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봄
심상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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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영화 <빌리지>는 자신과 마을의 근원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그들이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그들만의 문화, 그들만의 전설, 그들만의 금기를 가지고 살아간다. 외부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마을에 전해오는 설화적 상상력에 의해 통제된다. 심상대의 <나쁜봄>은 영화 속 마을을 연상시키는 '우리고을' 이야기다. 다른 고을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에 그 곳은 그냥 '우리고을'이다. 그 곳에는 소유도 다툼도 번민도 없고, 그들만의 문화와 전설, 금기만이 사람들 사이에 말로 전해진다.


작가는 '우리고을'을 통해 인류가 수없이 반복해 왔을 질문을 던진다. 완전한 유토피아란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 모든 인간을 만족시키는 이상적 사회에 대한 꿈은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는가 하는 문제를 소설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려낸다.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은 현실 사회의 병폐에서부터 출발한다. 그 병폐를 정의하는 관점이 유토피아의 성격을 규정짓는다. 한국적이고 토속적인 이상향 '우리고을'은 모든 사람이 미남미녀로 태어나고 200세에 가까운 수명을 가지고 살아간다. 해마다 '정씻기술'을 마셔 기억과 감정을 지워버리고 '새낭군맞이'를 통해 새로 부부의 연을 맺을 수 있는가하면 하는 일과 사는 일도 해마다 바꿀 수 있다. 우리를 위협하고 우울하게 하는 경쟁도 없고, 속박하는 가족도, 미추의 개념도 사라진 곳이 <나쁜봄>이 그리는 유토피아다. 모든 증오와 번민이 사라진 곳에 일년에 단 한번 봄마다 '광증'을 띠는 젊은이들이 출몰한다는 위협요소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해마다 큰보름날과 한식(寒食)에 치러지는 화형식을 통해 광인을 처형하고나면 일년 동안 마을의 안녕은 유지된다.


이러한 섬뜩한 집단살인 행위가 정당화되고 미화되는 지점에 이 유토피아가 지닌 허구성이 드러난다. 화형에까지 이르게 하는 이른바 '광증'의 징조란 대개 이런 것이다. 아름다움을 예찬한다거나 자신이 낳은 자식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는 것, 신을 믿거나 사랑에 빠지는 일 등. 말하자면 모든 인간다운 가치가 '광증'이라는 용서받지 못할 죄목으로 분류된다. 어떤 것은 봄이라는 계절이 가져다주는 일시적인 혼란으로 치부되지만 어떤 것은 치명적인 위험요소로 여겨진다. 그 중 '우리고을'이 가장 경계하는 광증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모든 행위다. 이야기를 만들어서 들려주는 일과 무언가를 알고 싶다는 욕망은 살인보다도 더 위험한 행위다. 그것은 이 고을의 평화가 인간의 모든 호기심과 상상력을 통제함으로써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상력의 통로인 '말'이 통제되어야함은 당연하다. '우리마을'이 이름을 가져서는 안되는 것도 '신, 아버지, 어머니'와 같은 말들이 알려져서는 안되는 것도 근원에 대한 단서가 공동체의 조화를 위협하는 상상의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다'라는 말이 없는 세상에는 '바다'가 없다. 그래서 '우리고을'은 아버지의 존재를 기억하지 않기 위해 그 말을 없앤다.


그간의 많은 유토피아가 첨단 과학 기술을 토대로 형성되었던 것과는 달리 <나쁜봄>에서 사람들은 오히려 대부분 일차산업에 종사하며 전통 문화와 관습을 고수하며 살아간다. 묘사되는 고을의 풍경과 삶의 방식은 마치 시대물을 보는 것처럼 예스럽지만 소설에 설명되는 배경을 되짚어 따라가보면 이들이 살고 있는 시대는 오늘날과 일치한다. 이 고을만이 인류 역사의 흐름에서 홀로 정체되어 있는 것이다. 이는 유토피아가 지닌 고립성을 더 뚜렷하게 드러낸다. 말의 통제와 시공간의 고립으로 인해 유지되는 이곳에는 어떠한 개인적 판단도 개입할 수 없다.


개인의 생각이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는 이 고을에 미와 추의 속성을 동시에 갖고 있는 뱀의 출몰이 상징하는 바는 크다. 유토피아에 대한 무한 낙관주의는 무너져 내리고 사람들은 유폐된 감정을 불러들인다. 그해의 '봄'은 다른 때보다 더 '나쁜' 모습이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을 예찬하기 시작하고 사랑의 감정에 겨워 춤을 추는가 하면 질투라는 욕망에 자신을 오롯이 내어준다. 이 '나쁜봄'은 인간의 정념이라는 불꽃이 마음껏 활개치는 계절이다. 혼란과 무질서가 극대화되는 이 시기는 개인의 욕망과 개성이 가장 뚜렷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유토피아가 평화와 안녕의 방법으로 억압한 것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이 자명해지는 순간이 이 고을에 해마다 찾아드는 '나쁜봄'이다.


모든 유토피아의 출발 지점이 결국 유토피아의 종언을 야기한다. 감정이 통제되는 곳에서는 결국 감정의 과잉이 평화와 안녕을 위협하게 되어있다. 완전한 유토피아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유토피아를 유지시키는 기제가 '억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토피아는 개인적 차원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닌데, 인간의 행복은 개성의 발현에서 출발한다. 아무리 이상적으로 계획된 사회라도 반드시 개인의 욕망과 충동하게 되어있다. 통제되고 억압된 정념이 불타오르는 매년 봄은 '우리고을'의 허구성을 해마다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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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4 0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짜나부리 2015-04-19 13:44   좋아요 1 | URL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허구적 유토피아 공동체의 모습이 지역과 시대를 넘어 비슷한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참 흥미로운 주제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