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기의 끝 - 아서 C. 클라크 탄생 100주년 기념판
아서 C. 클라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시공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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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남을 겁니다.” 잰은 불쑥 내뱉고는 덧붙였다. “우주는 이미 충분히 보았습니다. 이제 제가 궁금해하는 것은 단 한 가지입니다. 바로 제 행성의 운명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의 마음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고독은 누구나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주적 차원의 고독일 때 나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비감에 잠기곤 한다. SF는 이처럼 짐작도 할 수 없는 마음의 영역을 건드리는 장엄한 상상력을 가졌다.

스타게이트를 통해 저 홀로 토성의 내부로 추락해 가는 데이비드 보먼(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항성 간 전쟁에 징집되어 인류의 모든 진화 과정을 놓친 채 수 세기를 지나 보낸 윌리엄 만델라(영원한 전쟁), 그리고 영화 <애드 아스트라>에서 홀로 목성, 토성, 천왕성을 지나 해왕성까지 항해하는 브래드 피트의 고독한 여정에서는 인간 실존에 대한 심오한 물음이 언제나 전제된다.

이런저런 디테일을 걷어내고 보면 <유년기의 끝>은 행성의 탄생과 소멸까지의 생애주기를 의인화한 소설로 보인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유년기의 끝>을 끝끝내 영화화하지 못했지만, 대신 <2002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통해 이 소설의 심상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려 했던 것 같다. <2002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스타 차일드는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보는 <유년기의 끝>의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행성의 진화 과정을 장면의 거대한 도약을 통해 보여주는 것도 유사하다. 세대와 공간을 훌쩍 뛰어넘은 장면 전환은, 과거와 현재를 ‘가능한 미래’와 자연스레 연결시키면서 미래에 대한 경이감을 선사한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지구라는 행성은 (성숙함의 측면에서) 태아 상태에 지나지 않고, (진화적 측면에서) 아메바만큼 보잘것없다. 우주를 상상하면 지구에서 벌어지는 온갖 갈등과 대립이 아무것도 아니게 여겨진다. 그러므로 최후의 호모 사피엔스가 된 잰 로드릭스가 홀로 행성에 남기를 결정하게 되는 존재론적 깨달음의 과정이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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