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럼독 밀리어네어 - Q & A
비카스 스와루프 지음, 강주헌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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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행운을 시샘해 본 적이 있는가. 혹은 누군가가 행운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비카스 스와루프의 소설 <Q&A>는 말한다. 행운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찾아 가는 사람의 몫이라는 것을.

어느 날 갑자기 십억 루피의 행운을 거머쥐게 된 주인공 람 모하마드 토마스는 그 행운의 대가로 엄청난 고초를 치르게 되고, 자신의 인생 역정을 풀어놓기 시작한다. 프랑스의 화폐 단위도 모를 정도로 일천한 지식을 가진 빈민촌의 고아 소년이 퀴즈쇼에 우승해서 거액의 상금을 손에 쥐게되기까지 과정 속에는 치열한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소설은 빈민가의 한 소년의 인생 역정과 박진감 넘치는 퀴즈쇼를 교차시켜 보여주며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 사건이 어떻게 맞물려 가는지를 챕터마다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각각의 챕터는 그 자체로 독자적인 이야기로 보이기도 하지만, 낱낱이 흩어진 이야기의 조각들을 퍼즐을 맞추듯이 제자리에 돌려 놓으면 람 모하마드 토마스의 인생을 관통한다.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더라면 단조로운 권선징악의 스토리에 지나지 않았을 지 모른다. 그러나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되는 가운데 각각의 장면을 해체시켜 재배열함으로써 역동적인 휴먼드라마로 탈바꿈한다. 비연속적으로 펼쳐지는 삶의 장면들은 오히려 더 큰 호기심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소설은 인도의 다양한 세태를 비추고 있다. 주인공 람은 고아원, 빈민촌 등을 떠돌며 하인이며 엉터리 관광가이드, 웨이터 같은 일로 연명을 하며 살아가는 동안 숱한 역경에 부딪힌다. 그가 거쳐가는 모든 길 위에는 인도의 암울한 사회상이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람 모하마드 토마스라는 이름이 상징하는 것처럼 다양한 문화가 혼재된 인도사회의 모습이 TV 다큐멘터리를 보듯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인도 하층민들의 고된 삶, 곳곳에서 자행되는 크고 작은 범죄의 굴레, 신분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 등.

람은 영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 자신의 지식 수준이야 누구보다 자기가 더 잘 알 것이고, 도망자의 신분으로 신분을 감추며 지내던 처지에 퀴즈쇼의 출연에 운명을 건다는 점이 다소 개연성을 떨어뜨리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인도는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고, 그 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게다가 결말에 이르러서는 람의 선택 자체에도 그럴싸한 이유가 부여된다.  

마지막 챕터를 남겨두고 이야기는 쉴새 없이 전복된다. 결말 부분에서는 행운이 얼마나 논리정연한 인과법칙에 따라 찾아오는지, 운명론에 침잠하고 있는 듯한 인물의 내면이 어떻게 전복되는지,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는 아직까지도 얼마나 통쾌하고 멋진지에 대해 작가는 쉴새 없이 증명한다. 그 와중에 우리는 뚜렷한 주제의 핵심에 도달한다. 행운은 과연 값싼 햄버거로 끼니를 때우고 남은 돈으로 사들인 로또복권이 우연히 당첨된 것처럼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일까. 이 소설은 행운조차도 인생의 세세한 결정들이 모여서 이루어 낸 산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삶의 고비고비마다 어떻게 헤쳐나갈지를 결정한 사람은 결국 람 모하마드 토마스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사족이지만 <Q&A>는 순전히 영화를 보기 위해 읽기 시작한 책이다. 이 소설이 영화의 인기를 등에 업고 보다 많은 인기를 끌게된 면이 없지 않으나, 소설이 주는 감동이 영화보다는 단연 한수 위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영화의 홍보 차원에서 소설이 <슬럼독 밀리어네어>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재출간되었다. 원작이 오히려 영화에 종속되는 느낌이 썩 좋아 보이진 않는다. 영화는 영화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일장일단이 있을 터인데, 좀 더 대중적이라는 이유로 한 매체가 다른 매체를 잠식해버리는 사태는 없어야 한다. 하나의 문학작품은 내용 뿐 아니라 그 제목까지도 치밀한 작가의 의도 하에 만들어진 완결된 하나의 유기체다. 단지 상업적인 술책으로 인해 작가의 의도를 손상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띠지 하나 감는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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