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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세트 - 전3권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199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영상매체시대에 활자만 가지고 사람의 감정을 쥐락펴락 할 수 있다면 진정 뛰어난 소설이라할 수 있을 것이다. 영상매체, 음악, 미술 등에 비하여 문학은 독자들의 보다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필요로 한다. 때문에 진정으로 몰입할 수 있는 소설이란 재미있는 영화나 아름다운 음악보다도 더 발견하기 어렵고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모른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그런 소설이다.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글로 쓰여졌기에 더욱 특별한 그런 이야기이다. 책장 한 장을 넘기는 순간마다 가벼운 떨림이 느껴진다고 할까. 단조로운 서술 속에 환멸과 유머, 허무의 페이소스로 가득 차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거듭 혼란에 빠지지만, 그 혼란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 단숨에 마지막까지 읽게된다. 이 삼 부작의 독특한 서사구조는 그리하여 독자를 완벽히 장악한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은 <비밀노트>, <타인의 증거>, <50년 간의 고독> 세 편의 소설을 묶어서 일컫는 제목이다. 이는 역자에 의해 만들어진 제목이며, 삼 부작을 묶는 원제는 없다. 세 작품의 원제는 각각 '커다란 노트(Le Grand Cahier)', '증거(La preuve)', '세 번째 거짓말(Le Troisieme Mensonge)'이다. 1부와 2부는 원제목을 조금씩 바꾸면서 의미를 좀 더 분명하게 해주고 있어 큰 무리가 없지만, 3부는 철저하게 역자의 주관이 개입된 제목이다. 내용으로 보나 작가의 의도로 보나 3부작은 원제를 수정하지 않는 편이 훨씬 낫다. 제목에 대해 이렇게 자세하게 말하는 이유는 제목에서조차 소설을 읽는 열쇠가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 독특한 삼부작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따로 또 같이'이다. 각각의 작품은 따로 읽어도 무리가 없을 만큼 독립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삼부작임을 의식하고 연달아 읽으면 또 다른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따로 읽어도 좋고 같이 읽어도 좋다는 말이라기보다는 따로 읽었을 때와 연달아 읽었을 때 받는 느낌이 전혀 다르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적인 작품으로 보기보다 삼부작으로 생각하고 읽는 것이 훨씬 좋은 것 같다. 이 삼부작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연속되지만, 인물과 공간적 배경이 같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어긋나는 부분들이 있다. 단순히 앞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앞의 이야기를 부정하거나 뒤집기도 한다. 종국에 가서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미궁에 빠지게 된다. 이것이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삼부작이 갖는 가장 큰 매력이다.
아래부터 스포일러 주의
이야기는 루카스와 클라우스라는 쌍둥이 형제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들은 1부에서는 '하나의 자아를 가진 두 개의 몸'이다가, 2부부터는 '두 개의 자아와 두 개의 몸'으로 분리된다. 쌍둥이의 이별은 자아의 분리를 겪은 한 개인의 내면과 마찬가지로 고통스럽다.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쌍둥이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2부에서의 가정이다. 쌍둥이라는 설정은 완벽하게 거짓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 놀라운 것은 쌍둥이가 아니라고쳐도 자아의 분열로 인한 상실감과 고통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주인공이 쌍둥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상관 없지만, 존재의 근원적인 고독은 언제나 변함 없다.
인물의 존재 못지 않게 서사 구조 자체도 혼란의 연속이다. 1부의 서사는 2부에 와서 어느정도 부정되고, 2부의 서사는 또 3부에 와서 완벽하게 부정된다. 노트 안에 적힌 이야기인 1부의 이야기는 과연 진실인가 허구인가, 2부가 또 다른 거짓말이라면 3부는 과연 진실인가. 이에 대한 실마리는 3부에서 서점의 여주인에게 털어놓는 클라우스(혹은 루카스)의 말을 통해 짐작할 수밖에 없다. '나는 실제로 일어난 일을 쓰려고 하지만, 어떤 때는 사실만 가지고는 이야기가 안 되기 때문에 그것을 바꿀 수밖에 없다' 라는. 소설은 본질적으로 거짓말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거짓말이 겹겹이 싸여있다. 우리는 소설이 허구임을 알지만 그것을 읽는 동안은 진실이라고 믿고 읽게된다. 때문에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다시 한 번 부정되었을 때 느끼는 혼란과 충격은 적지않다. 그래서 이 삼부작이 주는 여운은 여느 소설과 달리 특별한 것이다.
중층적인 거짓말로 이루어진 서사구조뿐 아니라 소설 속 몇몇 개별적인 장면들도 충격을 더해준다. 태연하게 어머니의 유골을 니스칠하여 다락방에 걸어 놓는다던가, 자신들을 성추행한 여자를 죽이기 위해 장작에 폭탄을 넣어 둔다던가, 아버지를 미끼삼아 국경을 넘는다던가 하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행위들이 속출한다. 이들이 더욱 잔혹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일련의 파행적인 행동들을 일체의 감정을 배제한 채 건조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윤리적 기준마저 흔들려 버리는 전쟁 시기의 혼란한 상황을 인물의 행위를 통해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결국 혼란기의 사회상을 세밀하게 묘사하기보다 절제된 문체로 밀도있게 형상화함으로써 환경으로 인해 붕괴된 도덕성마저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