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의 축제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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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는 201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후에 자신의 정치성향이 아니라 문학작품 때문에 수상자로 선정되었기를 바란다는 소감을 밝힌 바 있다. 문학이 사회에 어떤 식으로든 공헌해야 한다는 주장은 문학의 자족성을 내세우는 순수문학과 오랜 갈등을 겪어 왔지만, 순수와 참여 두 개의 축이 결코 공존할 수 없는 차원의 것이 아닌 이상 각각의 주장은 상호배타적일 필요가 없다. 작가는 사회에 대한 일정한 기여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쓸 수 있으며, 사회는 소재 차원에서 훌륭한 문학작품을 위해 기여할 수 있다. 요사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자신의 문학과 정치성의 긴밀성을 역설적으로 밝힌 셈인데, <염소의 축제>는 소재로서의 사회 참여와 표현으로서의 유려한 완결성을 절묘하게 아우르며 그의 문학 세계를 훌륭히 집대성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 작품은 구조의 세밀함에 있어서 상당한 집중력을 요구하지만 이야기의 본질에 닿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지구 속 어딘가에서 행해져 왔고 행해지고 있는 인류의 뿌리 깊은 악습인 독재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30여년 동안 군림하며 도미니카의 근대사를 폭력과 억압으로 물들여 놓은 독재자 트루히요를 되살려 낸다. 그러나 작가는 위대한 독재자의 업적을 일대기식으로 재구성한다거나 억압의 시대를 견디고 투쟁하는 사람들에 대한 노골적인 옹호를 내비치는 식의 편한 방식을 택하지 않는다. 대신 복합적이고 다양한 관점으로 독재자의 삶을 재구성함과 동시에 그 시선을 개인의 삶으로 돌려 독재의 과거와 미래를 뭉뚱그려 보여준다. 소설은 독재자의 말년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며, 독재자가 한 개인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침투해 가는지를 긴 호흡으로 그려내고 있다.  

트루히요라는 신화적 인물을 중심으로 세 개의 시공간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독재가 종식된 고향에 35년 만에 발을 들여 놓는 여인 우라니아의 시선은 다음 장에서 절대 권력으로 모든 이의 위에 군림하는 독재자 트루히요의 말년으로 옮겨 간다. 뒤이어 이야기는 네 명의 암살자들이 거사를 도모하는 역사적인 날 밤으로 이동한다. 이 세 개의 장면은 트루히요에 대한 언급을 제외하고는 별개의 이야기인 것처럼 동떨어져 있지만, 소설이 진행될수록 사건과 사건이 맞물려가며 교묘하게 하나의 서사 속으로 수렴된다.  

서사에 긴장감을 불어 넣어 주는 핵심적인 장면은 네 명의 암살자들이 지키는 운명의 밤으로부터 시작된다. 트루히요의 출현을 기다리는 긴 시간 동안 암살자들은 각자의 삶에 침투한 트루히요라는 위대한 권력자의 모습을 회상한다. 트루히요를 둘러싼 개개인의 분노는 인물에서 인물로 옮겨가면서 트루히요가 행한 악행이 개개인의 삶 속에 얼마나 깊이 침투해 있는지를 확인시켜준다.  실종, 살해, 고문과 같은 비인도적인 보복 앞에서 굴종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삶은 치욕으로 일관된다. 그러나 뜻밖에도 이들 모두는 독재정권의 혜택을 충분히 입은 트루히요의 측근인 것으로 밝혀진다. 반정부 세력 뿐 아니라 트루히요의 신봉자들에게조차 해당되는 은밀한 정신적인 가학은 무소불위의 권력자의 면모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연인의 동생을 죽이게 한다든가, 측근들의 부인들을 공공연하게 범한다든가, 가족의 부당한 죽음이나 불행 앞에 분노조차 드러내 보일 수 없도록 심리적인 고통을 가하는 지독한 새디스트로 그려지는 이 독재자는 한편으로 뛰어난 정치 감각과 장악력으로 자신만의 신화를 완성한다.  

소설의 중반에 플래시백이 멈추며 트루히요의 출현이 임박해옴을 알리며 긴장이 고조된다. 트루히요라는 신화가 종식되는 장면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지만 본격적인 이야기는 트루히요가 살해된 후에 펼쳐진다. 소설의 압권은 트루히요가 암살당하는 장면이라기 보다 푸포 로만 장군의 시선으로 그날 밤의 사건을 되새겨 보는 장면에서 찾을 수 있다. 트루히요 암살 작전이 성공 했음을 확신하면서도 알 수 없는 이유로 계획한 쿠데타를 실행하지 못하는 로만 장군의 모습은 답답하면서도 묘한 설득력을 갖는다. 순간의 망설임으로 인해 대사를 그르치는 과정을, 잡아내기 힘든 작은 동작이나 심리 상태를 통해 세세하게 묘사하면서 작가는 사소한 하나의 결정이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어떤 악의적인 계획이 없었음에도 마침내는 트루히요 측과 반란군 측의 비난을 동시에 떠안은 채로 비참하게 죽어가는 장군의 모습에서 그의 의식을 지배하던 절대적인 힘의 원천에 다시금 주목하게 된다. 푸포 로만 장군으로 하여금 스스로 무덤을 파게 했던 그 의문의 힘은 두려움이다. 트루히요 생전에 로만 장군을 지배했던 두려움은 트루히요가 죽은 뒤에도 죽지 않은 채로 그의 의식을 지배한다. 그 끈질긴 두려움이 훗날 훨씬 더 큰 공포를 가져올 때야 비로소 그 존재를 깨닫게 될 정도로, 그 두려움은 장군의 삶 속에 너무 깊숙이 침투해 있다.  

푸포 로만 장군의 일련의 행적들은 두려움이야말로 오랜 독재 체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원동력임을 말해준다. 군중을 굴종하게 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은 독재자와 그의 추종자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독재 체제를 수용하는 대다수의 국민들과 그들이 갖는 두려움이 그 체제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말년의 트루히요는 요실금으로 바지를 적시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정력의 쇠퇴에 울부짖는 쇠약해진 늙은이에 지나지 않지만 그가 만들어 놓은 신화, 즉 트루히요에 대한 두려움은 그가 죽은 직후에도 유령처럼 살아 남아 사람들을 굴복하게 만든다. 독재자가 죽어도 체제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것이 작가가 그려내고 있는 권력의 메카니즘이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것은 작가의 연민이 향하는 곳이 처절한 고문 속에서 죽어나간 암살자들보다 조용히 상처를 감내하며 살아야 했던 여성 우라니아라는 점이다. 트루히요로 대표되는 폭력성과 야만성의 극단에는 섬세하고 연약한 여성이 존재한다. 우라니아의 삶은 한 독재자가 개인의 인생에 미친 치명적인 영향을 보여주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독재자와 권력의 관계가 염소와 정력의 관계로 자연스레 치환될 수 있다면, 권력의 발밑에 신음하는 민중들이 존재하듯이 정력의 극단에는 그 힘에 의해 짓밟히는 연약한 여성이 필연적으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원치 않는 희생을 감내한 대가로 일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우라니아의 모습을 통해 권력에 짓밟히는 가장 나약한 존재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트루히요의 유령은 체제가 발빠르게 변화해 가는 순간에도 가장 나약한 존재에게 붙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의 대표작이라고는 하지만 온전히 정치소설만 읽힌다면 보편적인 공감을 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염소의 축제>는 지구상의 특정한 지역과 시대를 겨냥하고 있지만, 시공을 초월해 반복되어 온 독재 정권의 보편적 속성을 세밀하게 파헤치고 있어 범세계적인 공감을 이끌어낸다. 뿐만 아니라 독재라는 반인륜적 행태가 초래하는 본성의 억압이라는 근원적 문제 또한 심도 있게 다루고 있어, 인간 삶의 총체적인 문제를 포괄한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바람대로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결코 정치색에 기대고 있지 않음을 <염소의 축제>는 분명히 증명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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