계를 뛰어넘는 팩션들도 있긴 하지만 대다수의 것들은 좀처럼 조선이라는 공간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왕의 밀사>와의 만남은 무척 반가웠고 기쁘기까지 했다. 게다가 이 책은 앞에서 언급한 책의 시대보다도 훨씬 더 앞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요컨대 공간의 한계를 벗어났다는 점 그리고 익숙지 않은 시대를 그렸다는 점 이 두 가지가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가운데 소설을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된 내용은 일본(쇼군)의 요청에 의하여 방문한 조선통신사가 의문의 살인사건에 휘말려 외교행보가 파행의 위기에 놓이는 상황에 처하자 조선통신사의 일행 중 남용익의 통역을 수행하던 역관 박명준이 일본 막부의 이해관계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주시하면서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는 것이다.


원래 효종의 명을 받아 ’왕의 밀사’의 부임을 받은 자는 종사관 남용익이었다. 하지만 그는 효종과 명준을 잇는 다리와 같은 인물일 뿐 진정한 밀사 노릇은 명준이 하게 된다. 이는 신분의 귀천을 파괴하는 통쾌한 설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명준은 자신의 신분에 아랑곳하지 않고 피의 향연이 펼쳐지는 ’최전방’에서 고국의 안녕을 위해 맡은 바 임무를 묵묵히 수행한다.

한편 조선통신사에 이러한 위기가 찾아온 이유는 당시 일본 막부 내에 진행되던 권력쟁탈전 때문이다. 어린 쇼군의 즉위와 그런 쇼군을 못미더워하는 권력의 핵심들 그리고 쇼군을 보좌하는 최측근들까지 하나같이 모두 꿍꿍이가 있었다. 마치 저마다의 이기적인 시각으로 사건을 해석하는 라쇼몽의 인물들처럼 그들은 저마다의 목적을 위해 어린 쇼군을 이용하려 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었고, 그것은 그들의 발목을 잡는 뼈아픈 덫이 되고 만다. 

사건의 해결은 생각 이상으로 성숙했던 쇼군이 발휘한 기지와 인내와 끈기로 사건을 대했던 명준에 의해 해결된다. 좀 아쉬운 점은 사건 해결이 주는 임팩트가 약하다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 명준의 추리와 판단에 의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는 부분은 강한 통쾌함보단 후련한 해소감만 줄 뿐이었다. 좀 더 치밀하게 사건을 배열해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사건에 대한 모든 게 밝혀지고 사건을 에워싼 비밀이 한꺼번에 폭발하듯 백일하에 드러나는 그런 짜릿함을 갖출 필요가 있다. 그래도 일본 막부를 배경으로 한 아주 신선한 느낌의 팩션을 만났다는 점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왕의 밀사>의 저자는 일본에서 또 다른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는 데(이미 쓰고 있을 수도...) 그 작품에선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지 벌서부터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연한 축복
오가와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읽는 순간만큼 앎으로 채워지는 시간이 설레면서도 기쁘게 느껴지는 때는 그다지 많지 않다. 아마 사랑하는 그 또는 그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순간을 제외하면 그런 감정을 느끼는 일은 전무하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오가와 요코의 소설을 읽을 때가 바로 그런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뭔가가 부족해 보이는 이들의 사랑얘기며 중요한 일을 까맣게 잊고 멍하니 있거나 알 수 없는 사건에 열을 올리는 이야기 또는 기묘하다 싶을 정도의 집착에 관한 내용 등 요코의 소설은 그녀를 단정 지을 수 있는 무언가로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이야기에 거침없이 빠져든다.

처음에는 변주에 능한 그녀의 기교에 매료된 거라고 생각했었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에서 보여준 사랑과 <호텔 아이리스>에서 그린 사랑은 '사랑이야기'라는 껍데기를 빼면 전혀 다른 내용물이다. 그래서 그 두 소설이 요코의 손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다. '이러면 안 되는데'하는 주제 넘는 노파심과 당혹감마저 들었다. 그런데 그런 그녀의 글이 전혀 싫지 않았다. 퇴폐와 순수라는 극과 극을 오가는 그녀의 글쓰기에 경악하면서도 표현의 한계나 방향에 아랑곳하지 않는 그녀가 글쓰기가 퍽 괜찮아 보였던 것이다. 이런 나의 그녀를 바라보는 시각에 변화가 생긴 건 <임신 캘린더>, <미나의 행진>, <슈거 타임> 등 요코의 다른 작품을 만나게 된 후부터다.

특히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임신캘린더>는 '기교파'라는 그녀에 대한 나의 단순한 생각을 완전히 송두리째 뽑아버렸다. 기교라는 꽃다발을 만들기 전에 이미 그녀의 소설은 하나의 꽃이었다. 종잡을 수 없는 흐름과 몽환적이고 야릇한 느낌의 사건들 게다가 감정의 기복을 넘어 혼란스러울 지경에 이르게 만드는 특유의 필력. 이 모든 게 어우러져 있는 아주 새로운 느낌의 요코를 만났다. 기교 없이도 빛나는 싱싱한 한 송이 꽃을 본 것이다.

 <우연한 축복>은 이렇게 이미 그녀의 작품세계 깊이 와있는 내게 그녀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 소설이다. 아니 진솔한 면모라고 해야 좀 더 정확하려나? 7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이 소설들은 연작이라는 형식적인 다리가 놓여있다. 그리고 종잡을 수 없는 글쓰기를 하는 그녀의 취향답게 연작이지만 시간의 순서는 가볍게 무시하고 있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수록된 단편의 대다수는 '누군가 사라진다'라는 것과 글쓰기의 계기 또는 배경이 공통된 제재로 쓰였다. '사라짐으로 해서 생겨난 공백을 글쓰기로 메운다'라는 아주 단순한 공식과도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책에 담긴 모든 단편을 아우르는 표현이라고는 할 수 없다. 다시 생각해 보니 이 책의 제목이 힌트가 될 것 같다. <우연한 축복>이라는 제목처럼 각각의 단편에는 우연히 어떤 만남이 생겨 그로인해 축복처럼 좋은 일은 벌어진다. 그리고 그런 사건들의 이면에는 작가 오가와 요코의 진솔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단서가 포착된다.

우선 [실종자들의 왕국][도작][기리코의 실수][시계 공장]은 과거 또는 현실에서의 우연한 만남과 그것이 창작의 계기가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에델바이스] 역시 우연한 만남에서 비롯된 이야기로 그 만남의 흔적이 희미해질 무렵 기뻤던 과거의 추억과 조우하게 된다. 특이한 병명이 제목인 [누선수정결석증]도 우연히 만난 남자에게 뜻밖의 도움을 받는 이야기며 [소생]은 수많은 우연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우연의 향연'으로 의미심장했던 건 주인공 그녀가 우연히 말을 잃게 되고 그것을 다시 찾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녀는 갑자기 말을 하지 못하게 됐고 '무언' 속에서 과거에 썼던 말들이 벽이 돼버린 막막한 현실에 처하게 된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 하지만 역시 이 경우도 '우연한 무엇'으로 극복하게 된다.

 지나칠 정도로 우연함이 넘쳐나는 이야기, 바로 이 소설이 그렇다. 하지만 우연이란 말처럼 우리 삶의 모습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말도 없을 것이다. 학창시절 우연히 만난 친구들과 그 만남에서의 축복과도 같은 즐거운 추억, 우연히 일별한 이벤트의 참가와 당첨 등 우리의 일상 곳곳에 자리한 우연과 그 우연으로 파생된 축복과 같은 일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어쩌면 이 소설과의 만남도 또 다른 우연한 축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이 소설의 만남과 더불어 또 하나의 우연한 축복을 들자면 이 소설을 통해 작가의 본모습을 조금이나마 추측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소설이므로 이 단편소설들이 모두 오가와 요코가 직접 경험한 일에서 얻어진 것이라고 확신하는 일은 위험하다. 그렇지만 소설 속 '그녀'가 어느 정도는 요코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건 맞는 것 같다. 특히나 내용 중에 <호텔 아이리스>를 언급한 부분이 있어 이 소설 어딘가에 분명 그녀의 삶 일부가 녹아있다는 사실에 무게를 실어준다.

<우연한 축복>을 들고 온 오가와 요코와 만남은 정말 즐거웠다. 은근슬쩍 자신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같아 이국의 독자인 나에겐 참으로 행운처럼 느껴지는 책읽기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제목 그대로의 느낌도 충분히 경험할 수 있었다.. 우연히 내 손에 들어온 이 책을 읽고 우연히 이 시간에 서평을 쓰고 또 우연히 누군가 이 서평을 보게 되는 이 모든 일에 부디 축복이 함께 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텔 마다가스카르 - 스물넷의 달콤한 여행 스캔들
Jin 지음 / 시공사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너무 더워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는 7월의 어느 새벽녘이었다. 침대에서 뒤척이기를 반복했고 참다못해 샤워도 몇 번 해봤지만 더위를 가시는 데는 별 소용이 없었다. 몇 시간만 지나면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이러다간 한 숨도 못잔 채로 시험을 봐야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는 수 없이 수면을 유도하기 위한 책읽기를 하기로 결심했다. 지루한 책을 읽으면 오히려 짜증 때문에 역효과가 날 것 같아 재밌을 것 같은 책을 찾아보았다. 그 때 손에 잡힌 책이 바로 <호텔, 마다가르카르>다. 

그런데 이런! 이 책 너무 재밌는 게 아닌가! 책을 읽으면서 잠이 들기는커녕 오히려 읽을수록 정신이 더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결국 난 잠을 포기해야 했다. 독서를 마친 시간은 아침 6시 20분. 벌써 날은 훤히 밝아 있었다.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난 '1시간만 잘까?'하는 유혹을 뿌리치고서 주섬주섬 아침을 준비했다. 시험은 뭐 어리벙벙한 상태에서 어떻게 풀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의 섬나라라고 한다. 이런! 난 아프리카에 섬나라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라고 하는데 왜 몰랐을까? 그래도 섬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유럽 놈들이 멋대로 반듯하게 나눠버린 국경으로 인한 문제는 없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지도...대다수의 마다가스카르인들은 모국어인 마다가스카르어를 쓴다고 한다. 일부는 불어를 쓰기도 한다는데 식민지배의 유산으로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다른 몇몇 아프리카 나라들과는 달리 극심한 기아나 끔찍한 내전을 겪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이제 마다가스카르에서의 여정을 살펴보자. 저자인 진은 P라는 한국인의 집을 기점으로 해서 본격적인 여행에 나선다. 진의 표현대로 줄긋기가 시작된 것이다. 안타나나리보, 암보시차, 피아나란추아 등등 처음 들어보는 낯선 여행지가 생기 넘치는 글과 함께 어우러진 현지인들의 모습과 일상이 담긴 사진을 통해 내 마음속에 전해졌다. 밝은 모습의 아이들과 나른하게 누워있는 개들...정말 사랑스러운 풍경이었다.

진이 프랑수아의 집에 초대받아 저녁을 같이 먹고 프랑수아의 친구들, 동생들과 어울리고 또 며칠을 함께한 일정은 <호텔, 마다가스카르> 최고의 여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삶에 직접 다가가 그들과 함께하는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 완성되는 순간이 아닐까?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나면 아무리 친한 친구의 집이라도 하룻밤 신세지는 일이 쉽지 않은 법인데 하물며 여행지에서 사귄 친구의 집에 묵는 다는 건 그보다 더한 일이 아닌가! 어쨌든 진은 대견스러울 정도로 쭈뼛거리지 않고 그들의 생활권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한편 여정이 진행되는 동안 <호텔, 마다가스카르>가 평범한 여행에세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스물넷의 달콤한 여행스캔들'이라는 부제에서도 대충 느낄 수 있는데 다름 아닌 여행자인 진과 그녀의 주변인물인 렁드리 그리고 P와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묘한 기운 때문이다. 친절하고 어른스러운 렁드리씨는 진에게 호감이 있는 게 분명했다. 이런저런 행동을 통해 드러나는 배려와 관심은 그런 감정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반대로 무뚝뚝하고 건조하기만 한 P라는 사람도 자신의 편안한 보금자리에 둥지를 틀은 진이 결코 싫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들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로맨스적인 느낌 덕에 이 책을 더욱 재밌게, 정말 날 새는 줄도 모르고 읽게 되었다.

80일의 무지막지한 여행 일정이 끝날 무렵 잠을 못 잤다는 아쉬움보다 재밌는 책을 다 읽어버렸다는 아쉬움이 더 큰 피곤으로 다가왔다. 책을 통해 진과 나누었던 교감도 이로써 아쉽게 끝나버렸다. 마다가스카르의 투박한 일상도 여행의 낭만도 이제는 마음 한구석에 고이 접어 간직하는 수밖에... 언젠가 그 감흥이 되살아나는 날 다시 한 번 뜨거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거나 그 곳의 눈부신 태양 아래 서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긋나긋 워킹
최재완 지음 / 바우하우스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소개팅에 관한 운명론적 고찰이 담긴 상큼한 연애소설

소개팅에 별 기대를 하지 않는 당신, 소개팅을 스치듯 지나가는 가벼운 만남쯤으로 여기는 당신 이 소설을 보라. 소개팅은 충분히 기대할 만한 무거운 만남임을 느끼게 될 것이다. 또 남녀 간의 운명적인 만남을 미성숙한 소녀취향 쯤으로 치부하는 당신도 이 소설을 보기 바란다. 운명이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은 인연의 고리가 만들어 낸 뜻밖의 소중한 만남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기분 좋은 걸음을 연상시키는 제목 <나긋나긋 워킹>은 표지에 나오는 표현대로 살짝 꺾어진 청춘들의 소개팅과 그것을 계기로 이어지는 두 남녀 간의 밀고 당기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개팅과 나긋나긋 워킹이라...왠지 모르게 만족할 만한 소개팅으로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 채 싱글벙글 웃으며 걷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이 연상된다. 하하 내가 너무 앞서갔나?

사연녀과 궁상남의 만남

계란 한 판을 꽉 채운 나이 서른에 임박해 있는 임해진은 친구 경주를 대신에서 소개팅에 나가게 된다.(절대 싫은 건 아닌 듯) 그리고 거기서 오다기리 죠를 닮은 챙김성? 있는 남자 윤남욱을 만나게 된다. 동종업계 사람이라 통하는 구석이 있어 대화는 쉽게 이어지고, 호기심과 호감이 반반 섞인 모호한 감정으로 둘의 소개팅은 2차를 거쳐 3차로까지 계속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해진은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술에 못 이겨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는 실수를 범한다.

위기 뒤에 기회라고 했던가? 첫 만남부터 술에 떡이 되어 집으로 가는 통에 상대방 남자로부터 마이너스 점수를 찍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해진은 다시 한 번 남욱과 만나게 된다. 물론 3차 때 두고 온 시계가 만남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지만 말이다.

그들의 두 번째 만남! 해진이 장소를 패밀리 레스토랑 정하자 남욱은 우회적으로 다른 곳으로 하자는 신호를 보내지만 여자인 해진이 그걸 알아먹을 리가 있나!!! 센스 없는 해진의 감각을 탓하면서 식사를 하려는 찰라, 가까운 테이블에 해진의 옛 남친이 자신의 패밀리를 이끌고서 패밀리 레스토랑에 온 것이 아닌가! 자꾸만 불안해하는 해진을 관찰한 남욱은 전후 사정을 단박에 캐치한 후 묘안을 내서 해진을 위로함과 동시에 상대방 그놈에게는 심리적 박탈감을 선사한다. 해진의 사연을 알게 된 남욱은 세 번째 만남을 기약하고 헤어지지만 해진도 이 글을 읽는 나도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왜 일까?

왠지 불안한 세 번째 만남. 기분 좋게 영화를 본 해진과 남욱은 아주 당연한 것처럼 술 한잔하기로 타협을 본다. 그리고 이어지는 30대 남녀의 허심탄회한 대화. 하지만 해진의 몸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만남은 예상보다 일찍 파하게 된다.

그리고 찾아온 공백기. 해진은 발을 동동 구르며 남욱의 연락을 기다리지만 남욱은 우연히 마주친 옛 사랑 그녀로 인해 휘몰아치는 감정의 폭풍에 휘말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게다가 해진에 관한 사소한 오해까지 생겨버렸다. 이 두 사람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나긋나긋 워킹>은 한 쌍의 소개팅 남녀가 운명적으로 만나고 서로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통해 호감과 연분을 느끼는 이야기를 다룬 명랑한 연애소설이다. 여자인 해진의 입장에서 그리고 남자인 남욱의 입장에서 서로에 대한 기대와 오해가 교차하는 가운데 진행되는 이야기는 많은 재미와 웃음을 준다. 게다가 해진의 친구 경주와 남욱의 친구 오과장이 펼치는 조연들의 감칠맛 나는 활약은 책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하지만 지나치게 좁은 인물들의 인간관계는 운명론을 강조하기 위한 작위적인 장치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충분히 재미있고, 만족할 만한 '연애론'을 지니고 있다. 그 재미는 앞서 언급한 그것이고, 연애론이라 함은 남녀 간의 만남에서 부족한 그 '한 끗'이 다름 아닌 마음에 있다는 저자의 생각이다.

부족한 그 한 끗 때문에 연애의 달콤함을 느끼지 못하는 당신, 우선 그대의 마음을 바로잡기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