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스타샤
조지수 지음 / 베아르피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스타샤는 삶이 얼마만큼 소중할 수 있는가를 내게 가르쳐주었다. 나는 나스타샤를 사랑하게 되면서 삶이 무엇을 줄 수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거기에는 내가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던, 그렇지만 그것이 없었다면 죽은 삶일 여러 가지가 있었다. 두근거림, 열정, 충족, 안타까움, 위안, 공감, 이해, 존경, 동정. 이러한 것들이 사랑을 통해 나스타샤가 내게 가르쳐준 것이었다. [p.421]

 

620여페이지의 두툼한 두께가 나를 놀라게 했고 그 내용이 나를 한번 더 놀라게 한다. 처음에 이 책은 내게 '사설'이 긴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그러다 조금씩 조금씩 그 '사설'이 익숙해지면서는 캐나다 여행기를 읽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유학을 떠나 캐나다 교수가 된 '조지'의 눈을 통해 본 것들은 흥미로운 것들 투성이. 모두 내가 겪는 일마냥 느껴지기 시작하더라. 캐나다인들이 보트에 열광적인 이유, 조지랑 그렉이 어떻게 보트를 구입하게 되었는지, 그들이 낚시를 갔다 스컹크 방귀에 어떤일들이 생겼는지, 어떻게 지렁이 양식을 하게 됐는지 등의 이야기들은 웃음을 넘어 폭소로 이어졌고, 얼마나 낚시를 좋아하는지는 그의 글을 통해 읽으면도 나도 낚시가 좋아지기 시작한다. 그들의 낚시 사랑. 특히나 플라이 피싱에 대한 사랑은 마냥 부럽기만 했다.

'나스타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 중 하나가 플라이 피싱이야. 거기에는 모든 것이 있어. 태곳적의 자연, 힘차고 아름다운 연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낚싯줄, 스트라이크 때의 두근거림가 떨림, 실랑이할 때의 아슬아슬한 곡예, 발밑까지 끌려온 연어의 펄떡거림, 놓아줄 때의 자부심과 흐뭇함 등. 플라이 피싱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인생의 향락을 얘기할 수 없어. . .

플라이 피싱은 자연과의 조화야. 그리고 삶의 활력이지 [p.375]

교수라는 입장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책을 집필하면서 중간중간 친구와 낚시를 다니는 그의 재미난 캐나다 여행기 같은 생활은 곧 나스타샤를 향한 사랑가로 바뀌게 된다.

"조지, 고마워. 나에게 생명을 준 건 부모님이야. 그런데 삶은 당신이 줬어. 나는 당신을 알기 전에는 삶이 이런 건지 몰랐어.

내가 행복하지 않았던 건 아니야. 단지 행복이 뭔지 몰랐을 뿐이야. 이제 행복이 뭔지 알아. 행복은 진실이고 아름다움이야"

외국 생활을 하는 동안 이렇다 할 친구도 애인도 없이 너무도 외로웠던 그. 몸은 외국에 있으면서도 언제나 마음만은 조국을 향해 있었던 그.

그랬던 그가 오로지 그녀의 행복만을 바라는 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의 행복을 아주 많이 축하해줬고 또 영원히 이어지길 간절히 바랬는데 . .

 

운명은 잔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아름답고 숭고하기까지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랑'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됐다.

누구를 얼마나 어떻게 사랑해야 '그'와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을까하고 . . . 나는 너무 계산적이지 않나. . . 해주는것없이 바라기만 하지 않았나 자책하기 시작했다.

남의 일마냥, 별일 아닌데 왜 그러냐는 듯 무심하게 이야기하는 그. 607페이지에 이르러 나는 펑펑 울고야 말았다. 눈물이 하염없이 났다.

소설 한권 읽으면서 글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책일 읽는것이 이렇게도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나스타샤'를 읽으면서 다시한번 느꼈다.

이 책은 내게 더 많이 더 넓게 보라고 조언해줬으며, 상상하게 만들었고, 꿈을 꾸게 만들었다. 더 열심히 사랑하며 살라는 충고도 잊지않고 해주었다.

100페이지 정도를 읽어내려가면서부터 지인들에게 이 책의 즐거움에 대해서, 대단함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었음 좋겠다 싶었다.

글로 표현할수 있는 많은것들. 그것들이 주는 아름다움. 책을 읽는 즐거움을 느끼길 바랬다.

철학과 예술이 결코 어렵지 않음을. . 즐겁게 이 책 한권을 읽고 어땠냐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할 시간들이 생기길 바랬다.

누구와 첫번째로 이 책에 대해서 이야기 하게 되려나 ~ 기대된다.

 

조지수님은 이미 십 수권의 책을 저술한 자못 잘 알려진 사람이란다. 그러나 이 소설에는 필명을 사용하기를 원했다고 . .

이 소설에는 어느 정도 자전적 요소가 있기에 . .  이해함과 동시에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느끼고 싶은데 . . .

 

 

 

행복한 젊음이란 없다. 단지 행복한 젊은이들만이 있을 뿐이다. 이 젊은이들은 그의 삶에 많은 흔적을 남기지는 않는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오래 기억되듯, 불행한 젊은 시절이 우리의 삶에 어떤 흔적을 멀리까지 남겨준다.

우리는 모두 늙어간다. 정념과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남은 삶이 회상과 추억에 의해 아름다워질 때, 젊은 시절의 방황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준다. 어떤 느낌인가를.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던 그 방황은.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면 수많은9a">나는 속삭인다.

 

"그렇다. 우리는 힘겨웠다. 모두가 무엇인가를 위해 애썼다. 그리나 그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우리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했다는 것, 서로 사랑했다는 것, 그리고 그 추억으로 나의 삶이 행복했다는 것 - 이것들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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