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의 숲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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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팩트를 걷어낸 김훈의 소설은 처음이다. 단 몇 편의 역사소설만으로 한 작가를 특징지워버린다는 것은 그 소설들이 유독 깊을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마법같은 문장들은 오직 전아한 분위기를 드러내는 배경이 덧입혀졌을 때에만 살아숨쉬는 것이라 멋대로 생각해버린 탓도 크다. 그러나 잊혀진 유물을 복원하는 고고학자의 섬세한 손길처럼 유구한 세월 속에 잠들어 버린 인물들을 그 숨결조차 느낄만큼 가까운 곳으로 불러 들이는 힘이 비단 역사소설 속에서만 발휘되는 것이 아님을 <내 젊은 날의 숲>은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역사라는 팩트에 가두어져 있을 때와 달리 사유의 폭은 넓어지고, 감성의 흐름은 더욱 유연해지고 있음을 소설은 온 몸으로 증명한다.   

<내 젊은 날의 숲>은 인연이 남긴 흔적에 관한 이야기이다. 의도적으로 기억에서 유폐시킨 질긴 인연의 흔적을 떠남과 돌아옴이라는 여로형 구조에 맞추어 추적하는 이 소설은 그러나 모호한 이 사유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어 주지는 않는다. 혈관을 흐르는 강력한 인연의 끈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그 인연과의 강력한 접촉으로 확인되는 성질의 것이련만, 작가는 '남방 한계선에 잇닿은 민간인 통제 구역 안에 있는 수목원'이라는 외따로 존재하는 듯한 극한의 공간으로 인물을 몰아 넣으며 철저한 고립 속에서 인연을 탐구한다. 민통선 너머 자등령에 위치한 숲은 세상과는 고립된 곳으로 모든 것이 정지된 듯 고요한 상태로 그 곳에 존재한다. 한국 전쟁 당시의 격전지였던 치열함도 세월의 더께 아래로 감추어져 피아를 구별할 수 없는 백골의 형태로만 존재하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이 어슬렁거리다가 들르게 되는 한적한 수목원은 보존이라는 명목으로 민간으로부터 괴리되어 있다. 사람들이 떠나가는 그 곳으로 주인공은 떠나온다.  

인물의 떠나옴이 도피의 형태를 띠는 것은 홀로 고요한 그 장소의 성질 때문이다. 그러나 세밀화가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은 곧 숲이라는 전체에 가려져 있던 자연의 내밀한 속살을 세밀하게 들추어내기 시작한다. 햇살과 잎사귀가 끊임없이 교감하고, 부지런한 새가 분주하게 지저귀고, 빛의 많고 적음에 따라 숱한 색을 만들어 내는 숲의 풍경을 본다. 계절에 따라 분주하게 변해가는 숲의 모습은 인물의 감추어진 내면을 일깨운다. 숲이라는 전체가 이루어내는 항상성의 이면이 시시각각 변화하듯 가족의 연을 오랫동안 방치해 놓은 주인공의 내면도 그리 간단치가 않다. 가족의 짐을 떳떳하지 않은 방식으로 짊어지고자 했던 아버지로부터, 그런 아버지의 마음의 짐을 함께 지기를 거부하는 어머니로부터 떠나온 주인공은 외따로 떨어진 그 곳에서도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은 극사실화를 그리는 일을 업으로 하지만 정작 그 내면은 모호한 인물에게 있어 장구한 세월과도 잇닿아 있는 끈덕진 '종족의 운명'이 몇 차례의 죽음과 이별을 겪은 후에야 분명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주인공이 이 마을로 옮겨 오기 직전에 자살했다는 이옥영의 잔상은 외지인으로서 이질적으로 마을에 섞여 있던 주인공에게 끊임없이 상기된다. 그녀가 외지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또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고 있었다는 점에서 주인공은 이 비극적인 운명에 자신을 동일시한다. 숲 해설사 이나모의 죽음은 그를 먼발치에서 한번 보았다는 인연만으로도 이옥영의 죽음보다 더욱 밀접하게 주인공의 운명 안에 침투한다. 아무런 인연이 없는 자의 죽음을 문상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인연의 본질에 이전보다 좀 더 다가선 모습이다. 의도적인 동일시나 우연에 가까운 인연을 넘어서 마침내 찾아온 아버지의 최후 앞에서 주인공은 의외로 담담하다. 숲의 생멸에서 인간의 필연적인 운명을 체감한 덕분으로, 아버지의 유골을 산골하여 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주인공의 손길은 시종 담담하다.   

도피는 도피해 온 모든 것에 대한 긍정으로 치유된다. 가족을 타자로 인식하고 거리감을 유지하려던 화자는 아버지의 죽음 뒤 어머니의 통한의 눈물을 보며 그 역사를 따라 흘려 내려온 장구한 세월과 핏줄의 끈덕짐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게된다. 아버지의 부정한 돈들이 자신의 생애로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왔듯, 핏줄의 끈덕진 연이 그 자신의 삶을 깊숙한 곳으로부터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은 돌아감에 대한 망설임을 없애준다. 조부의 삶과 끈덕진 인연으로 이어져 있는 절름발이 말 '좆내논'이 아버지의 삶 주위를 떠돈다는 어머니의 하소연처럼 그 자신 또한 조부와 좆내논과 아버지의 삶 언저리를 떠돌 수밖에 없다는 혈연에 대한 강한 자각이 오히려 주인공을 자유롭게 해 준다. 숲을 떠나는 주인공과 숲에 남아 새들의 먹이가 된 아버지의 상반된 운명이란 것도 혈연의 끈질김을 통해 영원한 이별의 속성을 묻어버린다.  

감정을 분출하고 한없이 부대껴도 좋은 나이인 20대 여성 화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소설은 그럼에도 사치스럽게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다. 인물의 감정을 객관화해 자연물에 투사하여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여성의 내밀한 심리를 극사실화처럼 세밀하게 파헤치기 보다 숲과 자연에 대한 상징을 통해 그려낸다. 화자의 감정은 사시사철 변해가는 숲의 모습에, 죽거나 이별하거나 고뇌하는 주위 사람들의 모습에, 자신이 그리는 세밀화의 모습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감정의 억누름은 자칫 현학적 서술로 빠져들 우려가 있지만 김훈의 소설은 현학적이지 않다. 3인칭으로 지칭되는 철저히 객관화된 타자에 대해 시종 관찰자의 시선을 유지하는 서술자의 태도가 감정의 낭비를 방지한다. 김훈만이 지닐 수 있는 사유와 즉물적인 감각 사이의 균형감각이다. 본격적인 연애담은 진행되지도 않지만 그 어떤 연애소설보다 애틋하고, 절절한 가족 신파 없이도 더 애끓는 가족의 이야기가 있다.  

이렇듯 감정의 과잉도 서사의 과잉도 없지만 소설은 결코 가볍지 않다. 김훈의 문장은 구체적인 감각을 활용해서 느낄 수 있는 선명한 빛을 띠고 있지는 않지만 평소에는 인지되지 않는 또 다른 감각들이 세밀하게 되살아나는 경험을 하게 한다. 의미의 적확한 전달, 사유의 치밀한 묘사, 이미지의 생생한 재현, 도식적인 상징에 매몰되지 않는 영민함까지 두루 갖춘 잘 정제된 문장이 큰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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