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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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아요. 꼭 읽어 보세요. 정말 강추!" 라는 말이 남발하는 책 소개만큼이나 그 책에게 안 좋은 리뷰는 없는 것 같다. 꾸준히 따라 읽는 작가는 아니지만 평소 잘 쓴다고 생각하던 한국 작가 중 한 명인 최은영의 첫 장편소설에 대해 극찬 일색의 리뷰를 보다가 더 이상 미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읽기 시작했다.

"정말 강추합니다" 등등의 리뷰들을 보지 않고 읽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그들이 말한 '너무 좋'은 부분이 언제 나오나를 애태우며 책장을 넘기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좀 더 책에 집중할 수 있고 적어도 내 관점과 취향을 좀 더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문학계에서 드물게 큰 팬덤을 가지고 있는 소위 '장르 문학'과 '정통 문학'의 경계에 서 있는 한국 작가들의 장편 몇 편을 추천받아서 읽었는데, 하나같이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책이 좋지 않았다기보다 나와는 맞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좋은 책이 있다면 그건 정말 좋은 일이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인간의 취향은 다 다르도록 되어있다. 개인의 경험, 신념, 그리고 환경에 따라 누군가에게 '너무 좋'은 책이 다른 어떤 이에게는 별로일 수 있다. 그래서 감정을 많이 실은 책 리뷰는 그리 신뢰하지 않는 게 좋겠다.

그래서 <밝은 밤>은 별로였을까? 어떤 책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좋다, 나쁘다로 한정된다는 법은 없다. 적어도 책을 읽는 동안 한눈 팔 겨를 없이 몰입하면서 읽었던 것은 사실이다. 작가가 천착해온 '여성'과 '위로'에 대한 주제가 전반적으로 함축되어 있어서 좋았다. 아주 극적인 상황으로 인물을 몰아가기보다 평균적인 여성들이 겪는 소외감이 세심한 터치로 그려진다.

이 소설은 억압적인 남성중심 사회로부터 상처받은 여성, 그리고 그들 간의 위로와 연대에 관한 이야기다. 4대에 걸친 여성들의 삶을 그리고 있는데, 그들은 딱 평균적일만큼 억압받았고 딱 남들만큼 비참하며, 고만고만하게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들의 억눌린 삶 이면에 가슴 아픈 근현대의 역사가 흐르기는 하지만, 이 소설의 인물들은 역사 안에서의 개인으로서 받은 상처보다 오히려 가정 내에서 가해지는 가부장제의 폭력과 억압으로 더 아파한다. 그러나 소설 속 남성들은 여성들의 삶에 곁가지로 등장할 뿐 소설 전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억압적 사회 분위기를 정면으로 공격하기보다 여성의 삶 속에서 뿌리내린 '한'의 정서가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탐색하고자 한다. 칼보다는 환부를 보여주며 무기의 비정함을 상기시키는 것이다. 소설은 4대를 흘러오는 동안에도 남성중심의 이데올로기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내며 사회 전반에 잔존하는 구시대적 가치관에 칼을 들이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무엇보다 공감과 위안, 휴머니즘의 가치를 역설하는 따뜻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소설에는 이따금 작가와 인물의 완전한 분리에 실패한 것 같은 서술이 끼어들 때가 많다. 소설 속 인물의 말이 계속해서 작가의 말로 여겨진다면 그 소설의 세계에는 온전히 몰입하기 힘들다. 이것이 30대의 일인칭 여성화자를 택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촘촘하게 짜여진 서사만으로 충분했을 텐데, 문제는 소설이 결말로 나아가고 있음을 너무 노골적인 성장담의 형식으로 그려내려 했다는 점이다. (깨달음을 얻었으니 곧 소설이 끝나겠구나.) 그 과정에서 화자인 '지연'이 자신에게 해주는 말은 작가 자신이 스스로에게 혹은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라는 측면이 더 강하게 다가온다. 왜냐하면 이 소설이 끊임없이 따라가는 중심서사는 '지연'의 이야기이기보다 증조모인 '삼천'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증조모의 단짝이었던 '새비'나 그의 딸인 '희자'의 존재가 서사에 반드시 필요한 인물인데 반해, 엄마의 친구 '명희'나 나의 친구 '지우'는 대체 왜 필요했었나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소설 속 어떤 역할도 하지 않은 채 기능적으로만 소모되는 인물들이다. 본래의 기능은 대를 이어 지속되는 '여성간의 연대'를 완성시키기 위한 장치이겠지만 이들이 소설에서 하는 행동을 보면 여성의 연대라기 보다는 그저 우정 판타지를 보여주고자 작위적으로 만들어졌을 뿐이다. 이 소설에 대해 "너무 좋아요, 강추"했던 사람들은 리얼리즘을 갉아먹는 이 우정 판타지까지 좋았다는 것이겠지. 아니면 내가 너무 비관적이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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