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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아이들 1 (양장)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9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역사책은 일제시대 독립투사들이 일제에 대항해 펼친 독립 활동의 세부적인 사실을 알려주지만,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문학 작품은 역사 속의 구체적 개인이 흘렸던 피와 눈물, 울분과 갈등의 구체적인 모습을 그려낸다. 단 몇 줄의 단정적인 서술로 정리하기에 인간의 삶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삶을 여러 각도에서 비추어 보일 수 있는 문학은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뛰어나고 효과적인 방식이 될 수 있다. 문학은 현실을 르포르타주보다 더 실감나게 보여주고, 역사를 역사책보다 더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세계와 동떨어진 시간과 장소의 여러 배경을 이해하는 데 문학보다 효과적인 것은 없다. 제3세계의 역사, 사상, 가치관 같은 것은 신문기사 따위의 논픽션으로 이해되기에는 지나치게 생소한 이야기다. 살만 루슈디의 <한밤의 아이들>은 한 사회의 총체를 담아내는 데 뛰어난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한밤의 아이들>을 한 개인의 삶 속에 신생독립국으로서의 인도 사회의 전체를 담아낸다.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살람 시나이라는 한 개인의 인생을 훝고 있다. 그 파란만장한 개인의 삶 속에서 독자는 종교, 문화, 정치, 경제 등 신생독립국으로서의 인도 사회의 총체를 읽어낼 수 있다. 작가는 아담 아지즈와 뱃사공 타이의 갈등을 통해 근대와 전통의 갈등을 보여주고, 무슬림인 아흐메드 시나이와 반무슬림 집단 라바나 패거리들을 통해 종교와 정치적 견해 차이가 빚어낸 갈등을 보여준다. 이 밖에도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 인도의 비상사태 선포 등 사회적 현안들을 살림의 삶 속에 스스럼 없이 투영하고 있어 신생 독립국 인도의 사회상을 들여다보는 데 부족함이 없다.
<한밤의 아이들>은 주인공 살림의 개인적 연대기에 배경으로서 인도의 모습을 비춰줄 뿐 아니라, 한 개인의 운명을 역사의 메타포로 활용하는 재기를 보여준다. 인도가 독립하는 날 자정에 맞추어 태어난 선택받은 한밤의 아이들은 결국 조국과 운명을 같이 하도록 정해져 버렸다. 그러나 소설의 도입부에 이미 밝혀지고 있는 바와 같이, 살림에게 닥친 온몸의 균열은 순탄치 못한 조국의 역사를 극적으로 내비친다. 이러한 우회하는 접근법은 역사의 구체적인 복원을 가능케 할 뿐더러, 가치화 판단의 가능성까지 열어 두고 있어 한 사회를 이해하기에 더 없이 효과적이다.
인도 사회의 총체적 반영이라는 점에서 뿐 아니라 그치지 않는 분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이야기의 성찬이라는 점에서 <한밤의 아이들>은 소설이 갖추어야 할 또 다른 미덕을 져버리지 않는다. 근대화에 젖은 아담 아지즈와 전통으로 휘감긴 나심의 부조화스러운 결혼생활을 시작으로 이야기는 쉴새 없이 흘러나온다. 주인공 살림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이야기는 이미 정신 없이 흐른다. 아흐메드 시나이와 아미나 시나이가 봄베이의 메솔드 단지에 정착하기까지 장황하게 읊어댄 가족의 역사는 주인공 살림의 내력을 정의하기 위한 기나긴 서두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인공 살림의 탄생은 엉뚱하게도 매솔드의 거짓 가르마란 작은 에피소드와 닿아 있다. 이처럼 이야기는 순리대로 흘러가는 듯하다가도 돌연 방향을 틀고 그러는 중에도 쉴새 없이 이어진다. 이 쉴새 없는 수다는 강렬한 반전과 숱한 암시들로 절묘하게 짜맞추어져 있어 소홀히 보아 넘길 부분이 조금도 없다. 작가는 한 인물의 두서없는 넋두리와 같은 이야기를 숨 쉴틈 없이 늘어놓으며 적절한 때를 보아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천일야화에 비견될 만큼 쉴새 없이 쏟아지는 이야기 속에 담아낸 인도는 환상성이라는 문학적 장치로 무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명하고 구체적이다. 구체적이라는 것은 단순히 생생하고 이해하기 쉬운 설명의 방식을 뜻하지는 않는다. 현실반영과 문학적 상상의 양측면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현실의 삶을 얼마나 적실하게 형상화했느냐의 문제이다. <한밤의 아이들>은 그 주제의식에서 뿐만 아니라 내용과 그 형상화 방식에 이르기까지 소설에서 기대하는 여러가지 재미를 골고루 갖춘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