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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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개의 후각은 인간보다 약 1억 배쯤 더 민감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 감각의 어마어마한 차이는 개와 인간이 받아들이는 세계의 모습이 실제로는 엄청나게 다를 것임을 시사한다. 이런 차이는 동일한 개체 안에서도 당연하게 존재한다. 우리를 둘러싼 우주는 본질적으로 동일하지만 그것을 경험하는 주체에 따라 세계는 무수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는 놀라운 사실이 아님에도 이것을 확인 하는 일은 매번 놀랍다. 기발한 이야기를 만날 때 그 이야기가 탄생한 세계가 얼마나 다양하고 변화무쌍할지를 상상하면 당연히 작가의 삶이 궁금해진다. 소설가는 과연 자동차가 하늘을 날고 동물들이 말을 하는 경이로운 세계에서 온 것인가. 김연수의 대답은 이렇다. 자기 바깥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소설가의 일이라고. 


<소설가의 일>은 아주 기발한 산문집이다. 표면적으로는 소설 쓰기의 실전적 비법 정도로 읽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아니다. 소설의 본질을 집요하게 파고들지만 루카치의 영역을 넘보는 것도 아니고, 소설 쓰기의 과정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지만 시중에 넘쳐나는 매뉴얼같은 실용서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소설 작법에 대해 단순하고 기계적인 방식으로 설명해 놓은 책이라면 얼마든지 있는데 그 대상이 소설인 이상 이런 지시적인 방식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시험 공부할 때나 볼 법한 책을 소설 쓰기의 지침으로 삼는다면 세상에 소설 읽는 재미란 깡그리 사라지고 말 것이다.


<소설가의 일>은 소설 쓰기의 지침이라는 목표에 문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소설가의 마음 자세에서부터 플롯, 캐릭터, 문장, 시점에 이르기까지 소설가로서 느낀 바를 한 편의 에세이처럼 기록했다. 작가가 이야기하는 모든 제재는 다양한 삶의 경험에서 취하고 있어서 보다 실재적이고 이해하기 쉽다. 무엇보다 그 사소한 삶의 경험이 소설의 원리로 바뀌어가는 명쾌한 과정이 글맛을 더해준다. 이런 저런 경험에서 취합해 마구잡이로 늘어 놓은 것 같은 사설들이 일정한 결론을 향해 수렴되는 것을 확인하는 쾌감. 김연수의 다른 산문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작가의 특징이 이 책에서도 변함없이 나타난다. 이런 특징 덕에 책을 읽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이 이토록 많은 추상적인 개념들의 메타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소설가의 일>은 사람의 마음, 이를테면 사랑의 감정이나 욕망, 좌절 같은 것을 심리학서보다 더 예리하게 포착한다. 등장인물과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현실의 사랑과 다르지 않고 인물의 성장 과정은 현실의 그것처럼 역동적이어야 한다는 식의 뻔하지만 깨닫기 힘든 진리들을 다양한 경험적 보조관념을 통해 알기 쉽게 이야기해주기 때문이다. 경험이 깨달음으로 전환되는 과정에는 수많은 역설적 진리들이 자리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한다'라든지 '위대한 소설가는 실패작만 쓴다'같은 위트 있고 절묘한 깨달음들이 글마다 넘쳐난다. <소설가의 일>은 이런 식으로 삶이 어떻게 소설이 되는가에 대한 문제를 거듭 파고든다. 그래서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삶의 이야기에 더 가깝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 책은 같은 세계를 경험해도 그것을 감각해서 받아들이는 데 있어 개인차는 엄청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김연수가 가진 '소설가의 시선'을 확인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별 수 없이 그가 소설가일 수밖에 없음을 수긍하게 된다.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는 시선의 차이가 이토록 다르다면 소설을 써야지 달리 무엇을 하겠는가. 김연수는 결국 이 책에서 소설 쓰기의 과정을 말로써가 아니라 몸소 시범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 쓰기의 지침으로 이런저런 말들이 전해지고 있지만, 삶을 섬세하게 감각하는 것 이상 필요한 것은 없다는 것을 그는 보여준다. 말하자면 소설가의 일이란 개의 후각만큼 예민하게 이 세상을 감각하는 것, 그래서 소설가는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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