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중요한 것이지만, 때로는 모르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자신이 만든 종이 칠면조가 모나리자에 버금가는 예술작품이라고 믿고 있는 여섯 살 짜리 아이에게 '칠면조는 그렇게 생기지 않았다'고 알려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진실은 필요한 것이다. 진실은 한 개인에서부터 수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도 있다. 이처럼 진실이 가진 양면성을 보여주기 위해 스티븐 킹은 죽은 사람을 보는 아이를 등장시킨다. 죽은 사람은 오직 진실만을 말한 다. 이렇게 구축된 세계관 속에서 이야기는 저절로 흘러간다. 작가 본인은 이 소설을 두고 '스튜'라고 일컬었다고 하는데, 말인 즉슨 여러 장르가 혼합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짬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본질적으로 <Later>는 <Joyland>, <Colorado Kid>함께 'hard case crime novel'로 분류되지만 소설 안에는 호러, 스릴러, 성장 서사가 모두 녹아있다.
스티븐 킹의 비교적 최근작인 <Later>은 초기작들에 비해 명백하게 이야기성보다 주제적 측면에 치중한다. 그래서 많은 장르적 혼용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명백한 성장소설로 읽힌다. 소설의 클라이막스는 범죄와 깊이 연관되어 있지만, 결말은 범죄와 전혀 관계없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기이한 능력을 가진 아이가 일련의 사건에 휘말리는 동안 공포와 두려움, 외로움 같은 혼란을 겪게되는데 그 과정에서 깨달음과 성장이 이루어진다. 제목인 <Later>라는 단어가 소설에 수시로 등장하는 것도 소년의 성장을 암시하는 노골적인 수사이다.
소설이 주제에 치중하고 있다고 지만 이야기의 속도감과 흡인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소설의 빌드업이 길지 않아 순식간에 이야기 속으로 빠저들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또한 어느 지점에서 새로운 사건이 터져야 하는 지 너무 잘 아는 작가가 그것을 너무 완벽하게 해내고 있다.
또 소설은 성인이 된 화자가 6살 무렵부터 십대 소년 시절 까지를 그 나잇대의 시점으로 회상하는 형식으로 되어있어서 문장이 간결하다.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어떤 부분은 왜곡되거나 생략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아이다운 때묻지 않은 통찰이 곳곳에 묻어난다. 스티븐 킹은 독보적인 스토리텔러지만, 개인적으로 스티븐 킹의 장점은 스토리만큼이나 그 문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무심코 던진 문장을 유머러스하게 회수하는 능수능란한 서술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스티븐 킹은 일인칭 화자를 도입할 때 특히 심리묘사가 탁월한 것 같다.
<Later>은 여러 장점들이 있지만 70대의 작가가 어린 소년을 화자로 하여 당대의 팝컬쳐를 다양하게 인용하고, 오늘날의 독자에게 참신하게 어필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야말로 이 소설의 가장 놀라운 부분인 것 같다. 세대론을 좋아하지 않지만, 우리 문학은 세대 간 소통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세대와 국경을 넘어 먹히는 이야기를 여전히 왕성하게 만들어내는 작가가 존경스럽다. 스티븐 킹은 현존하는 클래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