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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신자유주의의 허울뿐인 신화 깨기
신자유주의의 옹호론자들은 세계화(더불어 자유 뮤역이)가 더 큰 부를 가져다 줄 것이며 세계화로 인해 줄어드는 손실은 얻어지는 이익이 비해 턱없이 작다고 강조한다. 그렇지만 지금의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세계화라는 거대 물결 속에 광풍처럼 불어 닥친 자유 무역은 이미 기술과 자본 면에서 안정 단계에 접어든 선진국들에게만 엄청난 부를 가져다줄 뿐이다.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들이 강요하는 자유 무역이란 미명아래 자국의 성숙치 못한 산업을 조기에 경쟁에 노출시켜 큰 피해를 입었으며 또한 그로인해 그 국민들은 돌이킬 수없는 좌절을 맛봐야했다.
세계화의 옹호자들은 오늘날 인도경제의 성공원인을 1990년대 초의 무역과 금융의 자유화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최근 몇 가지 연구들은 인도의 성장가속화가 실제로는 1980년대에 시작되었다는 점을 들어 ’개방 확대로 인한 성장 가속화’라는 단순한 논리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게다가 1990년대 초의 무역자유화 이후에도 인도의 평균 제조업 관세는 30% 이상이었다. 1990년대 이전에 인도의 일부 산업부문에서 보호무역주의가 지나쳤던 것만은 훨씬 더 큰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을 거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인도의 경우처럼 자유 무역이 곧 경제 성장을 담보하는 중요한 결정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물론 자유 무역으로 자국의 경쟁력 있는 산업의 수출 활로를 통해 경제 성장을 꾀할 수도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만 부분적이며 제한적인 생각일 뿐이고, 미래를 위해 육성하고 보호해야 할 산업들이 무작정 자유 무역이라는 링 위에 올라가버리면 그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요컨대 세계화라는 불가피한 추세 속에서 선진국들의 달콤한 꼼수에 넘어가 준비도 없이 자유 무역에 사인하는 일은 자국의 경제 성장은 결코 이익이 되지 않는다.
한편 부단히 자유 무역의 신화를 설파하는 ’나쁜 사마리아인’인 선진국들 역시 그들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자유 무역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그들 역시 자국 산업의 보호를 위해 적절히 관세를 매겼으며 자국 산업들이 경쟁력을 갖춰 전면적인 자유 무역을 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지금의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 무역을 강요하는 이유는 그 어떤 경쟁 없이 지금의 불균형을 공고히 한 채로 막대한 이익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개발도상국들이 무역에 제한을 두는 일과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위해 보호하는 일을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다.
또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신자유주의자들이 강조하고 중요시 하는 물가상승 억제에 관한 주장은 상당 부분 왜곡되어 있다고 전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높은 물가상승률을 악으로까지 규정하지만 가파른 경제 성장을 구가하고 있는 국가에 물가 상승은 필연적으로 따라오게 마련이라고 저자는 밝힌다. 일종의 가치 상승이 불러온 자연스러운 흐름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물가상승을 강압적으로라도 억제하려는 것일까. 두말할 것도 없이 그들의 소득과 자산의 보호에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인위적으로라도 물가상승률을 낮추면 이미 가지고 있는 소득은 큰 위험 없이 잘 보존되기 때문이다.
<나쁜 사마리안인들>은 자유 무역이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수용하고 따라야 할 만큼 완벽한 방법이 아니라고 시종일관 역설한다. 그저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입맛에만 맞는 정책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개발도상국에게 자유 무역을 주창하고 강요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국제기구들을 통해 개도국들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이 난국을 타개할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일단 저자의 지적대로 ’쉽고 편한 일’에 대한 생각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자유 무역이라는 것이 경쟁력 없는 개도국의 산업과 겨뤄 이득을 취하는 쉽고 편한 방법이라는 생각 때문에 추진되고 있다면 더 큰 이득을 위해 할 수 있는 더 쉽고 편한 방법이 개도국의 성장을 돕고 경쟁력을 키워주는 일이라고 사람들을 믿게 하는 것이다. 저자가 근거로 제시하는 것처럼 개도국이 경쟁력을 갖추고 일정 수준에까지 이르게 되면 구매력을 지닌 사람의 수가 더욱 늘어날 것이고, 그들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급한 생각으로 단기적인 이익에 급급하지 않는 인내력과 또 그들의 인내력을 북돋아주는 격려가 있다면 나쁜 사마리인이 아닌 착한 사마리안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