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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친구들 1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평점 :
<용감한 친구들(Arthur & George)>은 추리소설의 플롯을 부분적으로 취하고 있어 흡사 셜로키언의 구미를 생각한 팬픽을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킨다. 그 유명한 셜록 홈즈 대신 그의 창조주가 위대한 탐정의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다. 영국의 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한 명인 줄리언 반스가 셜록 홈즈의 창조주에게 바치는 이 헌사는 그의 삶을 일대기적으로 늘어놓기 보다, 그의 일생이 다른 한 인물과 만나는 특별한 지점을 부각시키면서 소설적 완성도를 꾀한다. 그래서 소설의 원제는 '아서(Arthur)'가 아닌 '아서와 조지(Arthur & George)'다.
소설은 처음부터 아서와 조지라는 두 인물의 아무런 접접도 없는 각자의 삶을 끈기있게 추적한다. 두 개의 삶은 그것이 시작된 환경에서부터 각자의 신념과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특징도 공유하지 못하는 별개의 삶인 것처럼 보인다. 하나는 알려진대로 셜록 홈즈를 창조한 아서 코난 도일의 삶이고, 다른 하나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는 조지 에들지라는 인물의 삶이다. 이 두 개의 삶이 하나의 이야기로 만나기까지 오랫동안 계속 이어지는 각자의 삶은 상당한 끈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 오랜 과정을 통해 작가는 이야기의 연결고리를 치밀하게 쌓아올린다. 상상력과 에너지가 넘치는 아서는 단조롭지만 평온한 삶을 보장하는 성직자의 삶을 거부하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어간다. 그는 실리적이고 야망도 있지만 상상력이 풍부하고 무엇보다 친화력이 뛰어나다. 이런 그의 성격은 미천한 성장 환경에서도 아서를 성공적인 사회의 일원으로 만들어준다. 반면 인도 파르시 출신인 목사 아버지 밑에서 금욕적인 생활을 해 왔던 조지는 정반대의 성향을 지니고 성장한다. 그는 영특하고 논리적이지만 다소 내성적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의 유년은 부족함이 없으면서도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는데 작가는 조지의 운명이 꼬이는 지점을 그의 환경과 성격을 통해 암시한다.
마침내 조지와 아서의 삶이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하나의 익숙한 역사적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19세기 말 프랑스를 들썩이게 했던 드레퓌스 사건이 그것인데, 그 본질의 유사성을 발견하는 순간 조지를 둘러싼 영국 사회의 부당한 분위기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유대인에 대한 프랑스인의 증오가 만들어낸 어처구니 없는 드레퓌스 사건에서처럼, 순혈 잉글랜드인이 아니었던 조지는 영문도 모른채 어느날 갑자기 큰 시련에 맞닥뜨리게 된다. 소설은 그 과정에서 편견과 증오를 교묘하게 포장해 진실을 왜곡시키는 집단적인 광기를 드러내 보인다. 또한 법이라는 가장 합리적인 도구마저 무력하게 하는 뿌리 깊은 편견과 위선 앞에 한 개인이 어떻게 좌절하는지 보여준다. 조지와 아서는 각기 다른 이유로 이러한 위선과 맞서 싸우게 된다. 아서는 드레퓌스 사건 당시 에밀 졸라가 그랬듯이 눈 먼 사람들을 각성시키고 사회의 정의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아서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편견과 차별에 대항하는 정의는 끝내 지켜지지 않는다. 그러나 비록 사회의 정의를 바로잡는 일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는 개인의 명예를 지켜냈다. 조지는 부적절한 대우의 대가로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했지만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의 결혼식에 친구의 자격으로 초대됨으로써 잃은 명예를 되찾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명예에 대한 문제는 여러번 부각된다. 이들이 살았던 시대는 종교적 신념에서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모든 행위와 생각이 명예라는 가치에 직결된다. 아서가 갈등하는 것은 매번 명예의 문제이고 조지가 위협받는 것 또한 다름 아닌 명예다. 작가는 봉건의 잔재가 남아 있는 빅토리아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참다운 명예란 무엇인지 아서의 삶 전체를 통해 질문한다. 기사 작위에 거부감을 느끼고, 청교도적 정신에 반하는 신념을 지녔으며,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에게 명예로운 삶이 가능한 것일까. 아서에게 있어 조지 에들지 사건은 작위, 종교, 전통적인 도덕관에 매여있는 허울 뿐인 명예가 아닌 참된 의미의 명예를 탐색하는 과정인 것이다.
조지 에들지 사건은 드레퓌스 사건 만큼 역사에 회자되지는 않지만 오늘날 영국의 상고법원이 있게 된 배경이 되었다. 줄리언 반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피조물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작가 아서 코난 도일의 숭고한 삶을 들추어냈다. 영웅적 인물의 활약상이라는 매력적인 이야기를 추리적 기법으로 통쾌하게 풀어냈을 뿐만 아니라 그 시대 정신을 소설 속에 담아냈다. 21세기의 위대한 작가가 바치는 19세기 위대한 작가에 대한 오마주는 능숙한 문학의 기법과 어우러져 뛰어난 성취를 이루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