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의 자화상
전성태 지음 / 창비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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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글 잘쓴다는 작가들이 유려한 문체에 휘둘려 흔히 빠지기 쉬운 감상이 이 책에는 아예 없다. 대신 생활에서 건져 올린 투박한 말과 실감나는 현장감이 페이지를 가득 메운다. 기사식당 백반처럼 멋대가리는 없지만 감칠맛 나는 소박한 풍미가 있다. 전성태의 <두번의 자화상>에 실린 열두 편의 소설이 그리는 세계는 근간에 만연해 있는 주지주의적 경향을 벗어나 실감나는 삶의 현장에 주목한다. 그러나 기술적(記述的) 내러티브에 의존한 르포르타주 같은 생생함을 상상해선 안된다. 각각의 소설들에는 단조로운 삶에 대한 응시가 돌연 활력을 머금은 이야기로 돌변하는 순간들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집은 주변에서 들을 수 있을 법한 세간의 이야기를 펼쳐 놓지만 작품들이 주목하는 세계는 몇 가지 경향으로 수렴된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한국 현대사의 상흔과 현실의 부조리를 짐짓 드러내는 능청스러움이다. <로동신문>, <성묘>, <망향의 집>은 작가 자신이 '휴전선을 여행하며 궁리한 소설들'이라고 밝힌 것처럼 분단과 이산의 상처를 넌지시 드러낸다. 또 광주의 상흔을 그린 <국화를 안고>와 이주노동자 문제를 통해 오늘의 한국 사회를 조망하는 <배웅>과 같은 작품도 국가적 정체성을 뚜렷이 보여준다. 이 소설들은 진지하게 묵직한 얘기를 해보자는 자세로 무게잡는 대신, 그 문제를 한발짝 물러서서 조망할 수 있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우회적으로 접근한다. 또 배경 또한 그것이 얘기되고 있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벗어나 있다. 이야기가 벌어지는 곳은 한 임대아파트의 경비실이거나 가장 한국답지 않은 인천공항같은 곳이다. 작가는 시계추를 되돌리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인물들의 삶을 그려냄으로써 과거를 응시한다.


고달프고 부조리한 어른들의 생활 속에 병들어 가는 아이들의 애환을 그린 작품들도 눈에 띈다. <낚시하는 소녀>에 그려진 어른의 삶은 누추하고 비루하다. 그 비참한 세계 속에서도 순수와 동심은 지켜져야할 소중한 가치인 것처럼 그려진다. 그러나 소설은 그 환상을 가차없이 무너뜨린다. 아이의 관음적 욕망을 통해 비춰지는 어른들의 남루한 삶은 그 비극성이 더욱 부각된다. 황순원 작 <소나기>의 모티프를 가진 <소녀들은 자라고 오빠들은 즐겁다>는 그러나 <소나기>의 순수 세계를 비웃는다. 세계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타협도 허용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이어져온 삶의 냉혹함을 고스란히 견뎌낼 수밖에 없게 된다. 두 작품은 현실에 무너져 가는 동심의 세계를 어떤 감상과 페이소스도 개입시키지 않은 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또한 시종 기억의 이야기를 끄집어 낸다. 소설집의 첫 작품 <소풍>에서의 장모와 <지워진 풍경>의 아내, 마지막 작품 <이야기를 돌려드리리다>의 어머니는 모두 기억을 잃어가는 존재들이다. 별개의 작품이지만 이들의 행위 양식을 볼 때 그들이 동일한 인물이리라는 혐의가 짙다. 특히 <이야기를 돌려드리리다>의 일인칭 화자는 자전적 색채를 보다 강하게 하며 위의 세 인물들에 대한 작품 외적 세계를 짐작케 한다. 기억의 문제는 이야기로 치환된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살아온 이야기들을 통째로 잃어버리는 것이며, 이야기를 잃는다는 것은 육체만 빈 껍데기로 남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있어 기억, 즉 이야기는 거의 모든 것이다. 기억의 상실은 이야기를 잃어가는 우리 세계에 대한 은유나 마찬가지다. <이야기를 돌려 드리리다>에서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의 모습에는 이 소설집의 이야기들을 독자에게 내미는 작가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소설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세계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이야기되는 방식은 발랄하다. 소설 속에는 번득이는 위트와 허를 찌르는 전개가 도처에 자리한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웃음이 터진다. 머리가 아프다며 은나노 팬티를 머리에 뒤집어 쓴 아내가 바가지를 긁는 모습(성묘)이나 개밥그릇 하나를 얻기 위한 교묘한 연기가 제 발등을 찍게되는 상황(밥그릇)은 이 책의 해학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또 국가적 이념과 사상에 대한 담론이 한순간에 은밀하고 개인적인 경험의 차원으로 전복되는(로동신문, 망향의 집) 반전은 소설의 묘미를 더해준다.


<두번의 자화상>에 현대 소설의 하나의 경향이 되어버린 인물들의 실존적 고뇌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서사가 자의식 속에 갇혀 있지 않고 세상 밖으로 뛰쳐나와 활개친다. 여항의 이야기들을 옮겨낸 듯 이야기들은 사실적으로 움직이고, 세계를 반추하는 삶의 단편은 절묘하게 포착된다. 오늘날 보기드문 이 리얼리즘 서사가 '새로움'이라는 매너리즘에 빠진 한국 소설의 처방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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