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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온도 -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하명희 지음 / 북로드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사랑의 온도- 하명희,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끝이 났다.
사랑의 온도 입니다. 현재 SBS에서 서현진 주인공으로 방영중인 드라마의 원작소설이예요. 드라마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만나게된 이 작품은 소설임을 인지하고 읽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작가님의 에세이같이 느껴지도록 만드는 작품으로 개인적으로 굉장히 감정이입이 되었던 작품같기도합니다. 여러가지 의미로 나와 닮은 사람이 저기에 한사람 더 있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들었던 이야기라서 꽤 기억에 남을것같습니다.
주인공 현수는 금실좋은 부모님 밑에서 자란 맡딸입니다. 편부가정에서 자란것도 아니라 부부사이에 금실이 좋은 가정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사랑에 빠지는 현상자체에 대해 묘하게 냉정한 그녀. 부부로 사랑하며 산다는게 결국 짜고 치는 고스톱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는 그녀는 이런저런 감정을 분류해 정리하고나면 결국 남는건 "나"라는 마인드의 여성으로 사랑을 정리하고 분석하면 결국 "나"만 남는다는 담담한 오프닝은 시작부터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감정이라는게 이리저리 정리하고 나면 결국 나만 남는다는 생각은 저 역시 늘 해온 생각인데 그런 저의 막연한 생각을 작가님이 글로 깔끔하게 정리해주신것같아서 굉장히 마음에 들었거든요.
사랑이란 감정 역시 이리저리 정리하고 나면 결국 남는것은 "나."
시작이 좋았던 이야기입니다. 그런 여주인공 현수는 그렇다고 사랑을 불신하는 불신론자라거나, 레즈비언이라거나 남성혐오인 사람도 아닌 그저 보통의 평범한 여성입니다. 한창 피씨통신이 유행했을 무렵 절친인 홍아와 온라인에서 제인이란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만난 "착한스프"와의 첫 만남역시 그저 일상의 평범한 하루처럼 특별할것없었던 시간이었으나, 어느순간 돌이켜보니 현수는 그에게 마음이 생겨났음을 인정하게 되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지독하게 빗겨가 착한스프 정선에게 여자친구가 생김으로써 서로가 멀어지게되는 일이 생기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여주인공 현수, 현수의 절친 홍아, 그녀의 사랑 정선, 그리고 현수를 사랑하는 남자 박선우 네 사람의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현수의 어긋난 사랑이 안타까웠던 이야기로 마무리되는데, 아.. 정말 마지막 엔딩은 먹먹하네요
결국 현수의 사랑은 다른사람들보다 많이 느리게 시작되지만 끈질기게 지속되는 사랑이었습니다. 첫 만남에서 착한스프 정선에 대한 호감이 전혀 없었던 반면 그와 오랜시간 만나고 알게되면서 점차 그에 대한 호감이 사랑이란 감정으로 결실을 맺어가게되는 그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지고 너무 쉽게 이별하는 누군가들에게 현수는 참으로 느린사람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함께 할수있었습니다. 느린사람이 여기 또 있네. 라는 작은 반가움과 함께.
현수의 친구이자 부잣집 딸인 홍아가 드라마 작가를 포기하고 안정적인 결혼을 택해 아들을 낳고 함꼐 살아가는 모습과 현수가 사랑을 가슴에 품고 홀로 오랜시간 정선을 마음에 담아둔채 다른 남자의 사랑을 밀어내는 모습이 보여주는 대립적인 모습에서 어떤 모습이 올바른 삶인가 라는 생각도 잠시 하게됩니다. 마음에 없는 남자와 적당히 결혼해 그냥 애 낳고 살아도 나쁘지 않은 인생인거고, 나 좋다는 사람이 아무리 매달려도 내가 좋은 그 남자가 아니면 소용없다는 현수의 단호함 역시 이해가 되는 모습이고, 뭐랄까. 30대 미혼여성으로 바라본 현수가 너무 친근한 캐릭터였다랄까.
정선을 잊지 못해 뒤늦게 시작된 사랑에 가슴앓이 중인 현수에게 다가온 남자 박선우가 그녀에게 이런 말을 건넵니다.
"인생은 말이야, 니가 생각하는 대로 널 대해. 니가 심각하게 생각하면 심각하게 대하고, 즐겁게 생각하면 즐겁게 대해.
하나의 문이 닫히면, 다른 하나의 문이 열려. 닫히는 문만 바라보고 서 있으면, 열리는 문을 보지 못해"
이건 현수의 마음을 위로하는 말이기도 하면서 박선우 자신이 현수에게 새로운 문이라는 의미로 건네는 대사인데 왜 때문인가요. 저는 이문장을 읽으면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국 내가 바라보고 있는 문만 지켜보고 서있으면 내 등뒤에 열리는 또 다른 문을 보지 못한채 놓치게되는건데, 그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문들을 보지 못하고 지나쳐왔을까. 이제라도 내 주변을 둘러보면 더 많은 문이 보이고 더 많은 기회가 있지 않을까? 나에게도 지금 닫혀있는 이 문 너머로 또 다른 문들이 있지 않을까. 결국 희망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비단 현수에 대한 마음을 빗대어 말한 문장으로 느껴지지 않은 문장이었습니다. 오랜시간 한직장을 근무하며 힘들고 힘들어도 그저 이 길이 내가 갈 길이다라고 믿으며 변화를 두려워했던 나에게 결국 이곳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기회는 잡을 수 있을것이고, 이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을 찾아보면 될거라는 작은 희망이 가슴에 콕 와서 박히면서 어쩐지 눈물이 울컥 날뻔했거든요.
이 책은 분명 현수와 홍아, 정선, 그리고 박선우 네 남녀의 엇갈린 사랑을 이야기하는 소설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엇갈린 네 사람이 서로의 가치관으로 서로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어쩐지 제법 많은 위로를 받는 이야기이기도 했습니다. 단순하게 바라보면 현수의 사랑은 너무 답답할지도 몰라요. 그녀의 느린 사랑이 결국 오랜 시간을 돌고 돌게 만들었고, 그녀의 단호한 사랑이 그녀를 사랑하는 또 다른 남자에게 큰 상처가 되기도 했거든요. 하지만 그런 느린 사람의 사랑 역시도 하나의 사랑이고, 그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했던 선우라는 남자의 사랑 역시 기억에 남습니다. 무엇보다 홍아와 정선의 이야기는 참 뭐랄까. 화도나고 짠하기도하고 현수가 불쌍하고. 복잡하게 만드는 방식의 어려운 사랑이었네요
즐겁게 읽었습니다. 엔딩이 의외의 엔딩이어서 끝까지 저는 행복하지 못했지만, 아니 이게 가장 최선의 엔딩인것같기도하고, 아무튼 여러모로 느린 사람의 사랑 이야기 즐겁게 읽었습니다.