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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 문도 - 제12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사계절 1318 문고 94
최상희 지음 / 사계절 / 2014년 8월
평점 :
많은 청소년 소설들이 그렇듯 최상희의 소설집 <델 문도>가 던지는 질문은 '성장'이다. 책에 실린 아홉 편의 단편은 성장이라는 문제에 직면한 십대들을 주인공으로, 그들이 인생의 두 번째 페이지로 넘어가는 그 찰나의 순간을 그리고 있다. 그 순간들은 소설 속 각기 다른 주인공들의 다른 배경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러나 이 소설들은 한 가지 접점을 향해 모여있다. 바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인식이다. 즉 성장이란 미지의 영역으로 존재하던 넓은 세계로 한 발짝 내딛는 일임을 이 책 속 인물들은 깨달아 간다.
여행 작가라는 작가 이력은 이 책에 실린 소설들에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대한민국 청소년들의 천편일률적인 삶에서 벗어나 인물들의 세계를 지구 곳곳으로 확장시킨 것이 그 첫 번째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곳은 인도 바라나시의 갠지스 강, 영국의 국제 공항, 이탈리아 베니스, 프랑스의 한 수도원에 이르기까지 넓게 퍼져있다. 심지어 다른 정서와 문화적 배경을 안고 살아가는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이 인물로 등장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입시지옥에 시달리지도 않고, 지나친 기술과 문명의 혜택으로 고립되어 있지도 않다.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 매몰된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성장의 본질에 접근해 있다는 것이 이 소설집의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성장의 문제를 사회학적 보고서 내지는 시사 논평의 연장선으로 활용하려는 최근의 청소년 소설들의 경향에 비하면 이것이 얼마나 신선한 시도인 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떠남'이라는 상황을 성장의 소재로 적극 활용했다는 점이다. 여행과 성장의 비례관계는 여행의 효용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절대적인 신념이다. 작가는 이러한 신념을 소설 속 플롯으로 끌어들인다. 'missing'에서 클로이 할머니가 주인공에게 한 말은 이 소설집 전체의 주제를 아우른다. "하지만 가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애들이 있지. 그러다 어느 날 불쑥 다시 나타난단다. 조금 야위기는 했지만 이전보다 훨씬 힘이 넘쳐서 돌아와. 나는 알고 있지. 그 녀석들은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거야." 인물들이 여행지에서 겪는 경험을 그대로 소설의 핵심 스토리로 활용하는가 하면('내기', '페이퍼 컷'), 여행에 대한 환상과 동경을 직접적으로 제시하기도 한다('필름'). 과거 떠나온 곳에서의 기억이 현재 삶의 변화에 동력이 되는 경우도 있고('missing', '기적 소리'), 현재의 삶이 인물들을 떠나게 만들기도 한다('노 프라블럼', '시튀스테쿰'). 그들이 떠나 온 곳이나 떠나 갈 곳은 모두 일상의 삶과 동떨어진 세계다. 아이들은 미지의 공간에 발을 들여 놓으며 세계의 변화를 경험한다.
그러나 미지의 세계가 언제나 낭만적이지는 않다. 환상은 대부분 지난한 삶의 과정에서 키워지는 경우가 많고, 더 넓은 세계는 더 많은 위험을 예비한다. 안온한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은 울타리 없는 야생에 그대로 내던져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책 속 주인공들의 떠남은 낭만으로서의 여정이 아니라 혹독한 세상에 대면하기 위한 준비다. 친구의 죽음이나 절연, 배신과 같은 일상을 흔드는 큰 사건은 물론이고 타인에게 닥쳐온 여러 시련들은 주인공의 일상을 뒤흔든다. 뿐만 아니라 궁색한 생활의 현장과 위태로운 가족 공동체의 잔영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고 주인공들이 현실 극복에 대한 드라마틱한 액션을 취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책은 아이가 냉혹한 삶의 진실과 최초로 마주하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델 문도(Del Mundo)'는 스페인 어로 '세상 어딘가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소설집 <델 문도>는 말 그대로 세상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삶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다시 '이곳'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단순히 낭만적이거나 이국적인 체험으로 현혹하기보다 세상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에 귀기울인다.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통해 수렴되는 인식이야말로 삶의 비밀이자 성장의 동력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