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때와 죽을 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6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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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마르크의 소설에서는 텍스트를 뚫고 나오는 전쟁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1차 세계대전 참전 병사였던 개인의 경험이 녹아든 체험적 글쓰기가 특징이지만, 체험에 함몰되어 서사를 소홀히 하는 일은 없다. <서부전선 이상 없다>처럼 오직 전쟁터만이 배경이 되는 소설에서도 전쟁보다는 사람이 먼저 보이는 것이 레마르크의 특징이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는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데, 초반에서 묘사되는 전쟁터의 현장감이 <서부전선>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특히 다양한 심상을 사용해 전사한 시체를 묘사하는 소설의 첫 문단은 압도적으로 문학적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인간에 대한 연민과 비감에 더 초점을 두는 것 같다.


소설은 전쟁 막바지 패전의 징조가 곳곳에 드러나는 독일이 배경이다. 패전이 분명한데도 전쟁을 거부할 수 없는 한 개인의 딜레마를 통해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사회의 부조리함을 고발한다. 이 책은 전쟁터에서 병사들 앞에 펼쳐지는 비정한 현실 뿐 아니라 연합군의 폭격이 쏟아지는 한 도시의 잿빛 풍경 또한 생생하게 재현한다. 전쟁 시기를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보여주며 승자와 패자, 선과 악, 권력과 비권력으로 역사를 이분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를 보여주기도 한다. 전범국이라고 해서 국민 모두가 가해자인 것도 아니며 나치에 동조하는 인간이라고 모두가 사악한 본성을 가진 악한도 아니다. 그렇다고 전범국의 악행을 옹호하려는 의도는 읽히지 않는다. <서부전선>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은 노골적인 반전 메시지를 던지고 있으므로. 다만 전쟁이라는 비극을 개인의 차원에서 바라보려 할 뿐이다. 국가적 차원에서 전범국이지만 각각의 개인으로 초점을 돌리면 이 또한 전쟁의 피해자인 것이다. 포탄은 누구에게나 공정하다. 나치의 돌격대장이라고 해서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독일 민간인들의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했는가를 묘사하는 장면들은 마커스 주삭의 <책도둑>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물론 레마르크는 건조하고 차갑게 현실을 이야기하는 리얼리스트다. 이 책은 동화적인 휴머니즘을 보여주기보다 역사의 물결에 휘말린 한 개인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다. 엘리자베스와 결혼을 하려는 절박한 마음의 그래버와 눈 앞에 포탄이 떨어지는 전쟁터에서 무생물처럼 감정을 잃어가는 그래버 사이에는 불과 며칠의 시차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삶의 낙차는 너무 크다. 인간은 사랑하면서 죽을 수 없다. 죽을 때는 오로지 죽음만을 생각해야하는 것이다. 국가가 개인에게 자행한 이 거대한 모순을 작가는 집요하고 철저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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