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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플랜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19
스콧 스미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비채 / 2009년 3월
평점 :
태생적으로 우월하거나 결함이 있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소설을 읽는 것은 김이 빠지는 일이다. 사이코패스가 활약하는 범죄소설 같은 것을 상상해보라. 이야기가 얼마나 시시하게 흘러갈지 뻔하지 않은가. 태생적인 범죄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자가 벌이는 참극 같은 것은 서스펜스가 아닌 말초적 자극밖에는 주지 못한다. 그에게 범죄의 동기라는 것은 아예 없거나 일차원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조이스 캐럴 오츠나 김영하처럼 이런 소재를 세련되게 풀어낸 작가도 물론 있지만, 사건이 플롯을 주도하는 스릴러 장르에 와서는 이런 인물들이 그리 매력적이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그냥 정신 나간 사람이 한날 미쳐서 벌인 사건이라면 이야기의 개연성은 작아지고 상상의 통로는 좁아질 것이 뻔하다. 흡사 좀비 영화처럼 좀비는 쫓고 사람들은 쫓길 뿐이다.
스릴러 소설을 긴장감있게 만들어 주는 요소는 무엇보다 개연성인데, 그 개연성은 대체로 동기에서 나온다. 그럴 법한 동기가 있고 그럴 법한 사건이 일어날 때 독자는 이야기에 쉽게 몰입한다. 사소한 계기로 평범한 일상이 돌연히 끔찍한 지옥으로 바뀌는 과정이 비약없이 서술되고 있을 때 우리 삶에서 비극같은 낯선 경험이 멀리 있지 않음을 깨닫고 마는 것이다. 스콧 스미스의 처녀작 <심플 플랜>은 바로 그런 소설이다. 평범한 일상에 끼어든 사소한 사건이 점차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되어가는 과정이 매순간 납득할 수 있게 그려진다. 순간 순간을 수긍하면서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문득 너무 멀리 와 있는 인물의 처지에 맞딱뜨린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하고 생각하는 사이 소설은 더 이상 동떨어진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게 된다.
이야기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정확히 평균 언저리의 삶을 사는 주인공이 어느 날 거액의 현금을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현장에는 그의 형과 형의 친구가 함께 있었다.스콧 스미스의 놀라운 재능이 발견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돈을 발견한 인물이 한 명이었거나 두 명이었다면 갈등이 고조되는 치밀한 심리적 정황을 설정하는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세 명이라는 숫자는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성과 사회적 입지의 차이, 미묘한 심리적 거리감을 부각시키게 되고, 이로 인해 불안감은 증폭되며 단조로운 플롯은 순식간에 숨막히는 스릴러로 돌변한다. 두 명의 인물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의심과 경계 사이에 한 명이 더 개입함으로써 인물들은 게임처럼 복잡한 선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세 사람의 갈등이 고조되는 시점이 터닝포인트가 되어 평범한 주인공은 평범한 삶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만다.
소설에서 범죄의 가해자가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피해자들은 또한 희생되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원한과 보복, 이해관계가 얽혀 범죄의 희생양이 된 것이 아니라 우연히 그 곳에 있었다는 이유로 희생된다. 가령 파티에 필요한 샴페인을 사는 일을 포기하지 못해 닫힌 가게 문을 두드린다던가 하는 시시한 이유로 말이다. 범인은 사이코패스나 악당이 아닌데도 일은 벌어진다. 초현실적이거나 파괴적인 힘에 의한 공포는 허구성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고 있어 자극적일지언정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진정한 공포는 선과 악의 경계가 허물어졌을 때 찾아온다. 상황에 굴복하지 않는 완전 무결한 인간은 잘 없기 때문이다.
스콧 스미스의 장기는 발군의 심리묘사에 있다. 사건은 이미 벌어졌고 결론은 나 있다. 추적할 범인도 해결해야 할 미스터리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작가는 오로지 상황의 변화에 따른 인물의 심리 변화만을 좇는다. 마치 <죄와 벌>의 살인에서 시작된 도입부와 자수로 끝나는 대단원 사이에 자리잡은 장황한 갈등과 번민을 읽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인물의 일탈적인 행동과는 별개로 그들의 심리상태는 인간 본성의 적나라한 모습을 더없이 리얼하게 비추고 있기 때문이다.
스콧 스미스는 지금까지 단 두편의 소설-한 편의 범죄 소설과, 한 편의 공포 소설-만을 발표했다. 두 작품 모두 서스펜스의 극대화라는 뚜렷한 장르적 문법을 따르고 있지만 그 서스펜스의 중심에는 늘 인간이 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상황 안에 인간을 던져 놓고 그들을 관찰한다. 최초의 상황 외에는 아무런 작위적인 개입이 없다. 따라서 인간의 행위는 겉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치닫지만 그 과정은 조금도 비약적이지 않다. 스콧 스미스가 스릴러라는 장르 안에서 인간에 대한 실험을 계속 하는 한 품격있는 페이지터너로서의 명성은 유지될 것이다. 그의 완벽주의로 인해 기다리는 팬들은 속이 탈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