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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간의 파리지앵 놀이
생갱 지음 / 예담 / 2009년 6월
평점 :
파리를 다녀온 사람에게, 파리는 언제나 낭만과 감성이 넘치는 도시로 기억되기 마련이다. 나에게도 파리의 추억은 있다. 그러나 파리에 대한 기억은 외로움과 쓸쓸함, 을씨년스러움으로 뒤범벅된 기억이다. 계획을 수정하여 서둘러 귀국해야 했던 상황이었으며, 겨울이었고, 아팠고, 가난했기 때문일 것이다. 몽마르뜨 언덕에서 바라본 파리의 풍경은 회색으로 가라앉아 있었고, 샹젤리제 거리는 활기넘치기보다 각자의 일로 바쁜 파리지앵들이 종종걸음으로 스쳐가는 곳일 뿐이었다. 파리의 마지막 밤 샤이요궁에서 불켜진 에펠탑을 보면서 문득 주위가 어두워졌음을 느꼈을 때 엄습해오던 외로움이 파리에 대한 기억의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 보건대 그 때 느낀 외로움은 분명 밝은 날의 에펠탑을 다시 볼 수 없으리라는 아쉬움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아직도 파리에서의 즐거움을 꿈꾸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작가가 파리에서의 한 달 동안의 여정을 풀어놓은 <30일간의 파리지앵 놀이>는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파리의 모습이 가득 담겨있다. 세느강, 에스프레소, 바게뜨, 미술관, 카페, 벼룩시장 등 파리하면 떠올릴 수 있는 각종 이미지들이 컬러풀한 일러스트로 표현되어 있다. 풍성한 일러스트와 함께 담백한 글로 직접 느낀 파리의 매력을 속속들이 전하고 있어 절로 여행본능이 꿈틀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생갱은 파리를 떠올리는 영화와 음악을 들으면서 작성해온 리스트들을 하나하나 실천하며, 스스로 ’제대로 충전’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여행은 정말로 충전이다. 한 달 동안의 여행으로 일 년을 버틸 힘을 얻는다. 그런 여행이기에 가이드북의 추천리스트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 마음이 이끄는대로 자유롭게 즐기며 재충전을 하면 되는 것이다. 에펠탑, 몽마르트, 노트르담 사원, 라데팡스 등 파리 관광의 필수코스를 안내하는 책이라면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남대문과 한강을 보았다고 서울을 다 본 것이 아니듯이, 에펠탑을 보았다고 파리를 전부 안다고 말 할 수는 없다. 이런 유명 관광 포인트들은 파리의 일부일 뿐 파리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리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잠시라도 파리지앵(-앤느)이 되어보는 수밖에 없다. 이런 ’현지인 모드 여행’을 추구하는 저자의 여행스타일이 나와 꼭 맞아 더욱 공감이 간다.
<30일간의 파리지앵 놀이>는 여행 가이드북이 아니지만 파리 여행의 커다란 틀을 제시해 주고 있으며, 본격 에세이가 아니지만 체험과 느낌을 진솔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페이지 전체를 장식하고 있는 경쾌한 일러스트일 것이다. 사진만으로는 온전히 전달할 수 없는 파리에 대한 각종 이미지들이 일러스트를 통해 재해석되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거워지는 책이다. 파리 여행의 동반자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