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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 좋은 방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8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술술 잘 읽히는 로맨스에도 언제나 한 가지 눈여겨 봐야 할 점이 있다. 어떤 남자, 혹은 어떤 여자가 주인공의 최종 상대로 낙점(?)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의 승자가 되는 사람은 윤리적으로 바람직하다. 적어도 작가가 추구하는 윤리적 이상에 부합한다. 비록 규범적으로나 관습적으로는 어긋나 보일지라도 말이다. 다시 말해 로맨스는 작가가 생각하는 바른 인간상을 드러내 보이는 간접적인 수단인 셈이다.
에드워드 포스터의 대표작 <전망 좋은 방(A room with a view)>에는 몇 군데 웃음 포인트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부분이 하나 있다. 피렌체 한 호텔의 투숙객끼리 떠난 소풍에서 일행과 떨어진 여주인공 루시가 남자들이 모여있는 곳을 찾기 위해 이탈리아인 마부에게 질문을 하는 장면인데, 이탈리아어를 잘 모르는 그녀는 '신사(gentle men)'라는 말을 '좋은 남자들(buoni uomini)'이라고 바꾸어 말한다. 그것을 나름대로 알아들은 마부는 루시를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남자'가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간다. 물론 그 곳에 서 있던 남자는 루시의 상대가 될 조지다. 중요한 것은 조지를 '좋은 남자'로 단정하고 루시를 그리로 이끈 사람이 아무런 인습의 구애를 받지 않는 이탈리아인이라는 점이다. 포스터의 의도가 잘 드러나는 장면이다.
<전망 좋은 방>은 로맨스의 옷을 걸치고 있지만 '좋은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리는 도덕적 교양서처럼 읽힌다. 범위를 좁히자면 좋은 배우자에 대한 윤리적 정의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사실 훌륭한 로맨스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남녀간의 사랑이 싹트는 과정에 대한 감정적 깊이가 절실하게 드러나지 않고 사랑의 감정은 다소 과장되었고 지나친 도약을 거듭한다. 그러니 이 소설은 루시를 둘러싼 두 남자의 대립을 첨예하게 그리며 사랑의 참모습을 보여 준다기보다 루시의 짝으로 어울리는 남자가 어떤 부류인지를 보여주는데 더 치중한다. 그러니까 두 남자 - 세실과 조지의 성격을 극명하게 대조시킴으로써 '신사'에 대한 나름의 기준을 다시 세우고자 하는 것이다.
소설은 제목대로 '전망 좋은 방'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데, 이 논의는 이후에도 무수히 반복되며 소설의 주제를 구현한다. 루시가 추구하는 전망이 문자 그대로의 전망을 뜻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녀가 연주하는 베토벤의 선율로 암시된다. 소설은 20세기 초 에드워드 왕조 시대 영국 사회의 분위기를 그려내고 있는데, 예법이라는 구태한 관습을 벗어내지 못한 사회는 전망 없이 꽉 막힌 방과 같다. 특히 루시로 대표되는 '숙녀'에 대한 사회적 억압은 소위 '신사'라고 칭해지는 사람들의 구식 관념에 의해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그래서 전망에 연연하지 않는 조지의 자유분방함은 내면에 보헤미안 기질을 감추고 있는 루시의 영혼을 뒤흔드는 중대한 사건이 된다. 그러나 피렌체에서 만난 조지와의 인연을 통해 피어오르기 시작한 루시의 열망은 그녀가 속해 있는 원래 사회로 돌아오게 되면서 다시금 봉인된다. 세실의 약혼자로서 예법에 얽매인 삶을 살아가게 된 루시는 그 꼭두각시같은 삶 속에서 자신이 열망하는 세계가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게 된다.
<전망 좋은 방>은 여행지의 로맨스라는 꽤나 근대적인 요소를 사용했다는 점 뿐 아니라 그 여행지에 대한 섬세하고 깊이 있는 묘사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장소에 대한 묘사 뿐 아니라 여행지에서 싹트는 교류와 감정들, 낯선 문화에 대한 이질감까지 디테일하게 그려냈다. 여행지로서의 이탈리아를 찬양하면서도 그들의 미개성을 지적하고 업신여기는 태도는 오늘날 선진문화에 대한 우월성을 은연중에 과시하며 가난한 나라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이중성과도 상당히 닮아 있다. 무엇보다 현실의 갑갑함에서 벗어날 출구로서 여행의 효용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고전 답지 않은 근대성을 엿볼 수 있다. 루시가 세실이라는 전근대적 인습에서 달아날 수단으로 -당시로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을- 콘스탄티노플에 대해 꿈꾸는 것은 조지를 선택한 것만큼이나 파격적인 스캔들이었을 것이다. 물론 콘스탄티노플을 대신해 조지를 선택했다고해서 그것이 다른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니다. 포스터는 결국 루시와 조지라는 '아웃사이더'를 통해 당시 사회상과 세태를 은근히 꼬집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