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두들 등반기
W. E. 보우먼 지음, 김훈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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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해발 8,848 미터의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를 최초로 등정한 것은 뉴질랜드의 산악가 에드먼드 힐러리 경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세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함께 있었다고 역사는 기록한다. 여기에는 약간 부당한 측면이 있다. '에베레스트 정복'이라는 목표가 없었다고 해서, 등반대에게 고용된 포터의 신분이었다고 해서 그 영예를 공평하게 나눠갖지 못한 것은 명백한 역사의 오류다. 그의 조력이 없었다면 에드먼드 힐러리의 역사적 등정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힐러리가 없었다면 노르가이의 등정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노르가이에게는 에베레스트를 '정복'해야 할 이유가 없다. 애초 그들의 삶에서 자연이란 '정복'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W. E. 보우먼의 <럼두들 등반기>는 코믹 산악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내건만큼 소설의 요소마다 해학적인 장치가 넘쳐난다. 그 해학적 효과의 원천은 한마디로 '꿈보다 해몽'에 있다. 즉 표면에 드러난 서술과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 사이의 괴리가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소설은 해발 12,000.15미터 전인미답의 산 럼두들을 정복하러 나선 일곱 명의 원정대의 모험담으로 '럼두들 등반대의 등반 기록'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다. 소설의 도입에서 과정이야 어찌되었든 그 등반은 '성공적'이었다고 이미 기록되어 있고, 권위있는 산악인들이 그들의 공로를 치하하며 아름답게 포장한 서문과 머리말까지 첨부되어 있다. 그리고 원정대장 바인더의 시선에서 그 찬란한 모험담의 실체가 펼쳐지는데, 어리숙한 화자의 자의적 해석으로 정의된 온갖 사건들의 행간에서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바로 이 소설을 읽는 묘미다.  


<럼두들 등반기>는 과장과 허풍으로 점철된 소설이지만 사소한 디테일에 있어서는 상당한 리얼리티를 확보하고 있다. 허풍선이의 떠벌리는 이야기같은 어처구니 없는 과장임에도 설화같은 두루뭉술한 서술은 지양한다. 소설 속에는 비록 가상의 공간이지만 '요기스탄'과 '럼두들'이라는 구체적인 지명이 명시되어 있으며, 등정의 계획과 진행 절차에 있어 실제 등반 상황의 메커니즘이  훌륭하게 재현되어 있다. 이렇게 해서 이 소설은 '터무니없는 농담'에서 '깜찍한 패러디'로 둔갑한다.


럼두들 등반에 나선 대원들의 면면은 이렇다. 각종 질병을 달고 사는 등반대의 주치의, 길을 잃어 등반대에 합류하지 못하는 길 안내자, 매번 현지인들과 포터들의 분노를 사는 사교수완가, 비본질적인 실험에 목을 매는 과학자, 가는 곳마다 피로증을 호소하는 보급담당자, 장비 세팅에 골몰하느라 정작 사진은 한 장도 찍지 못하는 사진사가 그들이다. 이처럼 각 분야의 전문가이면서 그 분야에 관한 일이라면 모조리 망쳐버리는 대원들은 그들을 완벽한 팀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어리숙한 리더와 함께 등반에 나선다. 이 리더로 말할 것 같으면 모든 사람과 모든 상황이 좋게만 보이는 근거없는 낙관주의자다. 대원들의 의견 불일치는 고소난청의 탓으로, 격한 논쟁은 희박한 대기탓으로 돌리는 눈치 제로의 구제불능이다. 크레바스에 빠진 대원 한 명을 구해내기 위해 대원들을 모조리 크레바스 안에 넣어버리는 어설프기 짝이없는 리더지만 그들이 완벽한 팀이라는 고집스런 믿음만큼은 결코 버리지 않는다. 이 '신뢰할 수 없는 화자'로 인해 심각한 상황은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으로 둔갑한다. 이 무능력자들이 벌이는 일련의 해프닝을 통해 독자들은 어느모로 보나 이 오합지졸이 해발 10,000미터가 넘는 산을 오르기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등반대의 도전을 성공으로 이끌었을까. 소설은 대원들이 엉뚱하고 요란스러운 일을 벌일 때 마다, 하루 8시간의 근로계약을 맺은 채 등반대를 따라나선 무뚝뚝한 포터들에게로 초점을 돌린다. 대원들이 처한 상황이 처절할수록 포터들의 절도있는 대응방식은 부각된다. 마침내는 등반대가 짐짝처럼 포터들에게 실려 럼두들 정상에 도달하는 대단원에 이른다. 작가는 오합지졸 등반대에게 연민과 애정을 아끼지 않는 한편, 이들을 희화화하면서 날카로운 풍자의 칼을 이면에 들이댄다. 웃음 뒤에는 나약한 유럽인들의 무모한 도전에 대한, 자연의 정복이라는 헛된 욕망에 대한 조롱이 숨어 있다. 이 '화려한 모험담'인 양 포장된 소설은 무가치한 목표를 향해 불필요한 자원을 쏟아붓고 아무 의미도 없는 성취에 자기만족하는 열강들의 정복욕에 대한 희화나 다름없다. 에베레스트 등정 당시 노르가이는 힐러리가 정상을 먼저 밟을 수 있도록 정상을 코앞에 두고 삼십 분 이상이나 그를 기다렸다고 한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는 것은 그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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