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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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평 작가의 새로운 소설 [프리즘]이 출간됐다. 출간 전부터 기대를 모았다. 표지도 심상찮다. 프리즘 속 다양한 빛들이 오각형의 상자에서 나와 우리집에 들어온 양 반짝반짝 눈이부신 [프리즘]을 받아들고서 감격해 마지않았던 것은 책이 예뻐서기도 하지만 작가의 전작인 [아몬드]의 아성을 알기 때문이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소설 [프리즘]은 네 명의 남녀가 주인공이다.

얼마 전에 헤어짐을 경험한 여자 예진, 사랑에 관심없는 남자 도원, 지나간 것을 버리지 못하는 여자 재인, 사랑을 믿지 않는 남자 호계가 만나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을 담았다.

예진은 아직 입주하지 않은 빈 점포 앞 계단에 앉아 커피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그 곳을 좋아하는 사람은 하나 더 있다. 바로 예진과 같은 건물 지하에서 녹음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도원이다. 둘은 같은 공간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조금씩 알아가고 친해진다. 예진은 도원을 좋아하기 시작하고, 도원은 새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예진의 통통 튀는 모습을 싫어하진 않는다.

예진은 불면증이 있다. 우연히 불면의 밤이라는 오픈채팅방을 알게 되고 가끔 번개팅도 나가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호계를 만나 친해진다. 호계는 예진이 마음에 있다. 어느날 도원이 예진에게 뮤지컬을 보러가자며 친구를 초대해도 된다고 말하는 바람에 예진은 호계를 초청하고 호계는 일하고 있는 빵집 사장인 재인에게 같이 가자고 한다. 그리고 넷이 조우한 자리에서 재인과 도원이 오래전 잠시 사귄 애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우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운명이 된 걸까.

예진은 그 자리에서 실연을 당했다. 그리고 새로운 남자친구를 사귄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자꾸 만난다. 호계는 그게 내심 싫다. 호계는 자기의 이런 감정이 누구를 좋아하는 감정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재인은 이혼녀다. 그런데 전 남편과 희한한 관계를 유지한다. 그것이 고민이라 호계에게 털어 놓은 적이 있었고, 호계는 예진과 재인이 만날 줄 모르고 그 사실을 털어놨었고 재인과 도원이 만나서 사귀자 화가 난 예진은 그 사실을 도원에게 털어놓는다. 여자친구의 비밀을 알게 된 도원은 화가 단단히 나서 재인에게 모진 말을 쏟아붓는다.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된다. 호계는 재인에게 이상한 사람이 돼서 아르바이트를 관둔다. 아직 해결되지 못한 과거가 현재를 발목 잡는 순간들이었다. 대단히 안타까웠다.

과거의 것은 과거로 남겨두어야 맞나 보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로망은 누구나 있는 것은 아닌가? 네 남녀가 진솔하게 마음을 털어놓기보단 간을 보고 있지 않았나 싶다. 결정적으로 나는 그런 형태의 연애가 상당히 싫다. 남의 마음이 어떨지 몰라서 나의 마음을 숨기고 다르게 행동하는 것은 졸렬한 짓이다. 우선 내 마음을 직시했으면 앞으로 나가는게 맞다. 하트 시그널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사랑이 식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이별을 통보하든, 너의 치부를 알게 돼서 이별을 통보하든 예의를 갖추고 할 말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 그게 최소한의 도리고 매너다. 그러나 재인은 그러지 않았다. 그랬으니 도원과 헤어지는 게 맞고 도원 역시 상대방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모진 말로 상처를 주었으니 재인을 만날 명분이 없다.

호계는 다르다. 호계는 기다렸다. 예진이 충동적으로 만난 남자에게 뻥 차일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여보란듯이 떠난다. 여자 마음만 흔들어놓고 떠나는 꼴이다. 호계가 예진을 정말 좋아했다면 외국으로 나갈 계획은 좀 미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예진은 금방 사랑에 빠지는 타입인데 호계를 기다릴 수 있을까?


글을 쓰다보니 나 정말 웃기다. 한낱 소설아닌가. 왜 이렇게 감정을 이입하지? ㅋㅋㅋ 아마도 손원평 작가가 연인사이에 대한 새로운 심리를 잘 구사해 놓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마냥 기다리고 뭐든지 이해해 주는 시대는 지났음을 알려주는 걸까? 솔직히 아직은 잘 모르겠다.

연애소설일 줄은 모르고 읽었다. 사실은 좀 더 빛나는 추억이나 아름답고 눈부신 어떤 사랑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없어서 사실은 혼란스러웠지만 그마저도 나의 생각일 뿐이다. 작가의 이런 세계관을 좋아하는 독자가 충분히 많이 있을 것이다. 특히 동시대를 살아가는 자유 연애가 가능한 - 그러니까 나는 불가능 ㅠ- 세대에게는 좀 더 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소설일지도 모른다.

사람이든 사랑이든 타이밍은 굉장히 중요하다. 시선의 각도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언제 만나,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애정이든 우정이든 다르게 다가온다.

지난번 독서모임에서 한 회원으로부터 '시절인연' 이라는 말을 들었다. 불교용어라며 말해주었는데, 사람사이의 인연은 시절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 속한 인연이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고,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인연이 다시 찾아오기도 하고 그러는게 인생이다. 나는 [프리즘]을 읽으며 나와 전혀 다른 사람들이지만 나와 타인의 관계는 어떤지 생각해보았다. 지금 내 곁에는 누가 있고, 우리는 어떤 시선으로 서로를 대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문학의 순기능!

감각적인 소설이었다. 가을날에 써내려간 젊음의 한 페이지 같이 눈부신 기분으로 잘 읽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직접 읽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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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감정 - 나쁜 감정은 생존을 위한 합리적 선택이다
랜돌프 M. 네스 지음, 안진이 옮김, 최재천 감수 / 더퀘스트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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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가 감수했다고 하면 일단은 믿고보는 경향이 있는 나에게 이 책은 행운과도 같았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은 사람이라면 일단 이 책 제목이 주는 궁금함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이기적 유전자에 이어 이기적 감정이라니! 감정이 이기적일 수도 있나? 감정도 진화를 목적으로 일부러 발현된다는 걸까? 궁금함을 한가득 안고 책을 펴 들었다.




작가는 정신과의사다. 진화생물학으로 정신장애를 설명하고 싶어서 이 책을 쓰고자 했다. 저자는 인간이 왜 병에 걸리는지 진화심리학적으로 연구하기도 했다. 저자는 인간이 가진 감정이 자연선택 과정을 거쳐서 알맞게 인간을 진화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딱다구리가 벌레를 먹기위해 나무를 잘 쪼도록 진화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인간은 몸과 마음이 병에 걸리기 쉽게 진화해버렸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기를 원한다. 인간에게 감정이라는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은 상당히 약하다. 저자는 감정은 우리의 행복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나쁜 감정이 좋을 수도 있다는 것!


고통과 통증은 나쁜 감정과 같이 오기마련이다. 그것은 인간이 질병이나 사고로부터 공격받기 이전에 자기 방어가 되기도 한다. 폐렴환자가 너무 기침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죽는다고 한다. 얼마전부터 있어온 심장의 답답함이 협심증을 치료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고, 환자가 갑자기 짜증이 많이 나고 살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든다면 우울증약을 처방받아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마냥 좋은 감정이 아니라 외려 나쁜 감정인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를 일반적 상황으로 고려하지 않고 개인의 성격 같은 내적문제에서 찾으려고 하기도 하는데 이를 가리켜 '기본적인 귀인 오류' 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예를들어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은 그 높이만으로도 위험성을 장착한다. 나에게 고소공포증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그 사람이 그 높은 곳에 올라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문제는 높은 건물이지만 내적 문제는 공포증이다. 하지만 때론 공포증이 사람의 안전을 지키기도 한다. (물론 과도한 것은 차치한다)


질투 같은 것도 마찬가지다. 인간에게 질투가 없으면 결혼이란 제도도 없을 것이다. 인간을 제도안에 묶고 질서 속에 살게 하는 것은 '감정' 의 산물이다. (제도가 파괴됐을 때 여자와 아이들이 얼마나 위험할지는 적으나 마나)


이 책은 수 많은 비유적 예시와 관련 서적과 환자들의 사례를 통해서 독자에게 저자의 핵심을 이해시키고 있다. 다소 어려운 단어를 제외하고는 읽기에는 무리가 없는 책이다. 다만 상당히 방대한 양을 다루고 있고, 진화심리학을 잘 모르기 때문에 완벽하게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지고 있으면 상당히 도움되는 책인 것 같다.


인기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을 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슬픔에 관한 부분이다.


어린이 영화였지만 나는 보면서 울고말았다. 우리가 늘 재수없다고 무시했던 '슬픔' 이라는 감정을 직시할 때가 왔다. 왜냐하면 그 슬픔은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저자는 책에서 사별을 예로 들며, 슬픔을 지연하는 것이 훨씬 위험한 상황이며, 슬플만큼 슬퍼해야 치유가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100% 동의한다. 사람에게는 문제 상황에 나와 관련된 무엇인가를 찾아 감정을 같게 하는데 그것이 바로 슬픔의 힘이고 , 전문용어로는 '수색이미지' 라고 한단다.


희노애락애오욕은 양날의 검을 가졌다. 없어서도 안되고 지나쳐서도 안되는 것이다. 다만 인간이라면 이 것을 제대로 활용하여 발전의 도구로 삼을 정도의 분별은 지니고 있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대사회는 저 일곱가지 감정이외에도 공포라는 감정이 심각할 정도로 퍼져있다. 그래서 혐오가 양산되고 정신병이 만연한 사회가 돼가고 있다. 그것은 저자의 말대로 미디어 때문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말처럼 육식 때문일 수도 있고, 도시로 몰려들어 자연대신 공업이나 산업과 친해지면서 빚어진 부작용일 수도 있다. 그러기에 무엇보다도 우리는 타인과 나의 감정을 위한 연구와 배려를 잊어서는 안되겠다.

꼭 한 번 읽어볼만한 책! [이기적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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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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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가 종전의 히트를 쳤는데 저는 아직 못 읽었어요. 이 작품 너무 기대되네요!! 책 오는대로 열심히 읽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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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킹 오레오 새소설 7
김홍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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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이기호 작가의 추천사를 보고 무척이나 궁금했던 책이다. 또, 자음과 모음의 새소설 시리즈를 알기에 기대되는 작품이었다.


사건은 의문의 메일로부터 시작됐다. 전자상가의 사람들에게 전달된 총 설계도. 만든사람은 12. 반대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제작에 성공하고 쏘면 비트코인 시세 80억을 준단다. 안만들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그 총은 터지고 난사된다. 서울 시내가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인다. 도대체 누가,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빠르게 읽어나갔다. 엄청 가독력이 좋다고 생각은 안했다. 짧은 챕터로 달라지는 서술자들은 적응하자마자 낯설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렇지만 나는 빨려들어가듯이 결말로 향하고 있었다. 범인이라고 일컬을만한 사람은 누구인지 이 모든 사건들이 상징하는 바가 뭔지.


처음 챕터는 총에 맞은 오수안의 서술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후에 윤정아, 임다인, 박창식을 거쳐 오수안으로 돌아오는데 그 후에는 다른 인물들도 끼어있다. 독자는 이 많은 인물들의 눈을 거치며 사건의 핵심에 다가간다.


그런데 중간에 좀 이상한 부분도 있었다. 아마도 작가가 추구한 상징의 세계를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거겠지만 오수안이 처음부터 오레오를 가지고 심상치않은 일을 벌이는데 고게 좀 의문이었다. 첫파트에서 병원에 입원한 오수안이 오레오를 먹는데 -먹는게 한가지 종류뿐이다- 뭔가 그 바삭하지만 부드러운 질감, 입안에 넣었을 때의 나름의 황홀경 같은 거는 조금 억지스러웠지만 이해는 갔다. 하지만 오수안이 뒤에가면 오레오를 얼굴에 바르고, 끓여먹고, 심지어 담배처럼 태운다. 곱게 빻아서 필터에 크림까지 묻히는 장면은 상당히 컬트적이었다. 이유는 아직까지 의문이다. 제목이 그래서 스모킹오레오 라는 것을 확인했지만 오수안이 총에 맞아서 저런 일을 하나? 싶으면서도 내 정서로 완벽히 이해되진 않았다. 뭐 워낙 소설 속 인물은 문제적 인물이니까!


아무튼 대한민국은 총기소지는 불법으로 지정된만큼 상당히 안전한 나라라고 자부했지만 소설일지언정 자꾸만 시내복판에서 총이 쏴지니 무섭긴 했다. 세상에는 돈 많은 또라이가 참 많구나 싶기도 했다. 돈으로 남을 좌지우지 하려고 하고 불법을 합리화시켜 사회를 테러하고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악의 무리가 비단 소설만의 일이겠냐 싶기도 했다.


근데 나중에 귀신도 나오고 총이 빙의되기도 하고 해서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음 범죄느와르물이 애니메이션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융합은 불가역적이에요.

오수안은 이제 없습니다.

분리가 된다고 해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기도 하고요.

저한테 중요한 건

멍청한 게임이 끝나서 더 이상

아무도 죽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오레오가 죽여준다는 것뿐이죠.

p.225


작가 김홍에겐 이 책이 첫번째 소설이라고 한다. 독특한 상상력과 실과 허상을 넘나드는 장면의 묘사가 이 작가의 색채인지 궁금하다. 다음 작품이 나온다면 읽고 두 작품을 비교해보고 싶다. 얼마 전에 읽었던 [무차별 살인법]이 생각났는데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자기를 신격화 해 물질을 가지고 인종을 청소하려고 드는 현대판 히틀러들이 존재해 사회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는 생각에서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최무진의 [인더백] 같은 느낌도 살짝 보이고, 김동식의 수많은 장편(掌片)소설들도 생각이 났지만 결국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나의 감성에는 어렵고 불편한 그런 작품 세계였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이 젊은 작가를 알게 돼서 반가웠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 많이 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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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 우리 안에 스며든 혐오 바이러스
박민영 지음 / 북트리거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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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에 스며든 혐오 바이러스

지금, 또 혐오하셨네요

박민영

북트리거



눈먼 돈, 장님 코끼리 만지기, 병맛,

벙어리장갑, 귀머거리 3년



평범하게 썼던 관용어이자 속담 가운데 엄청나게 많은 혐오 표현이 있었다는 걸 이 책을 보고 알았다. 나름 넓은 사고와 이타심을 정말 나름대로 지녔다고 생각했던 지난 날들이 굉장히 오만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던 말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혐오 발언이 있었는지 체크해보니 부끄럽기가 이를 데 없었다.


어제도 아들에게 농담반, 진담반 '우리 집에 게임충이 두 마리 있어요, 정말 극혐이에요.' 라고 말했다. 엄마야 늘 재밌게 말을 하기도 하고, 이렇게 말해도 본인은 게임을 끌 생각이 없으므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아들이다. 우스갯소리로 내뱉은 저 말들 가운데 -농담일지라도- 써서는 안되는 단어들이 있다. 솔직히 벌레라는 표현을 붙여서 '-충'이라고 말하는 것이 혐오 발언이라는 걸 이제는 모르는 사람들이 없다. 진지충, 급식충, 맘충, 틀딱충 등등 붙이기만 하면 말이 돼 버리고 그 어감에 따라 의미를 이해해 버리는 세상이 왔다. 공통된 하나의 습성을 싸잡아 한 번에 비난하는 잘못된 일반화에서부터 근거 없는 혐오 사상까지 너무나 많다. 말로 인한 상처가 실제 물리적 폭행을 휘두르는 트리거가 될 때까지도 혐오의 말들이 멈추지 않는다. 이제는 쉽게 쓰이고, 널리 쓰인다.


아직도 심각성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혹은 문화로 받아들여 버리는 그 그릇된 혐오의 버릇들을 고치기 위해서 이 책은 꼭 널리 읽혀야 하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왜 혐오 발언을 쓸까. 그리고 어쩌다가 혐오를 하게 되었을까. 누구나 개인의 생각이라는 것은 존재하고, 모두 같을 리 없다. 반대도 가능하고, 비판도 가능한 세상이다. 그렇지만 혐오는 미워하는 것을 넘어서는 극단적인 생각의 발로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렇게까지 집단을 싸잡아 욕하는가.



혐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위만으로는 부족하다.

혐오에 대한 메타지성이 필요하다.

혐오가 정치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던 논리적 맥락 속에 있으며,

그 역사적 연원은 무엇인지, 그 발생원인은 무엇인지 등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객관적 판단이 가능하고,

인식이 바뀐다.

p.15



저자 박민영은 혐오를 4개로 나누었다. 세대 혐오, 이웃 혐오, 타자 혐오, 이념 혐오.


세대 혐오 중 가장 처음이 '청소년 혐오'였는데 청소년을 기르는 엄마로서 나도 모르게 내 아들을 '중2병'이라는 거에 가두고 그 시기는 저렇게 미쳐날뛰는 시기니 김정은이 대한민국 중2들 때매 못 쳐들온다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던 엄마였다는 게 너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작가의 글에 반성과 성찰과 더불어 내가 왜 그렇게 가감 없이 혐오적인 생각과 발언을 했는지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돼서 좋았다. 작가는 혐오가 어디서 기인했는 줄 알면 왜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안다고 생각한듯하다. 그래서 어쩌다가 사람이 세대별로 나와 다른 세대를 혐오하게 됐는지를 이야기해 준다. 청소년이 급식을 무상으로 지원받는 것은 그 애들이 쓸모없는 아이들이 아니며, 그 부모가 세금으로 그것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므로 '급식충'이라는 말은 전혀 이유 없는 혐오이다. 또, 사회가 부조리해서 생기는 온갖 문제들을 청소년이 질풍노도의 사춘기라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며, 오히려 어떤 세력이 이익을 목적으로 그런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정치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또, 여성청소년에 대해 이중으로 혐오해 그것이 자연적으로 여성 혐오로 이어지게 하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혐오의 뿌리가 상세하게 기록돼 있어서 읽으면서 여러 번 고개를 주억거렸다.


살면서 가장 화가 나는 혐오 발언 중에 하나는 '맘충'이라는 말이었다. 어떻게 보면 거의 가장 먼저 나온 혐오 발언이 아닌가 싶다. 내가 엄마여서 아마 더 와닿는 발언이겠지만 나는 그것이 그저 일부 몰지각한 엄마들 때문에 빚어진 말인 줄만 알았다. 물론 그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청소년의 반대자로서, 소비주의의 포로로서, 기업에 착취당하고 남편에게 무시당하는 존재로서 발현된 혐오가 기혼 여성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모든 문제 상황이 단 하나의 원인으로만 비롯되지는 않는구나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깨달은 바가 크다.


스웨덴 같은 나라는 노인들이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왜 우리나라는 노인들이 폐지를 주울까. 왜 노인은 역정을 잘 내고 늘 굶주리고, 빈한할까. 왜 노인은 기피 대상이 되었는지 그 뿌리가 어딘지 세세하게 알려주는 '노인 혐오' 파트도 읽어볼만했다. 언젠가 우리 모두는 늙는다. 나는 그렇게 되지 말아야지 아무리 다짐해도 사회 구조가 해결되지 않으면 나도 여전히 소리만 지르는 노인이 될 것이다. 청년들이 노인들에게 갖는 엄청난 부담과 피해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게 조목조목 따져주는 작가에게 고맙기까지 했다.


'이웃' 혐오 장에서는 누구나 자유로울 수 없는 혐오의 시선을 담았다. 가장 어려운 파트는 장애인 혐오였다. 동성애 혐오와 세월호 혐오는 안하면 그만인데 장애인 혐오는 아주 뿌리박힌 고정관념을 깨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장애인 시설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 시설을 만드는 데 드는 엄청난 비용을 걱정한다. 장애인 시설을 만드는데 비용이 드는 이유는 새로 만들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비장애인이 기준이었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 편리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만들었다. 살다가 리모델링을 하려면 돈이 더 많이 드는 법이다. 그러니 애초부터 만들고 시작했더라면 따로 비용이 들지 않을 것이 아닌가. 생각이 전환 이자 그것이 사실이다. 무조건 더 많은 사람을 기준으로 삼는 것 때문에 부차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장애인 혐오의 발판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반대로, 장애를 이유로 삼아서도 안된다고 말한다. 요즘 살인사건이나 아동학대 사건이 나오면 무조건 조현병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진짜 조현병을 앓는 사람은 무조건 혐오하고 본다. 완벽한 차별을 양산하는 잘못된 언론 플레이도 멈춰야 한다.


알지 못하고 지은 죄는 엄청나다. 세월호 혐오 파트를 보면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고, 심지어 원한 적도 없는데 정치와 결탁한 언론이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알게 되었다. 우리 역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나는 이 '이웃'을 혐오하다 장(場)에 '피해자' 혐오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성폭행 피해자 혐오는 말도 못 할 지경이다.


내가 이 책을 다 설명할 수가 없다. 분명한 사실은 모두가 읽어야 하는 좋은 책이란 점이다. 이 책을 반 정도 읽었을 때 정치색이 너무 강하지 않나 생각했다. 어느 날 모임에서 내가 이 책을 이야기했을 때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술에 술 탄 듯 알 수 없는 정치색을 지닌 사람보다는 한 가지 소신을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밀어붙이는 사람이 훨씬 낫다고. 듣고 보니 그렇다. 그리고 저자의 생각을 수용하고 말고는 독자의 판단이다. 다만, 이 저자가 오랜 시간을 들여 조사하고, 연구한 모든 것이 이 사회의 지독한 혐오 사상을 조금은 느슨하게 해줄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았던 챕터는 '정치혐오'였다. 솔직히 말하면 정치 얘기 안 좋아한다. 투표할 때 찍는 '당' 은 있지만 돌아가는 현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런데 저 파트를 읽고 왜 정치를 혐오하게 됐는지, 왜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지 알게 되었다. 여러 가지로 많이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나의 이 깨달음이 혐오로 젖어가는 이 사회에도 스며들어서 이제 인간이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이데올로기 생산에 있어서

가장 책임이 무거운 사람은

아무래도 지식인 계층일 것이다.

뜻있는 지식인들의 분발이 필요하다.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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