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여행 - 다르게 시작하고픈 욕망
한지은 지음 / 청어람장서가(장서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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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만큼이나 내외적 변화로 혼돈스러운 시기가 있다면 '서른 즈음'일 것이다. 제도화된 교육 하에 천편일률적인 길을 걸어왔던 또래들이 비로소 각각의 다른 길을 향해 분산되어 가는 시기이며, 결혼과 자아 실현의 중대 과업 사이에서 조화와 공존의 길을 모색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모든 것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 비로소 나이에 대한 압박이 느껴질 때이므로 30이라는 숫자는 사람의 일생에서 여러모로 중요하다. 

<서른 여행>은 특별한 서른을 맞이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대한민국의 한 평범한 여성의 이야기다. 서른을 앞두고 있던 차에 반복되는 일상에서 삶의 의미마저 희미해져 갈 때, 작가는 용기있게 사표를 던진다. 이 충동적인 행동으로 행복의 가치를 깨닫게 되고 지금은 전혀 다른 삶을 살고있다는 작가는 8개월 간의 긴 여행 체험과 여행지에서의 단상과 깨달음을 조심스럽게 풀어 놓는다.

이 책은 '서른을 맞이하기 위한 여행'이라는 점에서 특별하지만 평범하고 친숙한 이야기에 가깝다.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여행하는 인도와 동남아라는 여행지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행지에서 겪는 일들도 대체로 누구나 겪을 법한 여행의 체험이다. 여행지가 독특하거나, 작가의 개성이 유난하다거나, 그도 아니면 책의 구성이 독특한 소위 '튀는' 여행기들 속에서 꽤 조신하게 섞여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런튀지 않음이 공감의 폭을 더 넓혀 준다. 

대부분의 여행기의 시작이 그렇듯 여행의 시작은 일상에 대한 환멸에서 시작된다.이는 일상에서의 도피로 이어지고 여행 중 겪는 갖은 사건 사고들은 삶에 대한 깨달음의 지침이 된다. 이는 지극히 상투적이지만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또 상당 부분 공감할 만한 것이다. 여행의 체험은 각기 다르지만 그 효용에 대해서는 누구나 수긍할 만큼의 보편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책은 주요 여정과 여행지에서의 핵심적인 체험의 서술에 치중하고 있다. 여행자에게 흔히 벌어지는 돌발적인 상황이라든지, 여행지에서 만났다 헤어지는 여러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지역과 지역을 이동하는 동안 일어났던 이야기들 중의 상당부분은 생략이 된 것 같아 아쉽다. 이를테면, 다르질링에 있던 작가가 다음 순간 바라나시로 이동해 있는데, 바라나시로의 이동을 결정하게 만든 고민의 과정들이 생략되어 있어 두 번째 찾은 바라나시에 대한 경험은 뜬금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읽다 보면 일행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데, 어떤 경로로 일행을 만나고 헤어지는지에 대한 설명은 완전히 생략되어 있어 여행의 체험이 추상적으로 느껴지기 쉽다. 한정된 지면에 개인적 체험과 보편적 체험 사이의 절절한 균형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이지만, 여행기의 생생함이 다소 줄어들어 아쉬운 감이 있다. 인도-네팔-태국-캄보디아-베트남-라오스로 이어지는 긴 여정을 고스란히 다 담기에 책 한 권은 부족하지 않을까.  

여행 에세이를 찾다보면 의외로 산문이 중심이 되는 진솔한 여행기가 많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메끈하게 잘 찍힌 사진과 책 자체의 비주얼에만 신경을 쓴 듯한 책들은 오히려 여행지의 생생함을 반감시킨다. 긴 여행에 비해 다소 짧은 내용이 아쉽지만, <서른 여행>은 최근 보기 드문 진지한 산문 여행 에세이라는 점에서 반가운 책이다. 서른 맞이 여행이라는 의미 부여는 중요하지 않다. 일상의 반복에 지친 한 젊은이의 용기 있는 결정에 대해 느끼는 대리만족으로도 책은 충분히 재미있다. 물론 시간과 돈과 열정이 최소한이나마 뒷받침 되었어야 가능했을 일이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누구나 꿈꿔봄직한 일에 대한 용기있는 실천이다. 그래서 이 책은 서른 즈음이라는 상황적 특수성이 아니라, 특별한 결정에 대한 동경과 부러움을 유발한다는 점에서도 잘 쓰여진 여행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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