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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소설가의 일 -김연수 산문<문학동네>
2018.11.17 ****

소설가는 어떻게 영감을 얻고 어떻게 이야기를 창조할까? 항상 궁금했다. 그리고 소설가로의 삶은 과연 어떤걸까? 막연하게 소설가에 대한 이미지를 상상해보면 따뜻한 햇살이 들어와 서재를 환하게 비추고 그 곳에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고 그 옆에서는 진한 커피향이 몽글몽글 올라오는 머그잔이 놓여 있다. 참으로 고요하고 평온한 하루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하얀 눈밭을 총총히 걸어다니는 자유로운 새들의 발자국처럼 하얀 모니터를 온통 나의 즐거운 상상력을 채우는 사람 말이다. 그래서 소설가가 되고 싶은가 보다. 이런 이유로 소설가 김연수 작가의 책은 소설책이 아닌 산문책으로 먼저 접하게 되었다.
'소설가의 일' 제목만으로도 나의 눈이 활짝 열린다.
"소설가가 재능에 대해서 말할 때는 소설을 쓰고 있지 않을 때다. 소설가에게 재능이란 인사기계나 기도기계 같은 것, 그러니까 마친 나 대신에 소설을 써주는 것처럼 느껴지는 소설기계 같은 것이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이건 호두과자기계와 다른 종류의 기계다. 재능이라는 소설 기계는 소설을 만들지 않는다. 소설기계 역시 소설가의 죄책감이나 꺼림칙함을 덜어주기 위해서 고안된 기계다. 소설을 쓰지 않기 위한 방법 중에서 재능에 대해서 말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고도 죄책감이 없는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중략....재능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그만두고 실제로 글을 써보면 재능은 '잠겨 있지 않으며 비밀 같은 게 아니라 진실만 있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본문 23쪽
그래 맞다. 우리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줄창 이야기를 듣고 했다. 재능이 없이는 곧 예술가가 되는 것에 실패한다는 사실을 진리처럼 받아들이고 살고 있다. 하지만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해서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누가 엉덩이를 더 오래 붙이고 있느냐가 결정한다고 말이다. 저자도 재능에 대해서 빙빙 돌려 여러번 꼬아서 이야기했지만 정작 소설가가 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쓰는 것이 재능을 탓하는 것보다 더 현명한 방법이다. 하지만 우리는 쓰는 것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덕분에 나는 글 쓰는 것에 재능이 없다라고 단정짓고 쓰지 않음에 대한 죄책감을 자유롭게 내려놓는다. 소설가가 되고 싶은 자는 먼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한 문장이라도 써야겠다.
비평가에 대해서 저자는 비평가를 평가한 아일랜드 작가 브랜던 비언의 말을 옮긴다.
"비평가들이란 하렘의 환관과 같다. 매일 밤 그곳에 있으면서 매일 밤 그 짓을 지켜본다. 매일 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 자신은 그걸 할 수가 없다." -본문 31쪽
비평가들에 대해서 저것보다 더 신랄하고 핵심을 찌르는 혹평이 있을까.
이에 저자는 이렇게 덧붙인다.
"매일 지켜보면서 그걸 할 수가 없다면, 음, 무척 슬프겠다. 사랑하는 재능을 확인한 뒤에야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있을까? 그러니까 사랑에 빠진 젊은 소설가여, 매일 그걸 해라."
그래. 매일 그냥 한 번 써보는 것이다. 까짓거!
"소설가란 어떤 사람들인가? 초고를 앞에 놓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자기가 쓴 것을 조금 더 좋게 고치기'가 바로 소설가의 주된 일이다." -본문 75쪽
"이렇게 생각하고 다시 쓰는 게 소설가에게 중요한 이유는 우리를 둘러싼 언어의 세계가 여러 겹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제일 바깥쪽을 추상적이고 큰 단어들, 예컨대 평화, 정치, 슬픔, 절망 따위의 단어들이 단단하게 감싸고 있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구체적이고 작은 단어들이 숨어 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글을 쓸 때, 우리는 대개 제일 바깥에 있는 단어들로 글을 쓴다. '5월을 보내는 마음이 슬프다'느니, '그녀는 질투심이 많다'느니. 자기가 쓴 초고를 보면 누구나 약간의 구토증세를 느끼는데,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 이 우주가, 아니, 우리를 둘러싼 언어의 세계가 그렇게 생겨먹었기 때문이다. 좀 쓸 만한 단어는 그런 너저분한 단어들을 뚫고 가야 나온다." -본문 75쪽
이래서 초고를 토할 때까지 고쳐쓰는 토고라는 한 저자의 말 뜻을 이해할 거 같다. 좋은 문장이 나올 때까지 계속 고쳐쓰는 것이다. 그건 정말 괴로운 일인데, 조금 다른 일이지만 낭독봉사를 할 때 책을 읽고 나서 내가 읽고 녹음한 것들을 다시 듣고 틀린 부분을 삭제해가며 완성본을 만드는 것인데 다시 듣기가 참으로 고역이다. 책 읽는 기계가 아닌지라 발음이 꼬인 부분이 읽고 띄어읽기를 잘 안한 부분이 있고 잘못 말한 부분들이 있는데 그것은 삭제해서 고쳐야 한다. 그런데 틀린 부분 없이 읽은 문장들도 다시 들으면 참으로 다시 녹음하고 싶어진다. 좀 더 완성도를 높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지라 다시 녹음을 하고 싶지만 그럼 녹음의 진도가 안 나갈꺼 같아 그냥 넘기곤 하는데 아마도 소설가의 다시 고쳐 쓰기는 시간이 무한정 있고 나의 이름을 걸고 창작을 하는 것이니 좀 더 완성도를 높이고 싶은 욕심이 엄청 들긴 할 거 같다. 토고. 그래서 토 나올때까지 고치는 것인가 보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소설에 푹 빠진 독자가 느끼는 감정은 허구가 아니다. 그게 다 핍진한 문장이 받쳐주기 때문이다. 어떻게 캐릭터를 만들고 플롯을 짜는가가 모두 이 핍진성에 기초한다. 여기까지 이해됐으면 이제 소설가의 일은 서론이 끝난 셈이다." -본문 84쪽
여기서 핍진성이란 어려운 말을 소설이라는 허구이지만 진실처럼 들리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소설을 읽지만 등장인물들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희노애락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이제 플롯과 캐릭터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소설을 다 쓰고 난 뒤에 우리는 플롯을 짤 수 있다. 플롯부터 짜고 소설을 쓰는 건 뭐랄까 바지 위에다 팬티를 입는 일과 같다. 플롯과 관련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일단 팬티부터 입자"는 것. 그러니까 플롯 같은 건 생각하지 말고 불타는 다리를 건너갈 때가지 일단 토고부터 쓰자." -본문 110쪽
명쾌해서 좋다. 나는 플롯을 짜야지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먼저 뼈대를 만들지 않으면 나중에 이야기가 중구난방 이리튀고 저리 튈 거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은 어차피 상상력으로 쓰는 것이니 이리 튀어서 괜찮으면 그걸로 쓰면 될 것이 아닌가. 나는 항상 기승전결의 방식에만 매여있었던 거 같다. 기승전전전이면 어떠랴. 읽는 동안 재미있게 읽으면 된 거 아닌가. 예전에 추리소설의 베스트 작가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말이 떠오른다. 자신은 책이 재미없어서 읽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재미있지 않은 소설은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 뿜뿜이다.
"우리가 욕망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에 그 욕망을 가리기 위해 짐짓 하는 말들이 바로 문학의 말이다. 욕망의 말들은 뜨거운 불꽃과 같다고 생각하는 게 좋겠다. 나는 너를 사랑해. 나는 대통령이 되고야 말겠어. 그 녀석보다는 더 많은 돈을 벌 거야. 현실의 우리는 너무나 입체적이고 복잡해서 이런 말을 할 때도 그게 과연 진심인지 아닌지 본인부터가 헷갈리는 경우가 많지만,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은 종이로 오려낸 사람들과 같아서 이런 뜨거운 욕망의 말들을 날것으로 입에 담다가는 그 자리에서 타버릴 것이다. 캐릭터가 자기 속마음만 말하지 않아도 그는 어느 정도 입체적이고 복잡한 인물이 된다. 대놓고 얘기하지 않는다."
-본문 116쪽
"문학적 표현이란 진부한 말들을 새롭게 표현하는 걸 뜻한다. 결국 문학이란 남들과 다른, 더 나아가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문장을 구성하는 걸 뜻하니까." -본문 131쪽
"소설을 쓰겠다면 '크리스마스 캐럴'의 마지막 장면을 항상 기억하기를. 어떤 인간이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중략......그러므로 소설을 쓰겠다면 마땅히 조삼모사하기를. 아침저녁으로 말을 바꾸고 표정을 달리하고 안 하던 짓을 하기를. 그리하여 마지막 순간까지도 인간은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본문 141쪽
"흔히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흔치 않은 사람이 되자. 미문을 쓰겠다면 먼저 미문의 인생을 살자. 이 말은 평범한 일상에 늘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이기도 하다. 그게 바로 미문의 인생이다. 소설 속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추잡한 문장은 주인공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인생을 뻔한 것으로 묘사할 때 나온다. 사랑하지 않으면 뻔해지고, 뻔해지면 추잡해진다." -본문 174쪽
"많이 쓰기만 하면, 잘 쓰는 소설가가 된다. 왜 소설을 쓰면 쓸수록 남들보다 말을 많이 하게 되는 것일까? 1)소설가는 워낙에 양으로 승부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2)소설가는 혼자서 지내는 시간이 남들보다 많으므로 기회가 닿는 한, 말의 질을 따지기 전에 일단 밀린 말부터 빨리 쏟아내야 하기 때문에. 3) 소설을 쓰느라 열심히 조사했는데 하나도 써먹지 못하고 버리는 이야깃거리가 너무 많기 때문에. 4) 신인 시절에 선배 소설가들 앞에서 입 한 번 벙긋하지 못하고 그 많은 말들을 다 들어준 한이 마침내 폭발했기 때문에.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정답은 이런 것이다. 소설가들에게는 말의 내용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거나, 원래 내용 같은 건 없기 때문에." -본문 188쪽
"소설을 계속 쓰면 쓸수록 행동하는 것. 말하는 것. 쓰는 것 등,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 그 자체가 중요하지, 내용 따위는 없어도 상관없다는 걸 점점 깨닫게 된다." -본문 188쪽
소설가들이 말을 많이 하는 이유를 읽으면서 실소를 금하지 못했다. 몇 개는 나도 공감하기 때문이다. 요즘 내가 하는 일도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하니 자연스럽게 말을 안하게 되고 사람들을 안 만나게 된다. 그래서 가끔 모임에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면 듣는 거보다는 말하는 것에 내가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본다. 말을 하고 싶어서 그 말을 남들이 말을 하고 있는 동안 까먹지 않기 위해서 자꾸 남이 하는 말을 뭉텅뭉텅 자르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르기 때문이다. 한 번 나에게 말할 기회가 오면 어떻게서든지 말을 많이 하려고 한다. 나이가 그리 많이 먹지 않았는데 벌써 꼰대가 되었다.
그래서 나도 이렇게 서평을 쓰면서도 내 이야기를 이렇게나마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는가 보다.
"소설가는 문장만을 쓴다. 글을 쓰기 위해 앉을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좋다. 거기에 내가 쓸 내용 같은 건 없다고 오직 문장뿐이라고....중략.....소설가는 내용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다. 문장을 고치는 사람이다. 잘 고치는 사람, 그러니까 본인이 만족할 정도로 충분하게 많이......, 남들보다 더 많이 고치는 사람. 그게 다다." -본문 193쪽
마지막의 그게 다다라는 말은 왜 이렇게 처량하고 슬프게 들리는 걸까. 결국엔 소설또한 고치고 다듬고 마지막까지 계속 문장만을 다듬는 사람이였던 것이다. 나는 문장을 잘 발견하고 잘 파고 다듬고 깎고를 할 수 있을까. 인내와 끈기가 엄청나게 필요한 직업이었네. 문장 장인.
"소설을 쓸 때, 생각하지 말자고 한 것은, 생각을 생각할 생각도 하지 말자고 쓴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소설은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맡고 만질 수 있는 단어들로 문장을 쓰는 일이다. 생각이 아니라 감각이 필요하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뭐가 보이고 들리고 맛이 나고 냄새가 나고 만져지는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그게 소설 문장의 시작이라면, 끝은 그렇게 알아낸 감각적 묘사를 유사한, 하지만 좀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을 다른 감각적 표현으로 치환하는 일이다. 이 치환을 좀더 능숙하게 하려면 평소에 감각하는 연습을 많이 해서 더 많은 감각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지금 뭐가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지, 어떤 냄새가 나고 어떤 맛이 나는지, 자신에게 묻는 연습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라도 쓸 수 있다면, 그걸 문장으로 쓰자. 자기가 지금 뭘 보고 듣고 만지고, 또 어떤 냄새와 어떤 맛이 나는지. 언젠가 나는 삼십 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느 법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사실상 소설가의 일은 이게 전부다." -본문 217쪽
아...항상 마지막은 뭔가 허무하다. 별거 없으니 환상은 절대 금물이라고 대목을 쾅쾅 박는 듯 하다. 복선과 위기를 한 땀, 한 땀 놓는 장인이 아니라 문장을 한 땀 한 땀 놓고 다시 푸르고 다시 박는 장인이라니... 조금 허무한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소설가의 일이라는 것을 두리뭉실하게 묶어 하늘에 걸어놓지 않고 옛다 정답!하고 바로 던져주니 이걸로 만족해야겠다.
"신과 소설가의 공통점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를 창조하되 자신은 그 시간 바깥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신은 우주의 바깥에, 소설가는 소설의 바깥에. 어떻게하면 소설의 신이 될 수 있는지 그간 궁금했다면, 여기 그 해답이 있다. 소설의 바깥에 있으면 된다. 이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기를." -본문 241쪽
저자는 일관성이 정말 긴 자처럼 반듯하다. 마지막까지 소설가의 본분을 잊지않고 신신당부하듯 알려준다. 소설가의 일과 본분. 저자가 말한 것들을 다 지켜가면서 나도 한 번 문장을 써봐야겠다. 플로베르는 말했다. 소설가는 문장과 문장을 잇는 사람이라고.
"시간이 충분히 흐를 수 있도록 천천히 써야 할 것이다. 느리게 쓴다는 건 나만이 바라본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눈에비친 이 세계의 모습은 과연 어떤지 알게 될 때까지 쓴다는 뜻이고, 더 나아가 내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어떤 플롯에 의해 짜여졌으며, 그 이유와 의미는 무엇인지 알 때까지 쓴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설을 쓰는 일은 몇 년이 걸리기도 하고, 십 년을 넘기기도 하고, 때로 평생을 다 바치기도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귀스타브 플로베르나 레오 톨스토이나 제임스 조이스가 한 일, 그러니까 소설가의 일이다." -본문 245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