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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부터 행복해질 것이다 - 타이완 희망 여행기
이지상 지음 / 좋은생각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화려하고 굉장하다는 수식어가 붙는 것들은 인상적인 기억을 남기지만 마음을 끌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다. 여행지도 마찬가지여서 객관적인 기준과 별개로 마음이 끌리는 장소가 있다. 사람이 친절하다든가, 음식이 맛있다든가, 기후가 좋다든가 하는 것이 그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돌담에 낀 이끼 때문에, 우연히 들른 건물 창으로 쏟아지는 햇볕 때문에 그 장소가 좋아지기도 한다. 수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십수 권의 여행기를 펴낸 베테랑 여행작가 이지상은 타이완이 그런 여행지라고 말한다. 타이완 여행기 <나는 지금부터 행복해질 것이다>에서 작가는 타이완에 대한 애정을 마음껏 드러낸다.
<나는 지금부터 행복해질 것이다>는 2010년 타이완을 여섯 번째로 여행한 작가의 여행 기록이자 위로의 에세이다. 작가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절실한 위로가 필요할 때, 첫 여행지이자 첫사랑같은 여행지인 타이완으로 떠난다. 20여년 전 인생의 황금기였던 시절에 우연히 여행했던 타이완이라는 나라는 오랫동안 근원 모를 그리움으로 남아 지친 여행자에게 손짓한다. 그렇게 떠난 여행지에서 첫 여행의 여정을 더듬으며 때로는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기억 속의 추억과 다른 모습에 때로는 실망하기도 한다. 후끈한 열기와 한자 간판들, 거리를 꽉 채운 스쿠터의 행렬과 같은 낯익은 풍경은 현재와 과거를 대면시키고 지친 현재를 쓰다듬고 위안한다. 절절한 사모곡과 무심히 흘러가는 평화로운 삶들이 교차되며 삶과 행복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시작된다.
타이완은 우리나라와는 단교로 인한 오랜 외교 갈등을 빚고 있지만 최근 들어 대중문화의 활발한 교류로 인해 점차 여행지로서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나라이다. 타이완에는 웅장한 자연경관도 이렇다할 문화유산도 없다. 그나마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다는 빌딩 타이베이101,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로 꼽히는 고궁박물관,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으로 각광받는 여행지 주펀 정도가 조금 알려져 있을 뿐이다. 타이베이를 벗어나면 아리산이나 화롄 정도가 여행자의 발걸음을 이끈다. 이처럼 둘러보는 데 결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은 타이완이라는 작은 나라를 작가는 느긋하게 여행한다. 정해진 여정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천천히 걷고 보고 즐긴다. 타이베이, 화롄, 아리산, 예류 등 알려진 여행지를 둘러보며 그 익숙함에 추억에 젖기도 하지만, 때로는 현지인들에게도 낯선 구석진 장소를 찾아 가기도 한다. 특히 타이완의 최북단 마쭈 열도와 같은 생소한 여행지는 타이완이 아닌 세상에 없는 어떤 장소를 여행하는 것 같은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작가는 마쭈 열도를 여행하면서 햇볕을 쬐고 느리게 걷고 휴식한다. 그 과정에서 얻게 되는 사소한 깨달음은 지친 발걸음을 위로하는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가 된다.
책에서 타이완은 '왠지 모르게 편하고 좋'은 곳으로 묘사된다.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놀라운 광경이 기다리고 있지는 않지만 그 곳에는 진짜 삶이 있고 편안한 휴식이 있다. 작가는 이안 감독의 영화 <음식남녀>가 전하는 메시지처럼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것에서 삶의 본질을 찾는다. 그리고 타이완이라는 나라는 그 삶의 본질에 가장 충실한 여행지라고 결론짓는다. 야시장의 다양하고 푸짐한 먹을 거리들, 지친 몸을 달래는 온천들, 빠듯한 관광일정으로 바삐 움직이며 안달할 필요없는 나라가 작가가 본 타이완이다. 작가는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 틈에서 익명의 자유를 느끼면서, 때로는 낯선 언어와 풍경 속에서 이국의 정취를 느끼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나는 지금부터 행복해질 것이다>는 타이완 여행의 일반적인 코스들을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한편으로 여행 고수다운 이색적인 여행지들을 소개하면서 다양한 즐거움을 준다. 개인의 경험에 따른 소회를 여행지에 의탁해 털어 놓는가 하면, 타이완이라는 나라가 불러 일으키는 흥미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대중문화를 여행지와 연계해 소개하기도 한다. 내면의 치유와 보편적 공감 사이를 적절히 오고가는 이 여행기는 결국 타이완이라는 여행지가 지닌 매력으로 독자를 이끈다. 지친 삶에서 휴식이 필요할 때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다독여줄 수 있는 그런 여행지가 바로 타이완이라고 작가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