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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으로 가는 이주의 계절 ㅣ 아시아 문학선 6
타예브 살리흐 지음, 이상숙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4년 7월
평점 :
문화와 문화가 만나는 경험은 종종 타자성을 부각시키는 형태로 드러난다. 특히 문학 속에 드러난 문화충돌의 양상은 많은 경우 선진문화가 후진문화를 잠식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는 문화적 파급력의 한계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아무리 탈식민 담론을 펼친다고 해도 주류의 언어가 이른바 주류의 문화를 실어나르는 구조 속에서는 이 논의도 설 자리를 잃어버리는 법이다. 타예브 살리흐가 제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키플링보다 더 많이 읽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반대로 존 쿳시는 제3세계 출신의 작가임에도 주류의 언어권에 속해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이 없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소위 제3세계 문학으로 분류되는 비주류 언어권 소설이 담고 있는 생각들은 그들 언어만큼이나 생소해서 인류의 역사 속에서 늘 타자로 남아 있게 마련이다. 목소리를 내도 목소리를 전달할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언어적 한계를 극복하고 세상에 나온 희귀한 작품을 만나는 일은 단순히 생소한 문화적 경험을 제공할 뿐 아니라 사고 패러다임의 변화마저 가져다 준다. 아프리카 수단 출신의 작가 타예브 살리흐가 아랍어로 쓴 소설 <북으로 가는 이주의 계절>은 아프리카의 문화가 영국으로 대표되는 선진 문화와 충돌하는 경험을 그들의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러한 시선의 역전은 당연히 신비와 환상, 비합리와 미개로 정의되는 오리엔탈리즘을 탈피하려는 시도로 나타난다.
주인공인 무스타파 사이드와 그의 관찰자이자 서술자가 된 '나'는 모두 수단 출신의 흑인으로서 서구의 근대 문물을 경험하고 서구의 학문을 습득한 엘리트다. 아직 서구적 정의로서의 근대화의 길을 걷지 못한 사회에서 이들의 존재 역할은 분명하다. 이들에게 근대 문화를 전파하고 이들을 오랜 부패와 악습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시혜자로서의 역할이 그것이다. 소설의 화자인 '나'는 그 역할을 당연하게 수용한다. 그러나 무스타파 사이드의 행보는 '나'와 다르다. 그는 서구 문화를 습득한 지식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려 하며 마을의 일원으로서 그들과도 자연스럽게 융화되지 못하는 상태다. 소설은 '나'를 앞세워 무스타파 사이드의 정체성 해명에 나선다.
뛰어난 지성으로 유럽사회의 주류에 속하게 된 무스타파 사이드는 유럽 사회에서 그가 가진 태생적인 타자성을 전복시키기 위해 전위적인 행위를 감행한다. 바로 백인 여성들을 유혹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다. 식민지적 침탈에 비유되는 그의 여성편력은 침략과 강제라는 측면에서 제국주의가 맛보았을 통쾌함을 어느 정도 흉내내고 있다. 서구의 야만성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그들이 행했던 야만적 행태를 번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종의 복수라 할 수 있는 그의 이러한 행위는 그에게 통쾌함을 주기보다 오히려 환부를 더 쓰리게 할 뿐이다. 무스타파가 서구 사회에서 행한 혹은 겪은 일련의 일들은 결국 제국주의가 행한 약탈이 물질적인 측면 뿐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에도 큰 상처를 남겼음을 보여준다.
아이러니한 것은 상처를 안고 고국으로 돌아온 무스타파에게 제국주의의 환영은 아픔인 동시에 떨쳐낼 수 없는 거대한 동경의 세계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고국의 시혜자도 제국주의의 정복자도 될 수 없었던 그는 고국의 생명력을 껴안은 채 문명의 유산들을 깊숙이 감추어 놓게 된다. 그는 성적 에너지로 상징되는 고국의 생명력을 지닌 웃드 라이스에게 깊은 관심을 보임으로써 흑인의 성적 신화를 일부 긍정하는가 하면, 서구적 문명에 깊이 접촉해온 '나'를 가족의 후견인으로 내세움으로써 서구적 합리성에 대한 동경을 드러낸다. 이렇게 무스타파는 정체성의 혼돈을 가져오는 사상적 불구가 되어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몰게 되는 것이다.
무스타파 사이드가 가진 이 입체성으로 인해 타자성을 전복시키려는 대담한 작가의 시도는 도식적인 결말을 맞지 않을 수 있게 된다. '검은 백인'이라는 기형의 상태는 강자의 침탈이 약자에게 미치는 상처를 복합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북으로 가는 이주의 계절>이 내세운 탈식민지적 담론은 그 사상적 토대를 넘어 인간의 복잡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정치적인 담론을 걷어내고 인간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제3세계 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