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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 꿈이 끝나는 거리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26
트리베니언 지음, 정태원 옮김 / 비채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후회! 흔히 혼동되는 사소한 개념들이지. 비탄, 회한, 후회!
비탄은 신이 주신 선물이야. 회한은 신이 주신 채찍이지. 후회는 . . . ?
후회나 유감 같은 것은 하찮은 거야. 주문한 것이 제 시간에오지 않았을 때 편지에 쓰는 불평이지." <p.331>
큰 거리의 이름이자 이 지역의 명칭이기도 한 '메인'. 몬트리올의 프랑스계 지역과 영국계 지역의 경계선인데 자그마한 가게와 싸구려 아파트가 즐비한 가난하고 떠들썩한 거리는 어느 사이에 캐나다로 몰려든 이민의 물결이 가장 먼저 정작하는 곳이 된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주자들. 끊임없이 몰려드는 이민집단은 의혹과 편견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위해 같은 문화를 가진 사람들끼리 뭉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몇 블록에 이르는 거주지가 생겼다. 몬트리올의 프랑스계 지역과 영국계 지역의 경계선이 애매하게 되어 어느쪽 언어도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중간지대. 성공한 이주자나 이민 2세의 대부분은 영어권인 웨스트몬트리올로 이사해 가고 이곳엔 노인들, 패배자들, 신세를 망친 자들이 남게 된다.
그곳에 한 남자가 있다. 클로드 라프왕트 경위. 두뇌와 지성보다도 주먹과 고자세의 말투를 무기로 삼는 거친 경관이자 낡은 경관인 그.
볼품없는 외투의 깃을 여미고 주머니에 두 손을 깊숙이 찔러 넣은 라프왕트.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낡고 허름한 외투는 그의 유니폼처럼 되어서 메인에서 일하는 사람, 메인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치고 이 외투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메인은 32년동안 그의 순찰구역으로 그 사람이 무엇을 하며 살아가느냐에 따라 이주자들의 경찰이 되어 그들의 보호자가 되고 또는 그들을 벌하는 존재가 된다. 젊은 프랑스계 캐나다인 경관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그. 하지만 그에겐 남모를 상처가 많다. 결혼한 지 1년도 안 되 신이 데리고 가버린 '루실'이 그러하고 수술 불가능한 '동맥 류머티즘'으로 몇달 후 죽을 운명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인을 지키는 데 여념이 없는 라프왕트.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순찰구역에서 뒤엉켜 싸운 흔적이 없는, 미사 때의 사제 같은 자세로 죽은 남자 시체가 발견되는데 . . .
나름 균형을 유지하며 평화로운 그곳에 시체가 발견되고 가스파르의 부탁으로 수습형사 '존을 배당받아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라프왕트.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풋내기일 뿐인 존 거트먼과 짝을 이뤄 사건을 화려하게 해결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인간적으로 다가서는 모습을 그리는 그런 전형적인 (?) 이야기 일거라 생각했는데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인지를 알았다. 그런면에서 이 책은 굉장히 새로운 느낌을 안겨준다는 ~
사건을 해결하려는 의지가 있기는 한걸까? 싶을 정도로 수사는 더디게 진행된다. 사건을 앞세워 화려한 액션을 말하지 않고, 메인의 쓸쓸하고 비참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더러운 셔츠 레드, 늙은 군인, 창녀들. 그들없이 어찌 메인을 설명할 수 있으리오~
책을 읽는동안 시간이 무겁고 느리게만 흘러간다 싶었는데 그것이 내 착각만은 아니었던 듯.
갠적으로 마르탱 신부, 데이비드, 모이셰와 함께 범죄와 죄악 그리고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 가게 방에 나이 먹은 남자 넷이 모여 앉아 사랑타령을 하고 있다고 바보짓이라 했지만 참 멋지더라. 사랑은 항상 선이고, 사랑은 단 하나 인간에게만 주어진 단 하나의 특별한 것이라는 그 말도 . . .
"그의 사기를 돋우려 하면 안 돼. 때로는 마음껏 슬퍼하게 해주는 편이 좋아.
괴롭다고 해서 도망가기만 하면 슬픔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아.
슬픔이 몸속에서 부풀어 응어리가 되어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거든. 눈물은 슬픔을 가라앉히지." <p.41>
라프왕트로 인해 에밀 졸라는 물론 졸라의 장편소설들에 관심이 갔는데 시간이 된다면 목로주점, 나나, 제르미날을 읽어보고 싶다.
<목로주점>은 제르베즈가 여주인공이고 후속작 <나나>의 주인공 나나는 제르베즈의 딸, <제르미날>의 주인공 에티엔도 제르베즈의 자식이라고 한다.
제르베즈와 나나 에티엔은 세소설의 주인공으로 활약하며 파리 빈민가에서 살아가는 비정상적인 인간군상의 형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니 연작으로 읽기 좋은 듯~
그러고보면 졸라의 작품들과 라프왕트는 참 많이 닮았구나 !!!
부하를 조롱하고 교육을 얕보고 민간인을 학대하고 자신을 뽐내는 전형적인 노련가, 거친 경관의 견본인 것 같은 남자면서도 일찍이 매춘부였던 얼굴이 뭉개진 여자의 친구이며 메인의 주민들과 평범한 얘기를 나누는 아버지와 같은 감시인이며, 부랑자와도 서로 알고 지내고 자신의 순찰 구역에 관한 일을 잘 알고 있는, 메인에 애착이랄까 긍지조차 갖고 있는 남자.
한 사람 안에서 흑과 백을 보는 게 아니라, 항상 그 인간이 떨어뜨리는 회색 그림자를 발견하고자 한 라프왕트 경위. <p.199>
그러고보면 거트만이 사람보는 눈이 정확한 듯 !!
오늘밤 그가 낡은 외투를 입고, 에밀 졸라의 소설들을 훑는 모습으로 꿈에 나타나 줬으면 좋겠다. 진한 커피 한잔 대접하고 싶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