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지식의 한계 세계관 - 과학적 생각의 탄생, 경쟁, 충돌의 역사
리처드 드위트 지음, 김희주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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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뼛속까지 문과생이다. 수학과 과학, 특히 물리는 손을 놓은지 20년이 훨씬 더 된다.

삶의 모든 일들을 수학적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는 감정적으로 심리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선호하고 그렇게 밖에 할 줄 모른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내게 과학적, 수학적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고 생각과 세계관의 폭을 넓혀주었으며, 별로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재고해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당신의 세계관은 어떻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보는 방식, 우주를 생각하는 방식은 각기 다르다. 왜냐하면 내가 믿고 있는 과학적인 믿음이 우리의 세계관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기원전 300년부터 1600년 무렵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이 지배적이었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고 달 위의 영역에 있는 행성들을 이루는 원소가 에테르이기 때문에 그것의 특성 때문에 지구 주위를 끊임없이 돈다고 생각했다. 지구는 정지해 있으며, 달과 행성, 태양은 24시간 주기로 지구 둘레를 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떨어지는 물체는 물체의 무게가 많이 나갈수록 더 빨리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1600년대 초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을 뒤집는 뉴턴 세계관이 등장한다. 뉴턴은 지구가 축을 중심으로 24시간 돌며, 다른 행성들과 마찬가지로 타원형 궤도를 따라 태양 주위를 돈다고 믿었다. 물체의 고유한 행동은 외부적인 영향, 즉 중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관과 뉴턴의 세계관은 마치 그림퍼즐처럼 체계적인 믿음이 맞물려있다. 이런 그림퍼즐 믿음들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세계관인 것이다. 그래서 만약 그림퍼즐이 하나라도 틀리다고 판명되면 다른 퍼즐 또한 영향을 받아 수정되어져야 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세계관에서 뉴턴 세계관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천문학 이론들을 거쳐간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자신의 체계에서 우주의 각각의 행성에 대해서 등속운동을 설명하려고 했다. 그리고 다음에 등장한 코페르니쿠스는 지금의 우리와 똑같이 태양을 전 우주의 중심으로 보았다. 행성들이 완벽하게 원운동과 등속운동을 한다고 보았고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관점에서는 코페르니쿠스의 체계가 프톨레마이오스보다 조금 더 뛰어났다. 1500년 대 말에는 두 체계가 평화롭게 공존했지만 대부분 천문학자들은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 대해서는 실재론적 태도를 지켰고, 코페르니쿠스 체계에 대해서는 도구주의적 태도를 보였다. 여기서 말하는 실재론적 태도란 프톨레마이오스가 화성의 원운동과 등속운동을 설명할 때 주전원이란 개념을 설명했는데 그것이 과연 실재하느냐가 중요한 태도이고, 도구주의적 태도란 주전원의 실재여부와는 상관없이 이 이론이 관련 데이터를 설명하고 예측하는 것을 더 중시하는 태도이다. 그리고 티코와 케플러 체계를 거쳐서 갈릴레이 세계관으로 발전, 진화되어 간다.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이용해서 행성들을 관찰하게 되고 실질적으로 경험했던 사실들을 토대로 자신의 세계관을 구축해나간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관은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바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과 일반상대성 이론이 등장했고, 양자론이라고 하는 실재적인 세계관이 등장한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책읽기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았다. 일주일에 걸쳐서 나누어서 읽었고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지금까지 사람들이 가졌던 세계관의 흐름들을 한 눈에 딱 정리하여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공부해 보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던 양자론에 대해서도 살짝 맛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사실 과학적인 사실들을 철학적으로 개념적으로 생각해보게 만드는 입문서이다. 그런데 입문서치고는 꽤 어렵게 느껴졌다. 물론, 수포자, 과포자여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과학보다는 철학을 더 많이 다루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서 특히 내가 흥미있게 본 부분은 바로 과학 이론들이 공약 불가능한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리는 흔히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말한다. 세계관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세계의 공약 불가능성은 아리스토텔레스 전통과 뉴턴 전통처럼 서로 다른 전통이 과학자들이 세계를 다르게 '본다'는 생각을 중심으로 삼는다.

본문 398쪽

막대기에 작은 돌맹이를 매달고, 그 돌맹이를 앞뒤로 흔들리도록 나뭇가지에 매단다.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의 과학자들은 그 작은 돌맹이의 운동을 목표지향적인 본성으로 우주의 자연적인 자리를 향해 움직인다고 보지만, 뉴턴 전통의 과학작들은 줄에 묶여서 운동에 방해를 받는 자연적인 물체로 본다는 것이다. 또한 공약 불가능성은 과학이론에서 사용한 용어, 개념을 다름으로 받아들이면 더 이상 서로 다른 과학 이론들을 객관성을 가지고 비교할 수가 없다. 객관적으로 경쟁 이론들을 적절히 비교할 수 없다면 어떤 이론이 다른 이론보다 더 뛰어나다고 말한 근거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과학 이론들이 단순히 실재적인 자료와 데이터만 가지고 예측,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믿음과 개념, 용어를 쓰는 것인가도 철학적으로 깊이 생각해봐야 하는 아주 복잡하고도 까다로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어떤 믿음 체계, 즉 세계관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여전히 한참 뒤떨어진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일부분과 뉴턴의 세계관 일부분을 여전히 믿고 있었고 상대성 이론에 대해서는 아직 이해하는 과정에 있으며, 양자론이라는 놀랍도록 새로운 세계관을 접하고는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는 상태다. 우주의 행성들이 태양주위를 타원형궤도로 등속운동을 한다는 것을 관성의 법칙과 중력의 법칙으로 간단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나의 세계관은 정말 낡아 빠진 진부한 것이었다. 자석에 철을 놓으면 자기장의 영향으로 포물선의 형태를 띤다. 이것처럼 태양에서 나오는 자기장으로 타원형 궤도의 포물선 형태를 띠게 되어 행성들이 그 궤도를 등속운동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새롭고 놀라운 사실들이 나를 전율케했다.

양자론에 대해 읽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를 도와준다." 라는 말이 실재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양자 실체 실험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전자 검출기와 광자 검출기는 전자나 광자의 존재를 측정하는 측정 장치인데, 이런 측정 장치가 파동 효과가 나타나거나 입자 효과가 나타나도록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정말 아리송한 일이다. 전자나 광자, 기타 양자 실체는 어떻게 근처에 검출기나 측정 장치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을까?

본문 419쪽

양자론은 사실 과학 문외한이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문제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 관심이 생겼다. 양자론에 대한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책이란 내가 전혀 관심이 없었던 분야에 관심과 흥미를 불어넣어주어 그 분야의 책을 집어들게 만드는책이다.

이런 세계관은 실질적인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거나 실질적으로 내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 천문학, 철학 같은 분야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나와 동떨어진 학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전혀 상관없어 보였던 것들이 때로는 내 삶에 너무나도 상관있게 되는 일들이 흔하지 않는가... 지금 나의 세계관은 어떤지 한 번 생각해보자. 업그레이드 받아야 될 때가 되지 않았나?

북튜버<책읽는 치어리더>

https://www.instagram.com/cheer_reading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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