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chinko : The New York Times Bestseller (Paperback, 영국판) - 애플TV 드라마 '파친코' 원작
이민진 / Head of Zeus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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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역사를 관통하는 인물들의 애환을 그린 작품은 얼마든지 있지만, 그 역사의 거센 물결을 한발짝 비켜간 삶의 모습은 어땠을까. 억압과 폭정에 시달리던 식민지배 시대에 그 식민지에 살지 않았고, 공포와 굶주림으로 고통받던 전쟁의 순간에 한 발짝 떨어져 있던 민족의 삶의 모습은 조금 더 나았을까. 한국계 미국 작가 이민진의 소설 <Pachinko>는 한국인으로서 한국 근현대의 중대한 사건의 한 중심에서 벗어나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를 몇 세대에 걸쳐 보여준다.

당연하게도 소설은 사회, 역사를 중심으로 끌어오기 보다 개인적인 디아스포라의 삶에 치중한다. 이민 세대의 삶 속에 고국의 모습은 간접적으로 암시될 뿐이다. 이 소설이 집중하는 것은 고국을 떠난 이들이 겪는 어려움이 세대를 거듭할 수록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준다. 이민 1세대와 2세대, 3세대는 서로 다른 삶의 모습을 가진 만큼 고국에 대한 감정 또한 차이를 보인다. 이민 1세대에게 있어서는 정착 자체가 큰 도전이며 이방인으로서의 소외감과 외로움, 고국과 두고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가장 큰 정조를 이룬다면, 그 이후 세대는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없음에도 이방인 취급을 받아야만 하는 경계의 삶에 대한 갈등이 가장 큰 갈등의 축을 이룬다.

책에는 분단 전에 조부모가 이민을 와서 한 번도 한국 땅을 밟아본 적 없는 이민 3세대가 신분증을 만들기 위해 남과 북을 선택해야하는 부조리한 상황이나, 평생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말을 하고 일본 문화를 배웠는데 한국인의 신분증을 가져야하고 직업 선택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러니까 이들이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조국에 대해 의식하게 되는 것는 오로지 타의에 의해 강요될 때 뿐이다.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 가장 큰 갈등을 보여주는 인물이 이민 2세대인 노아이다.

세대간의 차이가 있음에도, 인물들의 혈관에 흐르는 강한 민족성은 소설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짙은 가족주의나 희생과 인내 같은 한국적 정조가 모든 인물들에게 깃들어 있다. 또 떠나온 고국이지만 나라의 역사를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소설은 일제강점기 전과 후, 일제강점기, 해방과 전쟁, 분단과 독재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의 중심에서 벗어난 한국인들에게 그 역사는 어떤 의미로 이해되는지 개인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플롯이 몇 세대를 아우르고 있기 때문에 인물이 너무 많다. 세대가 흐를 때마다 주요 인물들이 바뀌면서 몇 년 동안 이전 세대의 인물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몇년 후에 한줄의 언급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수많은 인물들이 이야기 안에서 유기적으로 얽히기 보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통해 하나의 의미만을 던져주고 물러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앞뒤가 맞게 잘 직조된 이야기라기보다는, 어제도 흘렀고 내일도 흐를 강의 일부분인 것처럼 유려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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