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드 오브 왓치 빌 호지스 3부작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전히 스티븐 킹의 장기는 공포 스릴러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천부적인 스토리텔러로서의 자질을 굳게 믿기 때문에 탐정 소설이라는 장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탐정'에 대한 일련의 스테레오타입들은 - 홈즈의 괴짜같은 성품, 포와로의 날카로움, 필립 말로의 고독 같은 - 장르의 매력을 어느 정도 보장하기 때문에 오히려 기대가 컸다고 해야겠다.

그러나 <미스터 메르세데스>로 시작된 스티븐 킹의 추리소설은 관습적인 장르 문법에서 매력적인 부분만 제거하는 파격을 시도한 것 같다. 인물의 매력도를 결정짓는 육체적인 매력같은 것은 배 나온 60대의 은퇴한 경찰 빌 호지스에게서 기대할 수 없다. 소위 뇌색남이라고 일컬어지는 명민하고 재빠른 두뇌의 소유자도 아니어서 머리 좋고 사리에 밝은 조력자가 반드시 필요하다.(이 조력자들에게서 더 매력을 느끼는 것이 당신의 잘못은 아니다.) 사랑에 있어서도 소극적이고 소심한 편이다. 빌 호지스는 한 마디로 '은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정신적 신체적으로 쇠락해 있다. 탐정이라 하기에는 카리스마가 부족해 캐릭터성이 결여되어 있는것이다.

범인을 사이코패스로 설정한 것도 파격적인 도전이다. 사이코패스물이 플롯을 단조롭게 만드는 이유는 사이코패스에게는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막가파식 범죄를 저지르고도 인간적인 심리적 갈등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이코패스가 범인인 이상 일반적인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범인의 추리는 인성에 근거한 추론보다는 사실적인 정보의 수집 차원에 국한되어 버린다.

게다가 스티븐 킹은 추리 소설의 묘미인 '범인 찾기'라는 내러티브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범인을 소설의 도입부에서 밝혀 버린다. 그리고 여기에 어떤 반전도 허용하지 않는다. 미스터리 수법을 통해 긴장감을 주기 보다 탐정과 범인의 밀고 당기는 대결을 통해 스릴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탐정 소설이라는 장르로는 꽤나 파격적인 스토리텔링인 것이다.

추리 소설에서 기대되는 다양한 공식들을 배반하면서까지 스티븐 킹이 그리고 싶었던 이야기는 오히려 지금의 현실에 가깝다. 작가는 선악의 경계가 무너지고, 인간애가 사라져버린 냉혹한 현실 사회를 하드보일드하게 그려보고 싶었던 것 같다. 소설은 실제로 빌 호지스의 무능력(고전적인 탐정에 비해)을 부각시켜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현대사회의 각종 문제들의 복잡성을 강조하고 있다. 고전적인 권선징악의 논리로 해결되지 않는 실업과 구직난, 대형 콘서트장 테러, 게임 중독 같은 현대 사회 이슈들을 표면화 시킴으로써 인간의 무력함을 일깨우는 것이다. 빌 호지스 트릴로지로 일컬어지는 소설 - <미스터 메르세데스>, <파인더스 키퍼스>, <엔드 오브 왓치>는 스티븐 킹의 첫 탐정소설이라는 의의보다 오히려 가장 리얼리즘에 가까운 소설이라는 평이 더 적절할지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