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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회전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22
헨리 제임스 지음, 최경도 옮김 / 민음사 / 2005년 7월
평점 :
소설의 목표는 사실을 진술하는 데 있지 않기 때문에 서술자를 믿을 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물론 작가는 그 판단에 대한 단서를 곳곳에 심어 놓는다. 영리한 작가는 이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해서 소설적 장치로 활용한다.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The Turn of the Screw)이 놀라운 것은 이 때문이다.
한 젊은 여자가 어떤 집안의 가정교사로 입주하면서 귀신을 보게 되는 것이 이 소설의 핵심 서사인데, 소설의 묘미는 이 기묘한 이야기 자체에 있지 않다. 그 이야기의 진실성을 모호하게 하는 작가의 기교가 이야기를 더 흥미롭게 만든다. 이 섬뜩한 이야기는 추운 겨울날 난롯가에서 더글라스라는 신사에 의해 낭독된다. 이 수기를 쓴 여자는 더글라스와 모종의 관계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매력적인 젊은 가정교사로, 내화의 대부분은 이 여인에 의해 서술된다. 그러나 이 원고는 훨씬 시간이 흐른 뒤 외화의 화자인 '나'에게 전해져 세상에 공개된 것으로 되어 있다. 결국 소설은 세 사람의 손을 거쳐 오는 동안 최초의 이야기가 얼마든지 각색 되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처럼 귀신 이야기가 담긴 원고 자체의 진실성도 모호하지만,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인다고 해도 분명해지는 것은 없다. 독자는 이제 베일에 싸인 화자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믿을 것인지의 문제에 직면한다.
믿는다면, 무대가 되는 저택은 고딕 호러의 스산한 배경이 된다. 때마침 전직 가정교사와 하인이 죽었다는 사실이 귀신의 존재를 더 확고하게 해 준다. 오로지 화자의 눈에만 보이는 귀신은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필연적으로 나타나야할 존재처럼 여겨진다. 자신이 목격한 귀신에 대한 확고한 화자의 신념은 그것을 보지 못한 척(?) 행동하는 집안 사람들의 행위를 가증스럽고 기괴하게 만든다. 특히 천사같이 사랑스러운 두 아이들이 보여주는 이중성은 유령의 존재보다 더 섬뜩해 보인다.
반면 믿지 않는다면, 화자가 벌이는 모든 행동과 고군분투는 젊은 여자의 이상한 광기로 비쳐진다. 아이들에게로 향한 맹목적인 애정은 지나쳐보이고, 모든 간섭과 통제는 가정교사로는 월권으로 보인다. 흡사 주인으로부터 모든 권한을 위임받은 여자가 나아가 안주인의 지위에 대한 욕망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뒤틀린 인물의 심리는 유령 따위는 없다는 마일스 부인의 폭로와 겁에 질린 플로라의 모습에서 극적인 반전을 맞는다.
소설 속의 모든 오로지 화자의 심리 속에서만 벌어지며 그것을 외부 사건과 연결짓는 것도 오로지 화자 자신이다. 그럼에도 화자의 서술을 온전히 믿을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의 심리를 그 허점까지도 정확하게 파고드는 작가의 치밀함에 있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이 그것을 바라보는 층위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해석 되는가. 이를 오로지 한 인물의 심리를 통해서만 보여주었다는 것이 바로 우리가 헨리 제임스의 소설적 기법이 얼마나 진일보한 것이었는지 알게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