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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안의 작은 새
가노 도모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집중력에 끈기라. 둘 다 귀찮은데요. 게이스케 씨, 달걀을 세우려고 열심히 애쓰는 게 인생이란 생각 안 들어요?
개중엔 겨우 한 개 갖고 애먹는 사람도 있고, 혼자 다섯 개, 여섯 개씩 세우는 사람도 있어요."
"재능을 타고났다는 말인가요?"
"그러네요,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에요. 세상은 원래 꽤 불공평하니까요.
처음부터 달걀을 세우기 쉬운 평평하고 튼튼한 테이블을 갖고 있는 사람이랑 그렇지 못한 사람이있거든요.
핸디캡 레이스에서 약한 말이 더 무거운 중량을 달고 뛰는 일도 부지기수예요. 그러니까 . . . "
이즈미 씨는 내 앞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잔을 놓았다.
"아무리 애써도, 몇 번을 노력해도 잘 안 되는 사람은 한번 에그스탠드에 달걀을 맡겨보라고, 그런 생각으로 붙인 이름이에요. 제법 괜찮죠?" <p.232>
혼잡한 거리에서 4년만에 우연찮게 사사키 선배와 만나게 된 게이스케. 대학 선후배가 주고받기에 어울리는 대화를 주고받다 선배의 부인 '요코'의 안부를 주고받게 된다.
확실한 데생, 경쾌하고 속도감 넘치는 선, 재미있는 구도. 직사각형 캔버스만이 요코의 세계의 전부였던 그때. 규모는 작아도 권위있는 미술전에 출품될 예정이었던 작품이 흉하게 더렵혀진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을 계기로 그녀는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된다. 축제때 아트클럽을 방문했다 요코를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된 사사키 선배. 어떻게 하면 이젤 앞에서 그녀를 떼어놓을 수 있을까 고심했던 선배였던지라 당연히 범인은 그라고 생각했던 일. 하지만 선배는 아트클럽열쇠를 갖고 있었던 게이스케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 그렇게 우연찮게 그림이 훼손된 이유와 과정을 알게 되고 직장 동료로서의 의리 때문에 참석하게 된 파티에서 붉은색 원피스를 입은 '사에'와 만나게 된다.
계기 따위 어차피 대개 시시한 우연이라며 들려주는 그녀의 고등학교때 등교거부에 관한 이야기. 게이스케는 할머니가 손녀를 위해 한 일을 추리해내면서 두 사람은 친해지게 되고 자리를 옮기며 얘기를 하자고 나섰다 들어선 곳이 에그 스탠드. 두 사람이 주거니 받거니 들려주는 이야기, 그렇게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이야기들이 흥미진진 하기만 하다.
가노 도모코의 손 안의 작은새.
당신의 고민, 카페 '에그 스탠드'에 오시면 해결됩니다! 라는 띠지의 글귀를 보고서 내심 사카키 쓰카사의 신데렐라 티쓰와 비슷한 내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에그 스탠드의 여자 바텐더 이즈미가 방문하는 사람들의 고민이나 걱정을 들어주고 해결해 주는 그런 내용.
전혀 상관없다 할 수 없지만 이 책 손 안의 작은새는 좀 더 세련되고 감성적이면서 미스터리하달까 ~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미스터리하게 풀어가는 것도 한편, 한편이 독립성을 갖추면서 동시에 하나로 연결되는 연작소설로 이루어지는 방식이 전작< 유리기린>과 비슷한데 손 안의 작은새가 더 이해하기 쉽고 재미나게 읽히는 듯 !! 두 번째 작품이라 고사이 익숙해져서 그런가?
벚꽃, 해바라기, 매화등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에그 스탠드의 모습이나 초일류 패션디자이너를 꿈꿨으나 이 일이 더 잘 맞다는 걸 알기에 과감히 여자 바텐더의 길을 걷는 이즈미씨의 이야기와 에그 스탠드의 단골 손님 노신사, 자전거도둑, 할 수 있다 없다 게임속 유령전화, 사라진 집, 보석도둑등 알쏭달쏭한 이야기를 시원스럽게 풀어나가며 점점 가까워지는 게이스케와 사에, 두 사람의 모습도 좋고~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요코의 전화. 잘 지내? 난 . . . 그래, 벌써 죽었어. 나 . . . 살해당했어. <p.15> 요 부분에선 "나 살해당했어. 조금 더 살고 싶었는데 . . . "로 진행되는 유리기린의 내용이 확 떠올라 작가의 전작을 연상케하는 센스가 보통이 아니다 싶기도 ㅎㅎ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여튼 다음 작품에 손 안의 작은새 중 어떤 내용의 일부가 들어가 있을지 기대되네요 ~
겨울밤은 길다. 반듯이 누워 잠 못 이루며 보내는 밤은 특히 길다. 얼어붙은 어둠 밑바닥을 숨죽이고 보는 나 자신이 있다.
한밤중에 귀가한 누가 몇 번씩 차를 넣었다 뺐다 하며 좁다란 주차 공간에 차를 밀어 넣으려 하고 있다.
커튼 틈으로 헤드라이트 불빛이 비쳐 든다. 어둠 속에 그림자가 춤춘다. 엔진이 기분 나쁜 듯 으르렁거리는 소리.
카스테레오에서 쏟아지는, 어처구니없을 만큼 명랑하고 안하무인으로 요란한 음악. 문 닫는 소리. 열쇠를 짤랑거리는 소리. 자갈을 밟는 소리.
그리고 정적만이 남는다.
긴긴 겨울밤. 백 개의 사고를 삼킨다. 동이 트려면 아직 멀었다. <p.229>
섬세한 표현력도 죽지 않았더라. 요 부분은 어젯밤 잠못 이루는 내 겨울밤의 하루를 그래도 옮겨놓은 것 같은 기분에 오싹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잠이 안오는 긴긴 겨울밤을 이렇게 표현해낼 사람이 있을까나 ~
인간의 마음속에는 무수한 서랍이 존재하는 게 틀림없다.
아름다운 것이 가득 든 서랍도 있겠고, 흉하게 생긴 생물이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서랍도 있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잠가두려는 서랍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대개의 서랍에는 온갖 물건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여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것과 흉한 것. 착한 것과 나쁜 것. 혹은 그 어느 쪽도 아닌 것.
그것들이 오뚝이처럼 위태위태한 균형을 유지하는 가운데 사람은 살아가는 것이리라. <p.139>
손 안의 작은새, 벚꽃 달밤, 자전거 도둑, 불가능한 이야기, 에그 스탠드.
이 중에서도 에그 스탠드 이야기는 참 좋더라구요. 여자라서 더 공감되는 이야기랄까 ~
어떤 이야기길래 이러나 궁금하다면 어서 읽어보셔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