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토장이의 딸 - 상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박현주 옮김 / 아고라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조이스 캐럴 오츠의 소설은 새삼스럽지만 매번 소설 읽는 재미가 어떤 것인지 일깨워 준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소설이 갖추어야 할 모든 것이 작품 안에 녹아 있다. 독창적인 기법이나 노골적인 정치성향을 드러내지는 않지만 소설적 재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래서 조이스 캐럴 오츠의 장편들은 어마어마한 분량으로 압도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술 잘 읽힌다. 스케일이 큰 그의 서사는 독창성과 상상력에 의존하기보다 철저하게 사실성에 기반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인물의 운명을 보다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데 성공하고 있다. 특히 그는 여성의 운명에 지나치게 가혹하다.  

조이스 캐럴 오츠의 2007년 작 <사토장이의 딸>은 전체 3부의 구성 안에 한 여성의 삶을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부에서는 폭력과 광기를 견디는 모습을, 2부에서는 과거로부터 벗어나려는 치열한 도피의 과정을, 3부에서는 지난 운명에 대한 성찰과 정체성의 문제에 기반한 대단원을 그려낸다. 이 3부를 관통하는 서사에는 이방인으로서, 하층민으로서 혹은 여성으로서 부당한 억압에 맞서 주어진 삶을 오롯이 살아내고자 했던 주인공의 치열한 운명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야생의 세계에서 자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몸 담아야 했던 시공간을 '동물의 세계'로 비유한 제이콥 슈워트의 말은 제법 그럴싸하다. 그 자신이 역사적 피해자이지만 부당한 권력 구조에 의해 오히려 멸시받아야만 했던 제이콥에게 신세계는 무자비한 싸움이 난무하는 야생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쥐에게 내장을 갉아 먹히는 고통을 묵묵히 참아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제이콥은 자신의 삶을 방기하고 죽은 자를 위한 무덤을 팔 뿐이다. 그러나 무자비한 '동물의 세계'에서는 그 자신 또한 동물과 다를 바 없다. 자신의 지성이 소용되지 않는 곳에서 증오 하나로 영혼을 온통 소진한 제이콥에게 유일하게 군림할 수 있는 대상은 가족이다. 그의 증오는 가족을 향하게 되고, 자신이 피해 온 폭력의 세계를 그 스스로 재현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그의 아내는 생과의 타협을 거부한 채 스스로 고립되기를 원하고, 자식들은 그의 증오를 이어받아 또 다른 폭력의 세계로 내던져진다. 이들 가족이 거주지인 무덤에 둘러싸인 작은 돌오두막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무덤이다. 제이콥과 그의 아내는 이 오두막 속에 영원히 매장됨으로써 "동물의 세계에서 약자들은 금방 죽음을 당한다"는 논리를 증명해 보인 반면, 그들의 세 자식들은 무덤 속을 탈출함으로써 생을 증명한다. 이 소설은 오두막을 떠난 세 자식들 중 유일한 여자였던 레베카 슈워트의 삶을 좇아간다. 이른바 '동물의 세계'에서 '약자'로서 어떻게든 살아 남고자 했던 한 여성의 이야기다.  

동물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약점을 노출해서는 안 된다. 레베카 슈워트는 천대받는 자신의 뿌리와, 살인과 광기로 얼룩진 과거를 감추기 위해 새로운 운명을 찾아 나선다. 헤이젤 존스로 명명되며 과거로부터 달아나려는 레베카의 삶이 그려지면서부터 소설은 약자로서의 여성의 문제를 부각시킨다. 기나긴 도피의 여정에서 헤이젤이 만나게 되는 구원자들은 그녀의 여성성을 담보로 했을 때에만 그녀를 구원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완전한 구원자가 될 수 없다. 특히 '남자는 같이 살기 전에는 친절'하다고 믿고 있는 헤이젤에게 남자의 존재는 야생의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한 방어 수단 이상으로 생각할 수 없다. 때문에 진정한 사랑과 행복의 실마리를 발견했을 때에도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재의 헤이젤의 운명은 과거의 레베카에 의해 끊임 없이 영향받는다. 결국 헤이젤은 자신의 과거와 참된 정체성을 긍정하기 전 까지는 어떤 행복도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될 수 없음을 이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현재의 운명에 맞서기 보다 새로운 운명을 만들어 나가는 식으로 운명에 대항하려 했던 레베카(혹은 헤이젤)는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회피해 왔던 자신의 정체성에 제대로 직면하는 계기를 맞는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동물의 세계에서 약자로서 살아 남은 사촌과의 서신 교환을 통해 레베카는 자신의 과거와 당당히 마주한다. 따지고 보면 오빠 거스와의 잠깐 동안의 해후 이후에 이미 헤이젤 내부의 레베카는 제자리를 찾고자 하는 열망을 계속 드러낸다. 거스가 헤이젤에게 말을 걸어 왔을 때의 장면은 소설 첫 부분의 낯선 남자가 레이첼에게 말을 걸어오는 장면을 오버랩시킨다. 진실 때문에 부정했던 처음의 낯선 남자와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부정해야 했던 거스의 경우를 대칭적으로 대비시키면서 한 여자의 두 가지 삶을 하나의 선상에 놓고 보여준다. 한 여자의 전혀 다른 두 개의 삶을 통해 끊임 없이 보여지는 문제는 결국 정체성의 문제이다. '그녀가 사토장이 딸이 아니었던 때는 단 한번도 없었다.' 헤이젤 존스의 이름을 빌려 쓰고 있는 순간 조차도 이것은 진실일 수밖에 없다. 유대인으로서 사토장이 딸로서의 정체성은 본질적으로 변하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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