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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벤 길마 - 하버드 로스쿨을 정복한 최초의 중복장애인
하벤 길마 지음, 윤희기 옮김 / 알파미디어 / 2020년 7월
평점 :
하벤 길마는 눈이 안보이고 귀가 안들리는 중복장애인이다. 그녀의 부모님은 에리트레아 사람으로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전쟁을 한 역사가 있다. 하벤은 에리트레아 언어로 자긍심이라는 의미이다.
그녀는 어릴적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중복장애인으로서 하버드 로스쿨을 최초로 나온 사람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하게 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그 어렵다던 하버드 로스쿨을 비장애인이 아닌, 장애인이 그것도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는 중복장애인이 들어갔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이 유독 사람들의 눈을 사로 잡고 흥미와 관심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의 예상을 빗나간다. 책의 내용은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차별에 맞서서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쟁취한 하벤 길마의 험난한 여정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어릴적, 그녀는 눈도 잘 안 보이고, 청력도 약해, 다른 사람이 말해주는 것과 다른 사람이 알려주는 것에 의지했다. 그래서 불안감과 초조함을 자주 느꼈고, 너무도 여리고 약한 소녀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장애에 굴복하지 않고 극복하려고 애를 썼다. 학교에서 그녀는 좋은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학습자료를 사전에 받아서 미리 숙지하고 공부할 수 있었다. 선생님들은 그녀가 필요한 자료와 책들을 점자로 바꾸어주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고 그녀 또한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래서 그녀는 언제나 우등생이었고 대학 또한 장학생으로 갈 수 있었다.
그녀는 하버드 로스쿨을 나와서 변호사로 활동하는 자신의 성공스토리를 내세우려고 책을 쓴 게 아니다. 그녀는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었던 것들과 장애인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
그녀는 아주 단순한 일화에서 사람들이 장애인을 바라보는 고정관념이 얼마나 단단하고 무서운지를 보여준다. 어느날, 그녀가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는데 그녀의 어린 사촌동생이 와서 자신도 샌드위치가 먹고 싶다며 자기것도 만들어달라고 떼를 썼다. 그녀는 사촌에게 이렇게 물었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은 샌드위치를 만들 수 있어?" 그랬더니 사촌은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당연히 샌드위치를 만들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러자, 그녀는 "그럼 나는 눈이 안보이는 사람이니까 샌드위치를 만들어 줄 수 없겠네. 그러니까 못 만들어주겠다." 사촌은 "지금 만드는 거 봤는데, 왜 안 만들어준다는 거야?" 더 떼를 썼다. 그녀는 사촌에게 눈이 안 보이는 사람도 샌드위치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려고 했었다. 사람들은 이렇듯, 눈으로 직접 목격을 했음에도 고정관념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녀는 늘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차별대우를 결코 지나가지 않았다.
그녀가 대학에서 기숙사 생활을 할 때, 그녀는 본 카페테리아라는 학생식당을 이용해야 했다. 그런데 메뉴판을 읽지 못하고 너무 시끄러워서 메뉴가 뭔지 물어봐도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채식주의자였던 그녀는 자주 엉뚱한 음식을 받아야만 했다. 그녀는 카페테리아 직원을 찾아가서 메뉴를 자신의 메일로 미리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녀의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그 메일을 읽어주기 기능이 있어 그녀는 자신이 먹고 싶은 메뉴를 제대로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메뉴는 컴퓨터로 입력하고 출력해서 붙여놓기 때문에 그녀때문에 워드작업을 따로 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만들어 놓은 메뉴파일을 그녀에게 메일로 보내주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하지만 메일은 드문드문 왔고 어느날은 점심 식사가 끝난 후에 점심메뉴 메일이 도착하는 어이없는 상황도 있었다. 그녀는 재차 카페테리아에 요청, 항의했고 결국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협박하니 그때서야 그들은 태도를 바꾸었다.
그 일을 계기로 그녀는 법을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법을 알아야 정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쟁취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녀는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는 미국 최대 온라인 도서관인, scribd를 상대로 법정 공방을 벌인 결과, 장애인들이 그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비장애인으로서, 장애인들이 어떤 차별대우를 받아왔고(친절이라고 배푸는 우리의 도움도 사실 차별이라는 것), 그들이 정작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었다. 무조건 연민과 동정의 마음으로 그들은 우리보다 약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도와야한다는 생각에만 갇혀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그녀가 얼마나 깨어있었으며, 그녀를 통해서 앞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별이 어디서 발생하고 무엇인지에 좀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녀는 사진들에 아주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사진의 배경이 어떤지를 말이다. 사진에 나오는 꽃과 사진기를 든 사진사 등등 아주 사소한 것들도 명시했다. 처음에는 좀 의아했다. 굳이 중요하지도 않은 사소한 것을 세세하게 명시할 필요가 있을까? 우리도 다 볼 수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곧 깨달았다. 아! 맞다! 그녀는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지? 그녀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똑같이 봐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한번은, 그녀가 시각장애인 친구와 함께 이야기를 하면서 길을 가다가 그만 기차에 치여 목숨을 잃을 뻔한 경험이 있었다. 그녀는 함께 있었던 시각장애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기차가 오는 걸 알고 있었어. 많은 징후가 있었잖아. 건널목 종소리, 기차 소리,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던 차들이 멈춘 것, 땅이 흔들거리던 것, 우리 눈이 안 보이는 게 문제가 아니야. 눈이 보이는 사람도 정신을 놓을 때가 있어. 앞을 볼 수 있는데도 기차에 치여 죽는 사람이 많거든. 그러니까 주의를 기울이느냐 안 기울이냐의 문제지 눈이 안 보이는 게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야."
본문 204쪽
이 시대의 헬렌 컬러인 하벤 길마, 하지만 예전시대에는 헬렌 컬러의 중복장애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면 21세기의 헬렌 컬러인 하벤 길마는 장애인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게 참 많은 깨달음을 가르쳐 주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관점도 넓혀준 책이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서 하나의 세상만 보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북튜버 <책읽는 치어리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