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생활백서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민음사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민음사 '오늘의 작가상'에 두번 내리 실망한 터라(<걸프렌즈>, <마이짝퉁라이프> - '오늘의 작가상'이란 타이틀과 나란히 놓이기엔 제목부터가 민망하다) '오늘의 작가상'은 거들떠 보지도 않게 됐는데, 단 두 작품으로 인해 주옥같은 작가들을 배출해 온 '오늘의 작가상'에 가혹한 비평을 가하는 건 공정치 못하다는 생각에 또 한 권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만난 2006년 수상작인 박주영의 <백수생활백서>는 마음을 돌리기는 커녕 '그 생각'에 확실히 쐐기를 박아 주었다.

<백수생활백서>는 소설의 가장 큰 본질인 '창조성'과 '이야기'가 완전히 실종된 소설이다. 팍팍한 인생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타이틀을 내걸고는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 없는 한 젊은 여성의 독서담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리하게 늘어 놓는다.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해 일을 할 수 없다는 '자발적 백수'인 주인공을 내세워, 작가 자신의 독서력을 끊임없이 과시하고 있다. (그래 너 책 많이 읽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주인공이자 화자인 젊은 여성의 입을 통해 '나는 책을 읽는 것이 좋다', '나는 영원히 책을 읽을 것이다' 식의 같은 말만 끊임 없이 되풀이하는 동안 이야기는 단 한발짝도 전진하지 못한다.

자신의 독서력을 자랑하면서도 자신의 취향이 너무나 확고해서 다른 취향은 이해하지도 못하겠다는 단호한 어조도 거북하다. 사실을 말하자면 주인공의 독서 취향은 나 자신의 취향과도 많이 닮았다. 그러나 공감은 커녕 그 오만한 독선에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릴 정도다. 타인의 취향을 너무 쉽게 깔아 뭉개는 저 단호한 어조는 얼마나 건방진가. 특히 '옷이나 사면서 행복해 하는 여자'라는 표현 따위로 책에 미쳐있지 않은 여타의 사람을 깎아내리려는 서술은 또 얼마나 오만한지. 책을 좋아하면서도 편협하지 않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자신의 삶이 만족스럽다는 장광설을 쏟아낸다. 책에 미쳐 사는 주인공의 특별한 척이 짜증나도록 지겹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으면서 아버지의 일을 도와주지도 않고 책만 읽어대는 여자의 지루하고 끝없는 자기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작가는 화자의 입을 통해 '기본이 되어 있지 않은 소설은 읽기가 힘들다'고 말하고 있다. 동시에 '책은 읽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고도 한다. 반복되는 주장은 일관성조차 잃고 있다. 또 모든 서술은 직설화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어떻다', '내 친구 유희는 어떻다', '나는 책만 있으면 된다' 등. 직설 화법에는 작가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개입되게 마련이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한 서술은 소설의 방식이 아니다. 문학의 기본은 '돌려 말하기'가 아니던가.  

<백수생활백서>에서 화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모두 책에서 나온다. 이야기가 실종된 빈 공간에 이 책 저 책에서 따온 인용들만 난무하다. 모든 사건이 어떤 다른 소설 속에서 나온 문장들로 정리가 된다. 작가는 창작의 수고로움을 포기한 대신 인용의 수고로움을 선택한 듯 보인다. 책 표지의 추천사에는 이를 두고 "그 자체로 불후의 도서관인 소설"이라고 칭하고 있다. 꿈보다 해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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