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 중학교 국어교과서 수록도서 이금이 청소년문학
이금이 지음 / 밤티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 나는 하루에도 몇번씩 기분이 널을 뛴다. 어떨 때는 기쁘고 즐겁다가 어떤 때는 불안의 몸서리가 끝도 없이 치고 또 쳐서 혼자 소설을 썼다가 지웠다가 한다.

참 철이 없다. 본인은 아니라지만 가끔 나를 지갑으로 여기고, 고용된 기사쯤으로 여기고 식당 아줌마 처럼 생각하며 때론 인공지능이길 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님 홍길동이거나. 내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의 것을 들어 주는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러면서 못해주는 것만 원망한다. 사춘기라고 넘어가기엔 내가 못견디겠다. 하루에도 열두번 아들을 포기했다가 다시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가 한다.

결핍이 없는 환경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일부러 내가 사라져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자기 중심적인데다가 거의 이기적이기까지 한 아들을 (혹은 딸을) 그저 둘 수도 없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기어이 한해가 끝나 간다. 지나간 시간은 희한하게 ‘후회‘라는 옵션을 깔고 들어오지만 나는 깔린 정도가 아니라 뒤덮고 회오리친다. 애를 왜 이렇게 키웠을까. 하지만 흘러간 세월은 돌이키지 못하고 더 큰 후회를 쌓기 전에 사랑이라도 선택하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올 한해를 보냈다.



이금이 작가의 소설집 [벼랑] 속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은 애처롭다. 각자 다른 삶을 살지만 모두 순조롭지 못한 처지인 건 확실하다. 그들이 겪는 불안과 좌절을 엿보고 있자니 안쓰러우면서도 내심 서글픈 부러움이 생겼다. 동명의 단편 <벼랑>을 제외하고는 인물들이 일련의 시련을 겪으며 성장하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 아이들만 성장한 게 아니라 인접한 어른들까지도 말이다.

🔖여행을 마음대로 계획할 수 있는 열여덟 살은 처음 보았다.
현우의 열여덟 살은 대학을 위해 저당 잡혀 있었다. 현우뿐 아니라 현우가 아는 아이들은 거의 다 그랬다.
열여덟 살은 스무 살로 가는 길목으로써 존재할 뿐이다. p.141

<생 레미에서, 희수>를 읽고 있자니 찔린다. 자유분방한 희수를 좋아하면서도 부러워하는 현우의 말인데 내게 계속 맴돈다. 대한민국에서 개인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열여덟 살은 대부분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다. (희수는 부모가 사고로 죽었고, 은조는 아버지가 죽었고, 민재는 엄마가 유방암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아이들은 의외로 자기 인생 결정에 진지하고 합리적이다. 하지만 부모는 늘 아이들을 앞서 간다. 마치 대단한 가이드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 아이들을 위한다면서 몇마디 훈계로 실패할 기회를-더러는 성공할 계기를 주지 않는다. 패배는 자명하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하고 싶은 것을 멈추고 자기를 잃는다.



부모는 그늘이다. 따가운 햇살이 비출 때 열사병에 걸려 쓰러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시원한 그늘. 하지만 사실 아이들은 햇살 아래서 더위를 견뎌낼 권리가 있다. 쓰러졌다가 일어나서 다시 걸으며 성장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시원한 그늘이 되겠단 포부와 달리 아이들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만 지게 하면 어떡하지?

힘이 되는 부모가 되어 주고 싶다. 부모 없이 더 잘 헤쳐나가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어딘지 머쓱하다. 정말 소설 속 아이들처럼 부모의 부재가 성장의 원동력일까?



벼랑 끝에 서기야 했겠느냐마는 현실의 아이들도 나름대로 고충을 끌어안고 매일 싸우며 나가는 중이다.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후회가 돌다리처럼 깔려 있더라도 그 길 끝에 서면 좀 더 넓은 마음이 들어차 있을 것이다. 함부로 내가 먼저 걸어주리라 다짐하지 말기, 마음대로 이 엄마가 다 닦아놓았노라 설치지 말기. 그저 아이가 먼저 내민 손만 마주 잡아주기.



한국에서 살아가는 만성 소화 불량 아줌마에게도 푸른색 말🐴이 가슴에 남았다. 다섯 편 모두 좋았다. 근데 대체 왜 청소년 소설을 읽고는 내가 결단을 하게 되는 거야?



2008년에 출간된 책을 2022년에 개정판으로 다시 냈다고 한다. 지난 번 북토크 때 개정판을 왜 내느냐는 물음에 달라진 감수성에 부응하기 위해 잘못된 표현들은 지우고 괜찮은 표현들을 더하는 작업을 한다고 작가님이 대답했다. 나는 그 말이 좋았다. 읽으면서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다. 👍그리고 연작 소설이라서 인물관계 퍼즐 맞추는 것도 꿀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안의 책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0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노력은 목표와 상관없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삶 자체에 의해 경로 이탈을 겪는다. 처음과는 다른 성질의 노력으로 변하고, 다른 목적에 쓰이고, 처음에 이루려 했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래서 차라리 소박한 목표가 더 가치 있으니, 소박한 목표만이 온전하게 달성되기 때문이다. 만일 재산을 한밑천 모으려고 노력한다면 어떻게든 이룰 수 있을 것이다. - P19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폴 발레리의 문장들 문장들
폴 발레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속된 상상은 속된 진실을 속된 거짓으로 바꿔놓을뿐이며, 결과도 결실도 득 될 것도 없이 부조리 속으로점점 멀어지는 과장이고증식일뿐이다.
그러나 그 부조리는 내가 매일 보는 것을 전혀 다르게보게 해주기에 나를 풍요롭게 채운다. - P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친밀한 이방인 - 드라마 <안나> 원작 소설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여자는 한때 자신에게 있었던 생기와 아름다움을 남편과 아이에게 빼앗겼다고 믿으며, 그들을 남몰래 증오했다. 그러면서도 그들로부터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제 그 여자의 이름이고, 집이고,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매일 그들을 죽이는 꿈을 꿨고, 한밤중에 일어나 잠든그들의 얼굴을 손으로 쓸며 안도했다. 그 여자는 삶이 이미 자기들를 스쳐지나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그 자리가 불에 덴 것처럼 뜨거웠다. - P1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훌훌 -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57
문경민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모가 된다는 건 뭘까? 가족이 된다는 건!!

'가족'이라는 게 혈연 중심으로만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관념은 분명히 잘못 됐다. 피가 섞였다고 반드시 사랑해야 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면 인간을 사랑해야 한다. 자식이라서, 부모라서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니라 약한 자에게 힘을 주고 같이 행복하게 잘 살아보자 다짐하는 게 가족이어야 한다. 그러나 너무 많은 곳에서 어린 생명들이 함부로 취급당하고, 버려지고, 죽임 당한다. 아프고 속상하다.



문경민의 소설 [훌훌]을 읽었다. 주인공 유리의 엄마서정희는 유리를 입양 했다가 자기 아버지에게 버리다시피 맡기고 떠났다. 그후, 서정희는 어떤 남자와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애를 죽도록 패고 잘 돌보지 않았다. 그리고 죽었다. 고2인 유리는 죽어버린 엄마와 아픈 할아버지를 대신해 4학년 짜리 남자 아이를 떠맡게 되었다.



청소년 소설이고, 희망을 노래하는 건 알지만 굳이 따져보자면 이건 유리에게 너무 불리한 일이다. 가정 형편상 그 흔한 학원 한 번 못가며 열심히 공부하는데 집안일에 아이 양육까지 떠맡다니. 고1짜리 아들놈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다. 자기 먹은 밥그릇 하나 개수대에 담그지 않는, 너무도 편안하게 살고 있는 내 아이와는 감히 견주지도 못할만큼 유리가 안타까웠다.



그래도 참 잘 자라줬다. 삐뚤어지기 충분한 환경임에도 더 도약하려고 애쓰는 유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동생의 몸에 난 상처를 그저 보아 넘기지 않는 따뜻함 역시 어딘가 서글프게 느껴졌다. 형편상 너무도 빨리 비애를 알아버린 애어른 같아서 대견하면서도 가슴 아팠다.



하지만 무엇보다 속상한 것은 엄마를 죽였다는 오명까지 쓰고 재판정에 세워진 열한 살 연우였다. 그는 학대에서 겨우 벗어났지만 유리벽에 부딪쳐 죽어가는 한마리 새처럼 거칠게 떨고 있었다. 때리고 할퀴던 엄마는 죽고 없는데 여전히 남아 온 몸에 번지고 있는 멍을 보면서 차라리 연우가 서정희를 밀어버린 것이래도 무슨 할말이 있을까 생각했다.



사회는커녕 가정에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 아이들의 이야기는 항상 가슴을 저민다. 뉴스에서 왕왕 들려오는, 아이의 목숨을 부모라는 이유로 함부로 거둬들이는 사악하고 파렴치한 치들에게 보내는 혐오만으로는 연약한 아이들을 지켜내기 어렵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서슴없이 자행되는 폭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오늘도 소설은 잔잔하게 갇혀버린 나의 심사에 묵직한 돌 하나를 떨어뜨린다. 비탄에 잠긴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혈연보다는 인간애가, 동료애가, 우정이, 사랑이, 연대가, 위로가 희망을 만들어 낸다.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생명에게 그것들이 주어졌으면 좋겠다. 연우에게 유리가 그랬듯, 유리에게 친구들과 담임선생님이 그랬듯, 아니 할아버지가 그랬듯.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두 손주들이 그렇듯.



청소년들이 읽으면 좋겠다. 어른이 같이 읽으면 더 좋고. 이런 좋은 책을 읽으면 독자는 할일이 많아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