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안의 작은 새
가노 도모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집중력에 끈기라. 둘 다 귀찮은데요. 게이스케 씨, 달걀을 세우려고 열심히 애쓰는 게 인생이란 생각 안 들어요?

개중엔 겨우 한 개 갖고 애먹는 사람도 있고, 혼자 다섯 개, 여섯 개씩 세우는 사람도 있어요."

"재능을 타고났다는 말인가요?"

"그러네요,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에요. 세상은 원래 꽤 불공평하니까요.

처음부터 달걀을 세우기 쉬운 평평하고 튼튼한 테이블을 갖고 있는 사람이랑 그렇지 못한 사람이있거든요.

핸디캡 레이스에서 약한 말이 더 무거운 중량을 달고  뛰는 일도 부지기수예요. 그러니까 . . . "

이즈미 씨는 내 앞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잔을 놓았다.

"아무리 애써도, 몇 번을 노력해도 잘 안 되는 사람은 한번 에그스탠드에 달걀을 맡겨보라고, 그런 생각으로 붙인 이름이에요. 제법 괜찮죠?" <p.232>

 

혼잡한 거리에서 4년만에 우연찮게 사사키 선배와 만나게 된 게이스케. 대학 선후배가 주고받기에 어울리는 대화를 주고받다 선배의 부인 '요코'의 안부를 주고받게 된다.

확실한 데생, 경쾌하고 속도감 넘치는 선, 재미있는 구도. 직사각형 캔버스만이 요코의 세계의 전부였던 그때. 규모는 작아도 권위있는 미술전에 출품될 예정이었던 작품이 흉하게 더렵혀진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을 계기로 그녀는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된다. 축제때 아트클럽을 방문했다 요코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된 사사키 선배. 어떻게 하면 이젤 앞에서 그녀를 떼어놓을 수 있을까 고심했던 선배였던지라 당연히 범인은 그라고 생각했던 일. 하지만 선배는 아트클럽열쇠를 갖고 있었던 게이스케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 그렇게 우연찮게 그림이 훼손된 이유와 과정을 알게 되고 직장 동료로서의 의리 때문에 참석하게 된 파티에서 붉은색 원피스를 입은 '사에'와 만나게 된다.

계기 따위 어차피 대개 시시한 우연이라며 들려주는 그녀의 고등학교때 등교거부에 관한 이야기. 게이스케는 할머니가 손녀를 위해 한 일을 추리해내면서 두 사람은 친해지게 되고 자리를 옮기며 얘기를 하자고 나섰다 들어선 곳이 에그 스탠드.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들려주는 이야기, 그렇게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이야기들이 흥미진진 하기만 하다.  


 

가노 도모코의 손 안의 작은새.

당신의 고민, 카페 '에그 스탠드'에 오시면 해결됩니다! 라는 띠지의 글귀를 보고서 내심 사카키 쓰카사의 신데렐라 티쓰와 비슷한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에그 스탠드의 여자 바텐더 이즈미가 방문하는 사람들의 고민이나 걱정을 들어주고 해결해 주는 그런 내용.

전혀 상관없다 할 수 없지만 이 책 손 안의 작은새는 좀 더 세련되고 감성적이면서 미스터리하달까 ~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미스터리하게 풀어가는 것도 한편, 한편이 독립성을 갖추면서 동시에 하나로 연결되는 연작소설로 이루어지는 방식이 전작< 유리기린>과 비슷한데 손 안의 작은새가 더 이해하기 쉽고 재미나게 읽히는 듯 !! 두 번째 작품이라 고사이 익숙해져서 그런가?

벚꽃, 해바라기, 매화등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에그 스탠드의 모습이나 초일류 패션디자이너를 꿈꿨으나 이 일이 더 잘 맞다는 걸 알기에 과감히 여자 바텐더의 길을 걷는 이즈미씨의 이야기와 에그 스탠드의 단골 손님 노신사, 자전거도둑, 할 수 있다 없다 게임속 유령전화, 사라진 집, 보석도둑등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시원스럽게 풀어나가며 점점 가까워지는 게이스케와 사에, 두 사람의 모습도 좋고~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요코의 전화. 잘 지내? 난 . . . 그래, 벌써 죽었어. 나 . . . 살해당했어. <p.15> 요 부분에선 "나 살해당했어. 조금 더 살고 싶었는데 . . . "로 진행되는 유리기린의 내용이 확 떠올라 작가의 전작을 연상케하는 센스가 보통이 아니다 싶기도 ㅎㅎ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여튼 다음 작품에 손 안의 작은새 중 어떤 내용의 일부가 들어가 있을지 기대되네요 ~

 

겨울밤은 길다. 반듯이 누워 잠 못 이루며 보내는 밤은 특히 길다. 얼어붙은 어둠 밑바닥을 숨죽이고 보는 나 자신이 있다.

한밤중에 귀가한 누가 몇 번씩 차를 넣었다 뺐다 하며 좁다란 주차 공간에 차를 밀어 넣으려 하고 있다.

커튼 틈으로 헤드라이트 불빛이 비쳐 든다. 어둠 속에 그림자가 춤춘다. 엔진이 기분 나쁜 듯 으르렁거리는 소리.

카스테레오에서 쏟아지는, 어처구니없을 만큼 명랑하고 안하무인으로 요란한 음악. 문 닫는 소리. 열쇠를 짤랑거리는 소리. 자갈을 밟는 소리.

그리고 정적만이 남는다.

긴긴 겨울밤. 백 개의 사고를 삼킨다. 동이 트려면 아직 멀었다. <p.229>

 

섬세한 표현력도 죽지 않았더라. 요 부분은 어젯밤 잠못 이루는 내 겨울밤의 하루를 그래도 옮겨놓은 것 같은 기분에 오싹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잠이 안오는 긴긴 겨울밤을 이렇게 표현해낼 사람이 있을까나 ~

 

인간의 마음속에는 무수한 서랍이 존재하는 게 틀림없다.

아름다운 것이 가득 든 서랍도 있겠고, 흉하게 생긴 생물이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서랍도 있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잠가두려는 서랍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개의 서랍에는 온갖 물건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여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것과 흉한 것. 착한 것과 나쁜 것. 혹은 그 어느 쪽도 아닌 것.

그것들이 오뚝이처럼 위태위태한 균형을 유지하는 가운데 사람은 살아가는 것이리라. <p.139>

 

 

손 안의 작은새, 벚꽃 달밤, 자전거 도둑, 불가능한 이야기, 에그 스탠드.

이 중에서도 에그 스탠드 이야기는 참 좋더라구요. 여자라서 더 공감되는 이야기랄까 ~

어떤 이야기길래 이러나 궁금하다면 어서 읽어보셔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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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이란, 네가 아무부정하고 무시해도, 너보다 강한 거야. 그 무엇보다 강한 게 삶이야.
전쟁중에 수용소에 갇혀서 인간의 가장 추악한 모습을 본 사람들도 돌아와서는 아이들을 만들었어.고문당한 사람들, 자기 가족과 집이 불타는 것을 본 사람들도 예전과 다름없이 버스를 잡기 위해 달음박질을 치고 날씨에 대해서 말하고 자기네 딸들을 결혼시켰어.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싶겠지만 인생이 그런 거야. 삶은 그 무엇보다 강해.우리는 우리 자신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지만, 삶에 맞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아.우리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목소리를 높이지. 그래서 뭘 어쩌겠어? 그러고나면 결국 뭐가 남는데? 우리 형 폴은 어떤 여자 때문에 죽었지만,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지?" <p.206>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두 사람 다 상대방이랑 함께 있으면 좋다고 말한다는건 정말 대단한 일 아니에요?""그런데 왜 지금 그 얘기를 하느냐니까?"
"그건 말이에요, 이따금 당신이 우리가 얼마나 큰 행운을 누리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에요." <p.200>



안나 가발다의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정말 사소한 우연 때문이었다. 김연미의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다독이는 '그녀의 첫 번째 걷기여행'을 읽을 때 우연찮게 내 시선을 잡았던 책 한권.

한번 읽어봐야지 했던 그 책이 날 이렇게 오랫동안 생각에 젖게 만들 줄이야 ~

계기 따위 어차피 대개 시시한 우연 때문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운명이 되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나에겐 이 책이 그러했다 말하고 싶다.

 

책내용은 사진속에도 적혀 있듯 아들에게 버림받은 며느리를 위해 시아버지가 들려주는 삶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클로에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 집을 나간 뒤,슬픔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런 며느리를 보다 못한 시아버지 피에르는 클로에와 두 손녀를 시골 별장으로 데려간다.

65세의 은퇴한 사업가인 시아버지는 처음으로 며느리를 위해 요리도 하고 손녀딸들을 데리고 슈퍼마켓에도 간다.

아이들이 잠든 시각,이혼을 준비중인 며느리와 시아버지는 주방 식탁에 마주앉고 시아버지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찾아온 운명적인 사랑과 슬픈 이별, 그리고 자신의 비겁했던 행동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처음 시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아들이 사고를 친터라 수습차원에서, 아니면 집안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 자신을 위로한다 오해 했던 클로에도 점점 시아버지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그 속깊은 진심을 헤아리게 된다. 간결하지만 정확하고 섬세한 문체에 삶의 지혜가 그대로 녹아있는 것만 같다. 

우리가 행복한 게 당연하다고 믿는 것, 그게 바로 덫이다.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우리 삶의 방향을 우리가 좌우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일쑤니 말이다.우리 인생은 우리 뜻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이 아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중요한 건 더 일찍 그 점을 깨닫는 것이다. <p.51>

아이들이 입고 싶은걸 마음대로 골라도 좋다 말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문구가 영어로 찍힌 운동화도 사주고, 음식 같지 않다 타박을 하면서도 맥도날드로 향하는 모습에 노인네가 꽤나 선심 쓴다 생각하지만 시아버지는 자신이 옛날에 저지른 실수를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을 상대로 또다시 저지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왜 자식들에게 이런 종류의 기쁨을 주지 못했을까~ 기껏해야 15분이면 아이들의 얼굴이 저렇게 발그레 행복해지는데 그까짓것이 대수냐 말하는 시아버지.

 

200여페이지의 얇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간결하면서도 알차게 담겨 있는 듯 ~

작가 자신이 화려한 문체를 만드는 일보다 대중의 마음을 울리는 소리에 신경을 쓴다며 그녀의 언어는 읽는 언어라기보다 듣는 언어라는데 그 말도 맞는 듯 싶다.

작가소개를 보니 안나 가발다 자신이 두 아이의 어머니이며 이혼녀라는 사실은 물론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쫘르륵 적혀 있는데 그 이야기 또한 소설 못지않게 흥미진진했던 것 같다. 책 한권이 예상외로 큰 즐거움을 안겨준터라 그녀의 작품들을 죄다 구입해 읽어보려고 주문해놓은 상태.

(35kg짜리 희망 덩어리, 함께 있을 수 있다면 1,2, 위로 1,2,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 아름다운 하루)

 

읽어보고 재미난 책있음 또 소개할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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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 꿈이 끝나는 거리 모중석 스릴러 클럽 26
트리베니언 지음, 정태원 옮김 / 비채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후회! 흔히 혼동되는 사소한 개념들이지. 비탄, 회한, 후회!

비탄은 신이 주신 선물이야. 회한은 신이 주신 채찍이지. 후회는 . . . ?

후회나 유감 같은 것은 하찮은 거야. 주문한 것이 제 시간에오지 않았을 때 편지에 쓰는 불평이지." <p.331>

 

큰 거리의 이름이자 이 지역의 명칭이기도 한 '메인'. 몬트리올의 프랑스계 지역과 영국계 지역의 경계선인데 자그마한 가게와 싸구려 아파트가 즐비한 가난하고 떠들썩한 거리는 어느 사이에 캐나다로 몰려든 이민의 물결이 가장 먼저 정작하는 곳이 된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주자들. 끊임없이 몰려드는 이민집단은 의혹과 편견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위해 같은 문화를 가진 사람들끼리 뭉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몇 블록에 이르는 거주지가 생겼다. 몬트리올의 프랑스계 지역과 영국계 지역의 경계선이 애매하게 되어 어느쪽 언어도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중간지대. 성공한 이주자나 이민 2세의 대부분은 영어권인 웨스트몬트리올로 이사해 가고 이곳엔 노인들, 패배자들, 신세를 망친 자들이 남게 된다.

그곳에 한 남자가 있다. 클로드 라프왕트 경위. 두뇌와 지성보다도 주먹과 고자세의 말투를 무기로 삼는 거친 경관이자 낡은 경관인 그.

볼품없는 외투의 깃을 여미고 주머니에 두 손을 깊숙이 찔러 넣은 라프왕트.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낡고 허름한 외투는 그의 유니폼처럼 되어서 메인에서 일하는 사람, 메인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치고 이 외투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메인은 32년동안 그의 순찰구역으로 그 사람이 무엇을 하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이주자들의 경찰이 되어 그들의 보호자가 되고 또는 그들을 벌하는 존재가 된다. 젊은 프랑스계 캐나다인 경관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그. 하지만 그에겐 남모를 상처가 많다. 결혼한 지 1년도 안 되 신이 데리고 가버린 '루실'이 그러하고 수술 불가능한 '동맥 류머티즘'으로 몇달 후 죽을 운명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인을 지키는 데 여념이 없는 라프왕트.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순찰구역에서 뒤엉켜 싸운 흔적이 없는, 미사 때의 사제 같은 자세로 죽은 남자 시체가 발견되는데 . . .

 

 

나름 균형을 유지하며 평화로운 그곳에 시체가 발견되고 가스파르의 부탁으로 수습형사 '존을 배당받아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라프왕트.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풋내기일 뿐인 존 거트먼과 짝을 이뤄 사건을 화려하게 해결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인간적으로 다가서는 모습을 그리는 그런 전형적인 (?) 이야기 일거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지를 알았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굉장히 새로운 느낌을 안겨준다는 ~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기는 한걸까? 싶을 정도로 수사는 더디게 진행된다. 사건을 앞세워 화려한 액션을 말하지 않고, 메인의 쓸쓸하고 비참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더러운 셔츠 레드, 늙은 군인, 창녀들. 그들없이 어찌 메인을 설명할 수 있으리오~

책을 읽는동안 시간이 무겁고 느리게만 흘러간다 싶었는데 그것이 내 착각만은 아니었던 듯.

갠적으로 마르탱 신부, 데이비드, 모이셰와 함께 범죄와 죄악 그리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 가게 방에 나이 먹은 남자 넷이 모여 앉아 사랑타령을 하고 있다고 바보짓이라 했지만 참 멋지더라. 사랑은 항상 선이고, 사랑은 단 하나 인간에게만 주어진 단 하나의 특별한 것이라는 그 말도 . . .

 

"그의 사기를 돋우려 하면 안 돼. 때로는 마음껏 슬퍼하게 해주는 편이 좋아.

괴롭다고 해서 도망가기만 하면 슬픔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아.

슬픔이 몸속에서 부풀어 응어리가 되어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거든. 눈물은 슬픔을 가라앉히지." <p.41>

 

라프왕트로 인해 에밀 졸라는 물론 졸라의 장편소설들에 관심이 갔는데 시간이 된다면 목로주점, 나나, 제르미날을 읽어보고 싶다.

<목로주점>은 제르베즈가 여주인공이고 후속작 <나나>의 주인공 나나는 제르베즈의 딸, <제르미날>의 주인공 에티엔도 제르베즈의 자식이라고 한다.

제르베즈와 나나 에티엔은 세소설의 주인공으로 활약하며 파리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비정상적인 인간군상의 형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니 연작으로 읽기 좋은 듯~

그러고보면 졸라의 작품들과 라프왕트는 참 많이 닮았구나 !!!

 

부하를 조롱하고 교육을 얕보고 민간인을 학대하고 자신을 뽐내는 전형적인 노련가, 거친 경관의 견본인 것 같은 남자면서도 일찍이 매춘부였던 얼굴이 뭉개진 여자의 친구이며 메인의 주민들과 평범한 얘기를 나누는 아버지와 같은 감시인이며, 부랑자와도 서로 알고 지내고 자신의 순찰 구역에 관한 일을 잘 알고 있는, 메인에 애착이랄까 긍지조차 갖고 있는 남자.

한 사람 안에서 흑과 백을 보는 게 아니라, 항상 그 인간이 떨어뜨리는 회색 그림자를 발견하고자 한 라프왕트 경위. <p.199>

그러고보면 거트만이 사람보는 눈이 정확한 듯 !!

 

오늘밤 그가 낡은 외투를 입고, 에밀 졸라의 소설들을 훑는 모습으로 꿈에 나타나 줬으면 좋겠다. 진한 커피 한잔 대접하고 싶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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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 더 레코드 - 카메라 불이 꺼지면 시작되는 진짜 방송가 이야기
강승희 지음 / 북폴리오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대본이 날아다니고, 소리 지르고, 뛰어다니면서 모두 '나 여기 살아 있어요'를 외치는 것만 같은 곳 '방송가'

그곳에서 동시간대에 '경쟁'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만큼 석 달째 애국가 시청률을 기록하며 이제는 인공호흡기조차 효력을 다했다고 평가받는 프로그램 <해피 바이러스>

기자들은 매주 '굴욕의 시청률, 이대로 무너지나?', '회복 불가능, 예전의 명성은 어디로 . . .', '고립무원, 사면초가, 혼수상태와 같은 기사를 내보내며 무참히 짓밟는 것도 부족해 시청자들은 게시판을 통해 '당장 내려라', '제작비가 아깝다'등의 성원(?)을 보내고 있는 프로그램에서 서열 네 번째 작가로 활약하고 있는 '도라희'.

그녀에게 연예인은 두 분류로 나뉘는데 싸가지 있는 것과 싸가지 없는 것. 논할 것도 없이 후자에 속하는 <트리플>과의 악연. 특히 트리플의 막내인 '마리'와의 끝없는 악연으로 골머릴 앓는다. 두 사람의 악연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한 사람은 고고씽 ~

 



오프 더 레코드 (off-the-record)


기록에 남기지 않는 비공식 발언이라는 뜻
 
오프 더 레코드란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 이 책은 예능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작가가 쓴 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소설이다.

그렇다고 한결같이 연예인들의 가십만 뒤쫓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

'도라희'라는 엉뚱 캐릭터를 내세워 아이돌 비위 맞춰가며 밤낮없이 시청률에 매달려야 하는 작가를 비롯한 방송 프로그램, 제작팀의 노고는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지만 보이지않는 곳에서 무차별한 악플이나 악성루머등 뒷담화의 대상이 되는 연예인들, '연예가'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대중의 사랑과 환호가 순식간에 경멸과 증오로 바뀌는 대중의 속성, 또 그것을 가차없이 특종이라는 이름 아래 내보내는 기자들. 스타의 부와 명성이라는 찬란한 빛 보다는 그늘이라 해야할 지 어둠이라 해야할지 그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한다.

자칫 어두워질 수 있는 부분을 '도라희'라는 개성 강한 캐릭터가 적절한 균형을 맞추어준다는 ~

도라희라는 이름때문에 가끔 '또라이'라 불리우지만 그것이 꼭 이름 때문은 아닐 정도의 천방지축, 촤충우돌 캐릭터다.

극 초반 하수구에 팔이 낀 사연부터 팡팡 터지는데 완전 대박. 그 어느 책에서도 만나볼 수 없는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그 누구보다 버라이어티한 삶을 사는 그녀. 마냥 철없어 보이지만 현실과 이상, 이성과 감정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인생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목표 자체가 아니라 삶의 순간순간이라는 말을 충실히 잘 따른 캐릭터란 생각이 들어 무한 그녀를 응원해주고프다.

 

사실 누군가의 비밀이나 고민을 알게 된다는 것은 조금 버거운 일이다. 늘 그랬다.

누군가가 힘겨운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위로를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수학 문제의 정답처럼 딱 떨어지는 해결책을 내놓아야 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p.207>

 

휴일에 시간 가는줄 모르고 재밌게 읽은 강승희의 오프 더 레코드

압구정고 동창생들의 엇갈린 야망과 사랑을 그린 저자의 반자전적 내용과 함께 정략결혼,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비리와 아이돌 스타들을 둘러싼 추문, 각종 로비, 조폭과의 결탁 등 연예가의 루머와 의혹을 실감나게 묘사한 '압구정 소년들'과 함께 비교해가며 읽어도 좋을 듯 !!!

남자와 여자, 라디오 피디와 예능 프로그램 작가가 쓴 이야기들. 가십, 연애, 성장 그 어느것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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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은 내 이름 1
엘사 오소리오 지음, 박선영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미리암. 명성과 돈이 아닌 품고 사랑할 수 있는 아이를 원할 뿐인 마음이 지친 창녀.

릴리아나. 자신이 낳은 소중한 아이를 지키고 싶을 뿐인 부잣집 딸이자 순진한 대학생.

마리아나. 부유하게 자라 부잣집 남자를 만나 평탄한 결혼 끝에 아이를 곧 낳을 여자.

 

에두아르도. 소중한 딸, 루스를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더욱 진실을 밝히고 싶은 아버지.

두파우. 딸을 지키기 위해 살인과 납치, 권력을 사용하는 것조차 꺼리지 않는 아버지.

카를로스. 과거를 묻고 살려고 노력했으나 20년 만에 과거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음을 알게 된 남자.

 

위드블로그에서 당첨되 읽게 된 엘사 오소리오의 빛은 내이름 1.2

때마침 납치범의 아이를 낳게 된 여성과 그런 환경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의 심리를 아이의 솔직하고 단순한 눈으로 그린 엠마 도노휴의 룸[ROOM]을 읽고난터라 부모와 자식에 관련된 이야기에 자꾸만 눈이 갔었는데 잘됐다 싶더라.

조금 전까지 내 아버지, 어머니였던 사람이 진짜 부모가 아니라면? 나라고 믿고 살았던 내가 진정한 내가 아니라면?

요 글귀에 현혹되 읽게 됐는데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이 기쁘다. 아니 오히려 2010년에 이 책을 만나게 되서 참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다.

 

독재에 저항하다 정치범으로 수감된 릴리아나는 임신중이다. 갖은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되야함에도 불구하고 누구하나 건드리는 사람 없이 잘 먹으며 특별 보호를 받게 되자 무슨일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기만 하는데 . . .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으로 아이를 원했던 미리암. 짐승이라 불리운 피티오피상사의 도움으로 아이를 품에 안게 될 찰나에 운명의 장난으로 다른 사람에게 뺏기게 된다. 피티오피 상사가 절대복종해야 할 사람의 딸이 사내아이를 낳다 아이가 사산하고 산모는 더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면서 릴리아나의 아이 루스는 이 사실도 모르고 어머니를 살해한 군부 인사의 손녀로 자라게 된다. 성장하면서 자신의 뿌리에 의문을 품는 루스. 하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가 실종자의 아들인 라미로를 사랑하게 되면서 그로 인해 객관적인 입장에서의 할아버지 정체에 대해 알게 되 큰 충격에 빠지게 되고, 자신 역시 실종자들의 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기 시작하는데 . . .

 

"어떻게 불러야 할까? 루스? 릴리? 널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

"루스라고 부르세요. 제 이름은 언제나 루스였어요. 전 제 이름이 마음에 들어요.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모두 다 나쁘기만 했던 건 아니에요. '빛'이라는 뜻을 지닌 제 이름 루스가 그 예죠.

저에게 닥칠지도 모를 감정적인 위험은 감안하지 않은 채, 어둠에 가려져 있던 이 이야기를 빛으로 끌어내는 데 집착했어요. 진실을 알아내려고 찾고 또 찾았지요." <p. 20>

 

하나의 사건, 한 명의 아이, 각자의 소망이 운명의 수레바퀴를 굴리기 시작한다. 1부 1976년, 2부 1983년, 3부 1995~1998년에 걸친 긴 이야기.

인간애와 잔혹한 현실,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는 유머와 무자비한 판결을 잘 조합한 국제 엠네스티 문학상 수상작 빛은 내 이름!!

아르헨티나 소설가의 책인데 15개 언어 23개 국가에서 출간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군부독재의 참상과 인권 추구를 형상화하여 엠네스티 문학상을 수상했으나,

정작 아르헨티나에서는 출간조차 하지 못하고 스페인에서 첫판이 나왔다니 아이러니하다.

 

당신은 진심으로 진실을 알고자 했는가? <p.276>

 

먼나라의 이야기지만 전혀 낯설지 않다는 느낌이 강한데 우리 역시 군사독재시절을 거쳤기 때문이 아닐까.

나라와 주인공들 이름만 바꾸면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이야기라고해도 믿을 수 있을만큼 너무나도 닮은 모습이 놀랍기만 하다.

드라마에서 흔하게 봐왔음직한 잔인한 장면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선한 자와 악한 자로 나뉘어 펼쳐지는 온갖 고문들, 감방 벽을 흐르는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 싶어 책을 덮기를 몇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진실을 알고자하는 사람들의 몸부림이 그대로 느껴져 힘들었다. 그렇게 힘들게 했던 책이 이렇게 큰 감동을 안겨주다니 ~~

슬퍼서 한번, 안타까워서 한번이었던게 기뻐서 한번, 책이 끝나가는게 아쉬워서 한번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겪게되다니 . . .

이 책을 읽는다면 분명 나와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한다.

 

힘든 상황에서도 진실을 알고자 노력한 사람.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한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아무리 지치고 힘든 일이 있어도 빛은 내 이름(아르헨티나 독재 기간 중 출생과 동시에 강제입양당한 한 여성이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읽으며 막바지 힘을 내길 바란다.
분명 이 책 주인공의 삶보다 더 어려운 일은 아닐테니 ㅎ
 
진정한 자신을 찾는데 있어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던 루스. 새삼스레 프리츠 오르트만의 곰스크로 가는 기차의 내용이 떠오른다.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당신은 곰스크로 가는 걸 포기했고 여기 이 작은 마을에 눌러앉아 부인과 아이와 정원이 딸린 조그만 집을 얻었어요.
그것이 당신이 원한 것이지요. 당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기차가 이곳에서 정차했던 바로 그때 당신은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기차를 놓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을 선택한 것이지요."
루스도 그러했겠지 싶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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