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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는 최후 비밀(L'ultime secret)이지만 한국에서는 ‘뇌’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어차피 소설 속에서는‘최후 비밀’이란 것이 뇌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설명되고 있기 때문에 크게 틀린 번역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신체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으면서도 어디까지나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는 ‘뇌’라는 장기의 이름을 통해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사실 ‘최후 비밀’은 첩보 소설 같은 냄새를 풍긴다.)
다른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은 하나의 굵직한 의문에서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 바로 ‘동기’에 대한 문제이다.
모든 행동의 원인이 되는 동기가 없으면 일상은 무미건조해지기 마련이다.
각기 다른 인간들이 각기 다른 이유로 각기 다른 행동을 하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제각각의 행동들이 결국 특정한 몇 가지 동기에 귀결된다고 보고 있다.
1. 고통을 멎게 하는 것
2.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
3. 생존을 위한 원초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4. 안락함을 위한 부차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5. 의무감
6. 분노.
7. 성애
8. 습관성 물질
9. 개인적인 열정
10. 종교
11. 모험
12. 최후 비밀에 대한 약속
이는 심리학에서 흔히 등장해 주는 매슬로우 등의 동기위계이론과도 비슷하면서도 좀 더 세부적이다. 매슬로우와 마찬가지로 베르베르의 동기론(?)은 순차적이면서 좀더 구체적이다.
그러나 베르베르가 11번까지의 동기들만을 가지고 소설을 썼다면 그것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동기'에 관한 논문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는 바로 이 소설의 대전제가 되는 ‘우리가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에 대한 해답으로 과학적이면서도 소설적 허구가 가미된 ‘최후 비밀’의 존재를 밝혀 낸다. 최후 비밀이란 11번까지의 모든 동기들을 압도하는 절대적인 동기이다. 이 비밀스런 존재는 우리의 뇌 속에 숨겨져 있다.
“컴퓨터는 기분에 휩쓸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기>라는 것에 영향을 받지도 않습니다. 딥 블루Ⅳ는 설령 승리한다 해도 얻을게 없습니다. 전기가 덤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소프트웨어가 추가로 설치되는 것도 아닙니다.”라는 핀처의 위트 넘치는 대사에서처럼 최후 비밀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동기로서 인간으로 하여금 무한한 잠재능력을 끌어내도록 한다. 그것이 바로 강력하고 절대적인 쾌락을 느끼게 하는 우리의 뇌 속에 숨겨진 ‘최후 비밀’이란 비밀스런 장소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의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인류는 아직 판도라의 상자를 열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점을 끝까지 상기시킨다. 사람들은 예외적인 것이나 자기들의 삶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익숙하지 않다.
어찌 됐든 인간은 아직 ‘최후 비밀’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강력한 동기를 가질 수 있고 어마어마한 성취를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