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드 그린 토마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9
패니 플래그 지음, 김후자 옮김 / 민음사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캐시 베이츠가 출연한 동명의 영화로 더 유명한 패니 플래그의 소설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가 그려내는 이야기는 문학이 줄 수 있는 위로가 거창한 데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스릴과 긴장 같은 페이지 터너의 요소 없이도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이 큰 상승과 하강의 반복이기보다 소소한 일상의 연쇄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설이 단조로운 일상에서 어떤 가치를 발견해 내는 슬로 라이프 소설(혹은 영화)의 플롯을 따르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소설에는 한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상실과 환희, 기쁨과 분노가 모두 들어있다. 그럼에도 독자의 시선을 끌어 당기는 것은 극적인 사건들보다 사소한 시골 마을의 마법같은 일상들이다. 마치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라는 요리처럼 가장 소박한 재료와 조리법으로 최고의 맛을 내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펼쳐지는 소소한 드라마의 모양새를 한 것 치고는 꽤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 있다. 평화로운 일상에 돌연 찾아오는 어떤 사건들은 이 소설이 인간 개인사의 참혹한 비극의 플롯으로 읽히게도 한다. 나아가 영웅서사와 범죄 사건을 미스테리한 방식으로 드러내며 소설적 재미를 더한다. 담론을 조금 더 확장시키면 인종과 성, 장애를 바라보는 세상의 모든 편견에 항의하는 사회 비판 소설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기억하는 방식에 무엇보다 적합한 것은 것은 '휘슬스톱'이라는 시골마을 카페를 둘러싼 다양한 사람들의 연대의식이다.  

사실 이를 단순히 시골 마을의 넉넉한 인심과 공동체 의식의 향수처럼 낭만적으로만 보기에 소설의 배경은 단순하지 않다. 인종 문제가 심각하던 1920~30년대의 미국 남부의 시골 마을이 소설의 배경임을 상기한다면, 사람들의 평화로운 일상 뒤에 감추어진 위선의 추한 얼굴을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KKK단이라는 섬뜩한 단체가 활동하고 거주할 집, 이용할 수 있는 열차의 칸 같은 것들이 피부색으로 결정되는 곳에서 모욕을 저항 없이 받아들어야만 했던 흑인들의 모습이 작품 곳곳에는 그려진다. 그럼에도 소설 속의 흑인들은 그들의 삶과 존재를 사랑하고 긍정한다. 사람들은 증오보다는 사랑을 위해 살아간다. 그들은 인간은 악한 것이 아니라 단지 약한 존재임을 안다.

부조리한 사회에서는 대개 전통적인 도덕관념이 파괴되고 새로운 형태의 모럴이 긍정된다. 소설 속에서는 활빈당의 홍길동을 연상시키는 절도도, 살인과 은폐, 방조까지도 통쾌한 모험으로 여겨진다. 현대를 살아가는 에벌린의  삶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1980년대의 에벌린에게는 어떠한 사고도 범죄 사건도 일어나지 않지만 그녀를 둘러싼 절망의 그림자는 오히려 더 짙게 드러난다. '혐오'라는 말을 참 쉽게 입에 담는 시대다. 차별과 편견이 핏속 깊이 흐르던 20년대 미국 남부의 마을 사람들보다 더 쉽게 남을 혐오하고 그들이 살아온 삶을 함부로 부정한다. 마치 그럴 권리가 있다는 듯이. 에벌린이 느끼는 환멸은 반 세기 전 휘슬스톱 카페의 소소한 이야기들로 인해 녹아 내린다. 사람에게는 캔디나 케이크의 달콤함보다 인정과 따스한 연대가 필요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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