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실격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3
다자이 오사무 지음, 김춘미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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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인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인간이 만들어 놓은 모든 것에 자신을 맞추어 가며 어떻게든 인간 속에 섞여 드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사실상 이 세상에 인간만큼이나 복잡한 존재는 없다. 어느 누구도 완벽하게 인간을 이해하지 못한다. 결국 보통사람이라는 존재는 인간이란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어떤 기준에 자신을 억지로 맞추어 가며 사는 그런 인간군상들이다. 

'인간실격'은 요조라는 인물이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세 편의 수기를 통해 그려지는 요조의 삶은 특별하다. 인간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요조는 자신의 방식대로 인간 속에 편입된다. 그는 처음에는 보통사람들이 사는 방식에 맞추어 보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하지만, 몇 번의 좌절로 인해 자신을 방치하기에 이르고 결국은 파멸로 치닫는다. 요조가 치러야 했던 삶의 대가는 요조의 본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진 본원적인 나약함에서 비롯된다. 

따지고 보면 요조의 타락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라기보다 환경에 의한 것이다. 상처받기 쉬운 자신의 여린 마음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막은 그 자신을 파멸에까지 몰고 간다. 그래서 요조의 타락은 악(惡)이라기보다는 위악에 가깝다. 파멸에 이르는 것은 요조이지만, 그를 파멸로 몰고 간 것은 호리키와 넙치를 비롯한 위선으로 똘똘 뭉친 주변 사람들이다. 순수한 영혼은 위악으로 포장을 해도 쉽게 다치기 마련이다. 결국 어떻게 해서라도 인간들 틈에 섞이고 싶었던 요조의 바람은 그의 나약함과 불친절한 환경으로 인해 좌절되고 마는 것이다.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고 전혀 다른 자신을 연기한다는 것이 실상 낯선 일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라도 어느정도는 남에게 비춰지기 위한 '다른 나'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위선이든 위악이든 '다른 나'를 꾸민다는 것은 순수한 나의 의지보다는 인간이라는 보편률을 가장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환경 탓이다. 운명을 결정하는 많은 요소들이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보잘것 없는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자살 기도는 요조가 인간으로서 자신이 의지를 가지고 행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이었을 것이다.

'인간실격'은 인간의 추악함을 속속들이 파헤칠 뿐 아니라, 인간의 파멸을 극단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마음 편히 읽히지는 않는다. 그러나 소설의 행간에서 읽히는 인간의 나약함에는 어쩔 수 없이 수긍하고 만다. 서문에 등장하는 세 장의 사진은 인간실격자의 외견을 서술자의 눈을 통해 비춰보이고 있다. 사진 속 인물의 모습은 섬뜩하고 추하고 기묘한 것으로 묘사된다. 그것이 보통사람의 눈에 비춰지는 요조의 겉모습일 것이다. 서문에서 한 인물의 일생을 세 장의 사진을 통해 관조했다면, 세 편의 수기에서는 그 인물의 입을 통해 그 삶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게 한다. 요조의 삶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요조의 삶에 깊이 공감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을 때, 요조의 삶은 특별하기보다 일반적인 모습이 된다. 공감과 거리두기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동안 우리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실격'은 수기의 형식으로 요조의 일생을 서술하고 서문과 후기를 앞뒤로 배치했다. 다자이 오사무는 이 '수기'라는 형식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해 고백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실격'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작가의 생애와 밀접한 관련 하에서 이루어진다. 수차례에 걸친 자살 시도를 비롯하여 허무와 좌절로 점철되어 있는 그의 일생은 요조의 삶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이 소설은 인간의 나약함과 추악함을 들추어내며 패배감에 젖어 있던 당시 젊은이들에게 역설적으로 위안을 가져다 주었다. 전후의 허무주의에 깊이 휩싸인 젊은이들에게 요조 혹은 다자이 오사무의 자기 해명은 자기 존재에 대한 깊은 연민을 가져다 주며 지친 영혼을 보듬어 주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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