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퍼 존스가 문제다
크레이그 실비 지음, 문세원 옮김 / 양철북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성장 소설 속의 어른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다. 좋은 영향을 미치거나, 나쁜 영향을 미치거나. 물론 이 도식적인 분류가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아이들의 세상에서 어른은 어떤 의미로든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1982년생인 오스트레일리아의 신진 작가 크레이그 실버가 쓴 성장소설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Jasper Jones)>에서도 실상 문제는 '어른들'이다. 이 책은 아이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어른들의 세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거부하는지를 그리며 성장해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1960년대 오스트레일리아의 작은 탄광 마을, 짧은 여름 동안 일어난 사건을 그리고 있다. 찰리, 재스퍼, 제프리, 일라이저 등 네 명의 소년 소녀에게 일어난 일들은 한 여름의 추억이 대개 그렇듯이 달콤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잔혹하다. 이야기는 찰리가 우연히 방문한 재스퍼를 따라가 재스퍼의 연인이었던 로라의 시체를 수장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른 찰리에게 그 여름은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다. 죽이 잘 맞는 친구인 제프리와 첫사랑 소녀 일라이저의 존재가 가져다 주는 위안도 일시적이다. 아이들은 로라를 죽이지 않았음에도 엄청난 공포와 죄책감에 시달린다.

이처럼 소설은 로라의 죽음을 맨 앞에 배치하면서 그 죽음에 대한 원인을 찾아 가는 추리적 기법을 따른다. 그러나 본질은 로라의 죽음과 범인을 밝혀나가는 미스테리에 있지 않다. 바로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작가의 다양한 문제의식, 거기에 있다. 아이들에게는 동경의 대상, 어른들에게는 문제아에 지나지 않은 재스퍼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지만 앞서 말했듯이 문제는 정작 재스퍼가 아닌 어른들이다. 다시 말해 소설은 아이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오히려 잔혹한 어른들의 세계를 더 집중적으로 내비춘다. 이기적인 어른들의 세계가 아이들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를 소설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호주의 뿌리 깊은 백호주의를 비롯해서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각종 편견들을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 그려낸다. 이기적인 어른의 세계가 만들어 낸 이런 상처들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견뎌내려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삶의 진실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재스퍼에 대한 편견은 어른들의 자기 중심적 사고를 극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소설 말미에 재스퍼가 사라진 사실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다가,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자 비로소 재스퍼의 존재에 대해 자각하는 마을사람들의 모습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장면을 통해 오래된 편견과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미성숙함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지고 있다. 어른들의 이러한 편견 어린 시선을 정확히 꿰뚫어 본 재스퍼의 통찰은 오히려 그가 결국은 자기만의 틀에 갇혀 있는 보수적인 어른들에 비해 훨씬 성숙해 있음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아이들도 어른의 편견어린 시선을 고스란히 따르는 듯하다. 잭 라이어넬에 대한 왜곡된 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자. 유년은 얼마나 영향받기 쉬운가. 그러나 아이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진실을 마주한다. 결코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어른들에 의해 영향받지만, 그것을 뛰어넘을 만큼 유연하게 사고한다. 찰리와 제프리의 끝없는 재담은 세계를 보는 아이들만의 독특한 사유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두 명의 친구는 사랑과 우정 미래와 꿈 등에 대해 끊임없이 늘어 놓는다. 이 재담을 따라가다 보면 삶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과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대한 무언의 빈정거림을 들을 수 있다.

이 소설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에 바치는 오마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데 어른들의 냉혹한 세계에 대한 고발이라는 주제면에서 <앵무새 죽이기>와 통할지 모르나, 대부분의 모티프는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 혹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빚지고 있는 느낌이다. 한 여름날 벌어지는 미스테리하고 동화 같은 모험이 미시시피 강을 배경으로 소년들 간의 우정과 낭만을 그린 위의 작품들과 유사한 분위기를 준다. 특히 재스퍼 존스는 허클베리 핀의 완벽한 화신으로 보인다. 작가 스스로도 작품 속에서 찰리 아버지의 입을 통해 마크 트웨인에 대한 찬사를 그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 영향관계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 소설은 결코 마크 트웨인의 낭만적인 동화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만신창이가 된 로라의 영혼과 육신은 구원할 길이 없는 채로 묻혀진다. 결국 성장통을 달래 주어야 할 어른의 부재가 이 소설을 더욱 신랄하고 냉혹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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