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풍경화첩 - 지금, 여기, 서울의 진경을 그린다
임형남, 노은주 지음 / 사문난적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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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담은 서울의 어제와 오늘

[다큐멘터리 3일]이라는 프로를 종종 챙겨본다. 이 프로에는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다 하는 우리 이웃들의 애환을 담겨있다. 또한 이 프로는 동대문 운동장. 피맛골, 간이역 등 사라져가는 풍경에 대한 아쉬움과 애착을 담아내기도 하는데 그것들이 사라지기 전에 직접 가서 볼 수 없는 나 같은 이에게 작은 위안을 준다. 곧 과거의 시간 속으로 묻히게 될 풍경들을 화면을 통해서나마 볼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주는 것이다.

<서울 풍경 화첩>에도 사라져가는, 변해가는 서울 풍경에 대한 애환이 서려있다. 다만 지은이는 그것이 아쉽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서울은 많이 변했지만, 아쉽다고 쉽게 말하는 일은 조심스럽다. 실은 피맛길의 생선 굽는 냄새보다는 그 길에 담긴 옛 사람들의 애환이 애달프고, 달동네의 골목이 마냥 아름답다 하기엔 그 속에 절박한 생활을 알기에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여행이라도 갔다가 돌아올 때 반기는 도시의 불빛은 벅차도록 사랑스럽다."

철없이 달동네의 골목이 아름답다 하는 이가 누군지는 몰라도 피맛길의 골목처럼 과거부터 지금까지 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공간이 뭉텅이로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지지 않는 다는 사실이 조금은 놀랍다. 그 골목이 왜 옛 사람들만의 애환이 담긴 곳이라고 생각하는지, 요즘 사람들의 애환과 피로를 달래주는 작지만 소중한 공간임을 정녕 모르고 한 말인지 궁금했지만 이미 변해버린 그곳을 두고 따져봐야 아무 소용이 없을 터다.

<서울 풍경 화첩>에 그려진 서울의 풍경 중에서도 특히 관심 있게 본 곳은 아직까지도 건실하게 남아있는 궁궐이었다. 경복궁과 칠궁 그리고 윤현궁의 모습에서 그래도 이 서울이란 곳에 몇몇 사라지지 않은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몇 백 년 전의 유산조차 이리 초라하기 그지없는데 그 이전 시대의 역사가 남아 있길 바라는 건 아주 사치스런 생각일 것이다. 수도 서울은 과거의 흔적을 차례로 지우며 그저 현실에 충실한 도시의 면모만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경복궁의 서쪽에서 인왕산 무릎께까지를 가리키는 동네 ’서촌’은 서울의 역사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지은이는 서촌을 이렇게 바라본다. "서촌은 그런 식이다. 영조가 나오다가 뜬금없이 정철이 나오기도 하고 세종대왕이 나오고, 영조가 나오다가 이항복이 나오기도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서촌을 보는 것은 마치 폐사지를 헤매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과거의 시간이 잘려진 채로 한데 섞인 곳, 서촌은 그런 곳이었다.

그림에 담긴 서울의 풍경은 쓸쓸하고 적막했다. 도시는 단정치 못했고, 과거의 유산들은 질식해 있었으며 자연은 사람들에게서 더욱 멀리 있었다. 변해가는 서울의 모습에 선뜻 아쉽다고 말하길 주저했던 지은이였지만 풍경 곳곳에 녹아있는 푸념에서 진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하지만 서울의 혼탁함과 속도감을 받아들이며 사는 인구는 지은이를 포함해 천만이 넘는다. 그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서라도 개발과 발전의 속도는 더딜 수 없다. 다만 거침없는 변화 속에서도 문화에 대한 운신의 폭을 두어 되도록 많은 유산들을 지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변화가 필연적이듯 문화유산에 대한 보존 역시 필연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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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생각들 - 유가에서 실학, 사회주의까지 지식의 거장들은 세계를 어떻게 설계했을까?
황광우 지음 / 비아북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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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를 설계한 위대한 생각들

시대적인 요구로 인한 생각의 변화는 인류의 역사를 바꾼 커다란 줄기라 할 수 있다. 지배층에 억압을 받으며 살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들고 일어나 자유를 외친 것도, 탁상공론을 질책하며 실사구시를 강조하던 것도, 모두 시대가 변했다는 걸 몸소 느낀 자들의 새롭고도 위대한 생각 때문이었다. 시대가 변하는 시점에는 항상 묵은 시절의 병폐가 극에 달해 있었다. 가진 자들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부유했지만 그 사실을 쉽게 망각했고, 없는 자들은 더 이상 안 좋아질 수 없었기에 목숨을 건 투쟁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밖에 없었다.

밑에서부터 달아오른 거대한 변화의 물결은 실로 막강했다. 그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았으며, 뒤돌아볼 여지도 남기지 않았다. 유럽 각 국에서 벌어진 불같은 혁명과 우리의 동학 농민 운동이 바로 그런 거대한 물결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부패하고 타락한 왕족과 귀족들을 끌어내리며 그들이 외쳤던 것, 악질 탐관오리를 숙청하며 그들이 얻고자 했던 것, 그것은 인간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자유와 존엄일 것이다. 하지만 유럽은 혁명에 성공해 새로운 생각들이 커가는 사회로 진입한 반면 우리는 무력에 의해 생각의 싹이 짓밟혀버렸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생각들>은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르게 된 배경을 설명하며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생각들이 주류의 이념으로 남거나 아니면 우리의 경우처럼 어떤 외압에 의해 뿌리 뽑혔는지를 보여준다. 흥미로웠던 건 유가와 법가 사상이 중국의 주류 사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 대목이었다. 겉으론 유화적인 유가의 왕도정치, 예의정치를 표방하는 척하면서 실제 통치는 냉혹하고 잔인한 법으로써 백성들을 다스렸다는 것이다. 반면에 춘추전국 시대에 난립하던 다른 사상들은 현실정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해 쓰이지 못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 하나 새로 알게 된 점은 절대왕정의 중상주의 정책이 부른 ’세계의 재편’이었다. "중상주의는 국민국가를 형성시키는 정책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 사이에는 ’영국의 경제’, ’프랑스의 경제’라는 생각이 굳어졌고, 프랑스나 영국이라는 한 나라를 중심으로 한 전국 단위의 경제생활이 보편화되었다. 이는 중세에 없었던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때부터 그동안 보편적으로 쓰이던 라틴어를 사용하지 않고 각국의 언어로 된 책이 출판되었다. 게다가 종교까지도 분파가 생겨 사람들은 자신의 각기 개별적인 종파를 갖게 되었다.

위의 모습은 국가나 국민 혹은 민족을 의미하는 ’네이션’이란 단어가 생겨난 과정이자 새로운 생각이 세계를 재편하게 한 예이다. 세상을 지배했던 과거의 주된 생각이 약해지자 금세 새로운 생각이 그 자릴 대신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생각을 위대한 생각이라고 불러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보편적인 권익과 실용정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계급주의를 타파한 자유주의와 절대권위를 무너뜨린 민주주의는 위대한 생각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과연 또 어떤 위대한 생각이 인류의 역사를 바꿀지 앞으로 도래할  새로운 역사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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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추억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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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그렇게 그의 머릿속을 지배해갔다

늘 안개에 싸여있는 퇴락한 도시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그리고 피해자들을 기묘한 형태로 훼손한 살인범의 잔인한 행각. 우중충하고 스산함이 느껴지는 분위기 속에서 범인과의 싸움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소설은 경찰과 살인범간의 쫓고 쫓기는, 박진감 있는 전개를 택하는 대신 살인범의 과거와 심리에 초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그래서 소설은 과거로 되돌아가는 장면이 많고, 인물들의 심리상태에 대해서 구체적인 묘사를 하기도 합니다.

연쇄살인을 다루는 모든 소설이 그러하듯 살인범이 양산해 내는 시체가 점점 늘어날수록 사건의 단서는 늘어나고 사건의 해결을 맡은 주인공의 의욕은 강해집니다. 하지만 소설은 범인을 향해 정점으로 치닫지 않고, 한번 꺾어 중심인물들의 과거사를 늘어놓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과거와 그 과거로 인한 현재의 심리상태는 연쇄살인사건에 얽힌 모든 수수께끼에 중요한 단서가 되고, 극 후반부의 극적인 반전 요인이 됩니다.

사건의 배경이 되는 안개 가득한 침니랜드는 주인공 매코이의 의식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모든 것이 희미한 안개 속 세상처럼 매코이는 머리에 입은 총상으로 기억의 단절과 의식의 암전을 겪습니다. 여기에 거짓기억과 망상이 더해져 그는 ’자아의 분절’까지 겪게 됩니다. 살인범과의 마지막 조우, 끔찍했던 고통의 기억, 직업적 사명감, 자신의 기억에 덧칠해진 거짓말 등등 뒤죽박죽된 그의 기억은 그를 전혀 다른 두 인간으로 만듭니다.

범죄현장을 종횡무진 하는 매코이와 고양이를 찾아 헤매는 매코이는 왠지 달라보였지만 혹시나 하는 의혹은 없었습니다. 이야기의 마지막에 가서 모든 게 드러나는 순간 아! 하고 느낄 뿐이었죠. 소설은 재미있었습니다. 다만 이렇다 할 복선도 없이 극 후반부에 너무나 많은 사실이 드러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심리 스릴러’를 표방한다면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범행 사이에 좀 더 연관 깊은 이야기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한편 <악의 추억>은 상당히 흥미로운 구성을 취했습니다. 바로 소설 속에 퍼즐 게임을 넣은 것입니다. 퍼즐은 이 소설의 중요한 구성 중에 하나입니다. 퍼즐 속 단어가 ’그’에 의해 현실의 사건으로 튀어나오기 때문입니다. 퍼즐은 마치 충동의 기폭제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의식의 밑바닥에 침잠해 있던 단어가 정신이 혼미해진 틈을 타 의식세계로 부상한 뒤 ’조합된’ 사건을 일으키는 셈이죠.

소설을 읽는 내내 이 이야기가 <블랙아웃>이라는 영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기억의 암전을 겪는 사람과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이라는 두 가지 축이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주인공의 뼈아픈 기억 또한 닮아있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한 인간이 겪는 기억의 암전과 모종의 음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극적 반전만을 취하려 합니다. 반면에 이 소설의 경우는 불명확한 의식세계와 주인공의 과거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각인된 현실감각(퍼즐)이 조합돼 한 편의 기막힌 심리 추리극을 완성합니다.

한 인간의 충격적인 과거와 그 사건으로 인한 스트레스 그리고 의식세계에서 보았던 단어는 그의 무의식 세계에서 뒤범벅되어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어쩌면 그가 그토록 증오하던 악이 상처 입은 머리에다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까지 앓던 그의 의식을 순간적으로 잠식했던 건 아닐까요. 약하디약한 한 가엾은 영혼은 그렇게 악의 기운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뿌리칠 수 없는 악의 마력 때문에 그는 다른 인간이 되었던 겁니다. 그에게 슬픈 운명을 떠넘겼던 악은 그렇게 추억거리 하나를 만들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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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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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의 허울뿐인 신화 깨기

신자유주의의 옹호론자들은 세계화(더불어 자유 뮤역이)가 더 큰 부를 가져다 줄 것이며 세계화로 인해 줄어드는 손실은 얻어지는 이익이 비해 턱없이 작다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지금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세계화라는 거대 물결 속에 광풍처럼 불어 닥친 자유 무역은 이미 기술과 자본 면에서 안정 단계에 접어든 선진국들에게만 엄청난 부를 가져다줄 뿐이다.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들이 강요하는 자유 무역이란 미명아래 자국의 성숙치 못한 산업을 조기에 경쟁에 노출시켜 큰 피해를 입었으며 또한 그로인해 그 국민들은 돌이킬 수없는 좌절을 맛봐야했다.

세계화의 옹호자들은 오늘날 인도경제의 성공원인을 1990년대 초의 무역과 금융의 자유화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 몇 가지 연구들은 인도의 성장가속화가 실제로는 1980년대에 시작되었다는 점을 들어 ’개방 확대로 인한 성장 가속화’라는 단순한 논리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게다가 1990년대 초의 무역자유화 이후에도 인도의 평균 제조업 관세는 30% 이상이었다. 1990년대 이전에 인도의 일부 산업부문에서 보호무역주의가 지나쳤던 것만은 훨씬 더 큰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을 거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인도의 경우처럼 자유 무역이 곧 경제 성장을 담보하는 중요한 결정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물론 자유 무역으로 자국의 경쟁력 있는 산업의 수출 활로를 통해 경제 성장을 꾀할 수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만 부분적이며 제한적인 생각일 뿐이고, 미래를 위해 육성하고 보호해야 할 산업들이 무작정 자유 무역이라는 링 위에 올라가버리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요컨대 세계화라는 불가피한 추세 속에서 선진국들의 달콤한 꼼수에 넘어가 준비도 없이 자유 무역에 사인하는 일은 자국의 경제 성장은 결코 이익이 되지 않는다.

한편 부단히 자유 무역의 신화를 설파하는 ’나쁜 사마리아인’인 선진국들 역시 그들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자유 무역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들 역시 자국 산업의 보호를 위해 적절히 관세를 매겼으며 자국 산업들이 경쟁력을 갖춰 전면적인 자유 무역을 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금의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 무역을 강요하는 이유는 그 어떤 경쟁 없이 지금의 불균형을 공고히 한 채로 막대한 이익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개발도상국들이 무역에 제한을 두는 일과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위해 보호하는 일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다.

또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신자유주의자들이 강조하고 중요시 하는 물가상승 억제에 관한 주장은 상당 부분 왜곡되어 있다고 전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높은 물가상승률을 악으로까지 규정하지만 가파른 경제 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국가에 물가 상승은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마련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일종의 가치 상승이 불러온 자연스러운 흐름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물가상승을 강압적으로라도 억제하려는 것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그들의 소득과 자산의 보호에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인위적으로라도 물가상승률을 낮추면 이미 가지고 있는 소득은 큰 위험 없이 잘 보존되기 때문이다.

<나쁜 사마리안인들>은 자유 무역이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수용하고 따라야 할 만큼 완벽한 방법이 아니라고 시종일관 역설한다. 그저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입맛에만 맞는 정책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개발도상국에게 자유 무역을 주창하고 강요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국제기구들을 통해 개도국들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이 난국을 타개할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일단 저자의 지적대로 ’쉽고 편한 일’에 대한 생각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자유 무역이라는 것이 경쟁력 없는 개도국의 산업과 겨뤄 이득을 취하는 쉽고 편한 방법이라는 생각 때문에 추진되고 있다면 더 큰 이득을 위해 할 수 있는 더 쉽고 편한 방법이 개도국의 성장을 돕고 경쟁력을 키워주는 일이라고 사람들을 믿게 하는 것이다. 저자가 근거로 제시하는 것처럼 개도국이 경쟁력을 갖추고 일정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면 구매력을 지닌 사람의 수가 더욱 늘어날 것이고, 그들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급한 생각으로 단기적인 이익에 급급하지 않는 인내력과 또 그들의 인내력을 북돋아주는 격려가 있다면 나쁜 사마리인이 아닌 착한 사마리안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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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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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과 기아, 그 절망의 현실과 마주하다

과거 어느 때와 견주어 봐도 더 부유해지고, 세계 각국끼리의 시간적인 거리가 더욱 가까워진 이 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손닿을 길 없는 빈곤과 기아라는 절망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고 있다. 한쪽은 잉여 생산물이 넘쳐나고 있는 데에 반해 다른 한쪽은 빵 한 조각조차 먹을 게 없어 언제 있을지 모를 구호를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가 비만을 걱정하고 있을 때, 그들은 쓰레기를 뒤지거나 아사 직전의 상태에 내몰려 있는 것이다.

그들이 그토록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이유는 다양하다. 척박한 땅이나 날씨와 같은 기후적 요인에서 내전, 압제와 같은 정치, 종교적인 이유 그리고 국가도 어쩌지 못하는 부의 불균형 등이 주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 좀처럼 해결의 조짐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악화일로에 있다는 사실이다. 가난한 나라의 기아인구와 무심한 나라의 빈곤층은 그래서 해마다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

더불어 더욱 안 좋은 여건은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세계의 이웃들이 불충분한 구호 외에 다른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통해 프랑스와 미국, 유럽연합 등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아프리카나 남미 지역의 평화와 민주화를 방해했으며 그들이 스스로 자립하지 못하고 대다수의 국민들이 폭군과 전쟁에 시달리면서 타국의 작은 원조만을 기다리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풍부한 천연자원과 비옥한 토양을 가진 몇몇 아프리카 나라들이 오로지 돈에 눈이 먼 군벌들과 기생충 같은 국가의 수뇌부들 때문에 가난에 허덕이는 줄 알았었다. 물론 이 같은 경우도 맞는 이야기지만 가려진 또 하나의 사실인 선진국들의 은밀한 방해공작이 그들의 궁핍한 삶을 더욱 부채질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단일 작물만을 재배해야 하는 나라, 헐값에 질 좋은 생산물을 헌납해야 하는 나라, 바로 이들 나라 뒤에는 몇몇 선진국들의 검은 손이 있었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기는커녕 목숨조차 위협하는 나라를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그들의 삶은 처참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기아는 거의 필연적인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아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인 구호의 손길 역시도 미약하다. 가망이 없는 이에게는 치료조차 할 수 없으며 접근 불가능한 나라에 있는 사람에게는 음식물조차 전달할 수 없다. 난관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고, 보급품은 절대부족인 상황에 있다.

기아는 현재 전 세계 곳곳에 만연된, 최우선적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지만 우리는 그 상황조차 잘 모르고 있다. 신종 플루와 같이 자국의 국민이 위협당하는 일이 아니면 언론에서는 거의 언급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영양 결핍으로 생사를 헤매는 아이들과 더럽고 오염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최악의 상황에서 겨우 목숨을 이어가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그런 삶에 주목하지도 관여하지도 않고 있다.

그렇다면 희망은 없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사회 구조의 근본적인 전복이 필요하다고 한다. 우선 신자유주의 같은 폐단 많은 시장원리를 없애고, 부의 불평등을 획기적으로 개산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또한 가난한 나라 역시 개혁의 칼을 세워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빈곤과 기아의 세계화를 막는 시작은 집중된 부와 권력을 누그러뜨리고, 자력으로 일어서는 법을 터득하는 것부터 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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