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이란, 네가 아무부정하고 무시해도, 너보다 강한 거야. 그 무엇보다 강한 게 삶이야.
전쟁중에 수용소에 갇혀서 인간의 가장 추악한 모습을 본 사람들도 돌아와서는 아이들을 만들었어.고문당한 사람들, 자기 가족과 집이 불타는 것을 본 사람들도 예전과 다름없이 버스를 잡기 위해 달음박질을 치고 날씨에 대해서 말하고 자기네 딸들을 결혼시켰어.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싶겠지만 인생이 그런 거야. 삶은 그 무엇보다 강해.우리는 우리 자신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지만, 삶에 맞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아.우리는 부지런히 움직이고 목소리를 높이지. 그래서 뭘 어쩌겠어? 그러고나면 결국 뭐가 남는데? 우리 형 폴은 어떤 여자 때문에 죽었지만,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지?" <p.206>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두 사람 다 상대방이랑 함께 있으면 좋다고 말한다는건 정말 대단한 일 아니에요?""그런데 왜 지금 그 얘기를 하느냐니까?"
"그건 말이에요, 이따금 당신이 우리가 얼마나 큰 행운을 누리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에요." <p.200>



안나 가발다의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정말 사소한 우연 때문이었다. 김연미의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다독이는 '그녀의 첫 번째 걷기여행'을 읽을 때 우연찮게 내 시선을 잡았던 책 한권.

한번 읽어봐야지 했던 그 책이 날 이렇게 오랫동안 생각에 젖게 만들 줄이야 ~

계기 따위 어차피 대개 시시한 우연 때문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운명이 되는 경우도 많지 않은가. 나에겐 이 책이 그러했다 말하고 싶다.

 

책내용은 사진속에도 적혀 있듯 아들에게 버림받은 며느리를 위해 시아버지가 들려주는 삶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클로에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 집을 나간 뒤,슬픔을 주체하지 못한다. 그런 며느리를 보다 못한 시아버지 피에르는 클로에와 두 손녀를 시골 별장으로 데려간다.

65세의 은퇴한 사업가인 시아버지는 처음으로 며느리를 위해 요리도 하고 손녀딸들을 데리고 슈퍼마켓에도 간다.

아이들이 잠든 시각,이혼을 준비중인 며느리와 시아버지는 주방 식탁에 마주앉고 시아버지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찾아온 운명적인 사랑과 슬픈 이별, 그리고 자신의 비겁했던 행동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처음 시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아들이 사고를 친터라 수습차원에서, 아니면 집안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 자신을 위로한다 오해 했던 클로에도 점점 시아버지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그 속깊은 진심을 헤아리게 된다. 간결하지만 정확하고 섬세한 문체에 삶의 지혜가 그대로 녹아있는 것만 같다. 

우리가 행복한 게 당연하다고 믿는 것, 그게 바로 덫이다.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우리 삶의 방향을 우리가 좌우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일쑤니 말이다.우리 인생은 우리 뜻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이 아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중요한 건 더 일찍 그 점을 깨닫는 것이다. <p.51>

아이들이 입고 싶은걸 마음대로 골라도 좋다 말하고, 유치하기 짝이 없는 문구가 영어로 찍힌 운동화도 사주고, 음식 같지 않다 타박을 하면서도 맥도날드로 향하는 모습에 노인네가 꽤나 선심 쓴다 생각하지만 시아버지는 자신이 옛날에 저지른 실수를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을 상대로 또다시 저지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왜 자식들에게 이런 종류의 기쁨을 주지 못했을까~ 기껏해야 15분이면 아이들의 얼굴이 저렇게 발그레 행복해지는데 그까짓것이 대수냐 말하는 시아버지.

 

200여페이지의 얇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간결하면서도 알차게 담겨 있는 듯 ~

작가 자신이 화려한 문체를 만드는 일보다 대중의 마음을 울리는 소리에 신경을 쓴다며 그녀의 언어는 읽는 언어라기보다 듣는 언어라는데 그 말도 맞는 듯 싶다.

작가소개를 보니 안나 가발다 자신이 두 아이의 어머니이며 이혼녀라는 사실은 물론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쫘르륵 적혀 있는데 그 이야기 또한 소설 못지않게 흥미진진했던 것 같다. 책 한권이 예상외로 큰 즐거움을 안겨준터라 그녀의 작품들을 죄다 구입해 읽어보려고 주문해놓은 상태.

(35kg짜리 희망 덩어리, 함께 있을 수 있다면 1,2, 위로 1,2, 누군가 어디에서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 아름다운 하루)

 

읽어보고 재미난 책있음 또 소개할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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